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나은 Feb 26. 2020

3시간 자유 쿠폰

결혼반지를 빼서 서랍장에 넣어뒀다. 임신 막바지에 몸무게의 앞자리는 두 번이나 바뀌었다. 배는 말할 것도 없고 옆구리와 엉덩이가 펑퍼짐하게 살이 올랐다. 임신 전에 입었던 옷들은 지금 내겐 무용지물이다. 누군가는 임신한 여자의 몸이 가장 아름답다고 하지만 임신해본 사람이 한 말은 아닌 것 같다. 출산을 했지만 내 몸에서 아이와 태반만 빠져나갔고 살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임신 전의 몸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심히 염려가 된다. 내 몸은 지금 비상사태다.


몇 년 전 첫째를 재우고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모험에 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모험은 스스로 정신적, 육체적 또는 문화적으로 확장하는 행위입니다. 평소에 하지 않던 일을 하는 것이고, 스스로를 끝까지 몰아붙여 능력의 한계를 발휘하는 것이지요. 세상과 자신에 대해 미처 몰랐던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프로가 될 필요도 없고, 전문적으로 훈련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게다가 부자가 아니어도 됩니다. 모험은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정신이며 편안한 영역에서 벗어나는 행동입니다. 열정과 야망, 열린 마음 그리고 호기심에 관한 어떤 것이기도 하지요. 모험은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을 보는 순간, 아 내가 지금 방구석 모험을 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육아는 편안함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또 체력적, 정신적으로 스스로를 끝까지 몰아붙여 내가 이렇게 잠을 안 자고 살 수도 있구나, 내가 이렇게 인내심을 발휘할 수도 있구나 힘겹게 알게 된다. 그러니 모험을 좋아하지 않는 내게 인생의 가장 큰 모험은 출산과 육아였다. 첫째는 올해 5살이 되었고 어린이집 등원을 하고 있으니 육아 모험이 끝나려 했는데 둘째가 태어났다. 첫째를 키운 경험이 있으니 둘째는 좀 수월할까 예상했지만 쉬지 않고 질문을 퍼붓는 첫째와 눈 뜨면 계속해서 안아달라고 우는 둘째는 서로 다른 종류의 힘듦으로 나에게 두 번째 모험을 안겨주었다.


50일이 된 둘째를 안고 뉴스를 보았다. 코로나 19 확진자 현황 및 동선. 수그러들 것 같던 확진자 수가 며칠 사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게다가 내가 살고 있는 도내에도 확진자가 발생했다. 전염병보다 무서운 어린이집 무기한 휴원 안내 문자를 받고 말았다. 천방지축 5세 딸과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아들을 나 혼자서 어찌 돌봐야 할지. 모험을 넘어 육아 비상사태다.


결혼 전에 읽었던 은희경 작가님의 <소년을 위로해줘> 중에 인상적이었던 글귀가 있다. “평상시에는 엄마 자신의 인생이 더 중요하지만 비상시에는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평상시에 우리는 각기 이기적으로 살 수밖에 없는데, 그건 비상시가 닥치지 않았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개인의 권리이고, 그리고 비상이라는 건 전쟁, 천재지변, 교통사고, 심각한 질병, 절망, 빈털터리 상태, 지금과 같은 극진한 슬픔의 발생이라고. 엄마가 나의 슬픔을 비슷하게라도 함께 느낄 수 있는 건 우리 둘이 가족이기 때문인데, 그것은 이 세상에 몇 안 되는, 가정식 백반에는 없는 가정의 진정한 리얼리티라고” 읽을 당시엔 소년의 입장에서 공감했는데 지금은 엄마의 입장에서 격하게 공감하게 된다. 지금의 이 비상사태와 모험을 잘 버텨서 마무리하고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봄이 되면 코로나가 종식되겠지? 그래서 첫째를 다시 등원시킬 수 있겠지! 제발. 4월 11일이면 둘째가 태어난 지 100일이 되는 날인데 그때쯤이면 임신 때 찐 살들이 다 빠질 수 있겠지? 아니 어떻게 해서든 살들을 빼 비상사태를 끝내야지. 임부복 아닌 청바지를 입고 평일에 단 하루라도 출산 전 일상으로 돌아가 독서모임에 참석해야겠다. 엄마가 아닌 내 개인의 시간을 갖고 싶다. 올봄엔 도비가 양말을 선물 받고 도비는 프리라고 선언했듯이 나는 예쁜 옷을 스스로에게 선물하고 외치고 싶다. 3시간 동안 엄마는 자유예요!

작가의 이전글 하루치의 반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