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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은 Feb 15. 2020

하루치의 반성

간극을 메우는 시간

남편과 딸은 아직 잠들어 있고 나는 조심스럽게 침실을 빠져나와 양치를 한다. 주방으로 가서 아침을 준비한다. 주방에서의 달그락 거리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깬 딸을 포근하게 안아준다. 따뜻한 에너지가 넘치는 목소리로 딸에게 아침인사를 건넨다. 아침을 먹고 남편은 출근을 했고 나는 딸과 등원 준비를 하며 딸의 호기심 넘치는 질문들에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대답을 한다. 딸의 옷장 앞에서 딸과 나의 마음이 통해서 기분 좋게 오늘 입을 옷을 고른다. 여유 있게 9시 30분 전에 어린이집에 도착해서 딸은 어린이집에서 준비한 오전 간식을 먹고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청소를 하고 찬은 적지만 정갈하게 차린 점심을 먹는다. 필라테스를 다녀오고 책을 읽고 딸 하원 전에 간단한 간식과 저녁 준비를 한다. 매일 같은 시간에 딸을 하원 시켜 집으로 돌아온다. 딸이 하고 싶어 하는 놀이를 즐겁게 함께한다. 균형 잡힌 식단으로 건강하고 맛도 좋은 저녁 밥상을 차린다. 아이가 스스로 다 먹을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린다. 아이를 씻기고 잠들기 전에 동화책을 읽어준다. 딸을 재우고 나면 남편과 함께 보고 싶었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우리 부부만의 소확행을 즐긴다.


지금까지 나열한 나의 하루 일과는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하루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나의 하루와는 거리가 멀다.


딸보다 먼저 깬 아침은 없다. 남편은 빈속으로 출근을 하고 등원 준비를 하며 딸은 혼이 나고 울음을 터뜨리는 날이 많다. 등원 시간이 늦어서 어린이집에서의 오전 간식은 매일 건너뛰고 가끔은 11시가 다 되어서 등원을 한다. 혼자 차려먹는 점심이 귀찮아 거의 외식을 한다. 혼자서 보내는 시간은 왜 그렇게 빨리 지나가는지 저녁 준비를 하기도 전에 이미 하원 시간이다. 집에 온 딸이 하고 싶다는 물감놀이는 뒷정리를 걱정하며 다음에 하자고 미룰 때가 많다.


아이를 낳아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하게 키운 다는 게 두려웠다. 나의 행동이나 생각이 아이에게 줄 영향이 무서워 엄마가 될 자신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다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는 걸까? 아이에게 과연 나는 좋은 엄마일까? 지금 나이에 맞는 어른 값을 하고 있는 걸까? 태어난 지 이제 겨우 한 달을 넘긴 둘째까지 재우고 시계를 확인하면 곧 자정이다. 체력은 방전되었지만 정신은 말갛다. 3시간 후면 둘째가 깨서 배고프다고 울겠지. 새벽 수유를 해야 하니 잘 수 있을 때 조금이라도 눈을 붙여야 하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딸에게 조금 더 다정하게 말했어야 했다. 엄마 아빠가 웃는 게 좋다는 딸에게 더 자주 웃어줄걸. 막 태어난 둘째보다는 누나지만 여전히 38개월의 어린이인데. 이상적인 하루와 현실의 틈이 큰 날이면 침대에 누워 반성하게 된다. 얼마 전 재미있게 본 드라마의 주인공 좌우명처럼 반성은 해도 후회는 하지 말아야지. 매일 잠들기 전 나의 하루를 돌아보며 스스로를 가지런히 해야겠다. 어쩌면 반성이 좋은 어른의 재료가 될 수도 있겠지.


매일 자라는 손톱만큼 날마다 나도 성장해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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