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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은 Aug 09. 2020

결핍, 내 고유의 모습

나를 나답게 해주는 노력

나는 크기와 깊이가 다른 구멍을 한 번에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가진 채 태어났다. 매번 구멍을 발견하고 메우기도 전에 새로운 약점을 마주해야 했다.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도 해내지 못할 것 같은 일들이 있다. 끝내는 내가 채울 수 없어 결핍으로 남을 것들. 쾌활함, 사교성, 여유, 꾸준함, 그리고 재능. 승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영어공부와 수영을 시작했다. 면접장에서 수험번호로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이 하나의 면접팀으로 정해졌다. 면접 전에 구호에 맞춰 다 함께 통일된 자세로 인사하는 연습을 했다. 몇 번의 연습을 할 때마다 나는 자세 지적을 받았고 순간 면접에서 떨어질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나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몇 번 더 면접을 보았지만 구부정한 자세로는 합격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승무원을 포기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고 직장에 다니며 휴가 기간에 친구와 함께 제주도 여행을 했다. 렌터카 없이 걷거나 버스를 타고 여행하며 무거운 가방을 계속 메고 다녔던 탓인지 여행에서 돌아오자 몸 구석구석이 아팠다. 그때서야 정형외과를 찾았다. 그곳에서 만난 물리치료사는 자신이 만난 환자 중에 세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자세가 좋지 않다고 했다. 왜 이제야 병원에 왔냐고 안타까워했다. 일주일에 두 번 도수치료를 받는 날은 치료가 너무 아파서 마음을 수행하는 시간이 되었다. 안 좋은 자세를 방치했던 지난날을 반성하며 내 몸에게 잘못했다고 연신 사과하며 이제 그만 아파달라고 부탁했다.   가끔 결핍을 채우지 못한 노력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한 거품처럼 느껴진다. 성장을 체감할 수 없어 스스로를 갱신하려는 시도를 그만두고 싶어 지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면 아무것도 안 하는 것과 아무것도 안 하는 거 ‘같은‘ 것의 차이를 다시 생각한다. 남들은 모를 수 있는 그 도약을 위해 내가 이미 알게 된 나의 부족한 면을 그냥 방치하고 싶지 않다. 손에 닿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되는 일이라도 안된다고 단정 짓고 포기해버리고 싶지 않다.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까지 아주 사소한 행동이라고 하고 싶다. 거칠고 투박한 모습 그대로 보단 매일 조금씩 단련시켜서 다듬어지고 윤기 날 수 있게 관리하고 싶다. 힘든 과정 끝에 찾아올 결과야말로 내가 진정 원하는 것 일 때가 많다. 내가 가진 모든 구멍을 메우고 꽉 찬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채워가는 과정에 집중한다. 사소한 실패를 하며 소소한 성공을 얻는다. 내가 살면서 어떤 구멍은 채울 수 있고 어떤 구멍은 채울 수 없는지 알아가는 과정을 천천히 즐기고 싶다. 가끔은 남들보다 두드러진 내가 가진 장점을 발견하고 힘을 얻기도 한다. 오늘도 바른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하루에 오천보 걷기를 목표로 틈만 나면 산책을 한다. 일주일에 두 번 필라테스에 간다. 구부정한 자세를 바른 자세로 바꾸려 운동하는 동안은 통증을 없애려 고초를 견디는 시간이다.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척추를 만져보며 다음 운동도 빠지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은 마음과 노력이 나를 나답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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