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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은 Dec 31. 2020

항마력이 필요해

숲에게

오랜만에 편지로 안부를 전해. 멀리 떨어져 살면서 마지막으로 만난 날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가 되었네. 만나지 못해도 자주 숲을 생각해. 요즘은 어떤 새로운 기획(일)을 하고 있을까? 요즘 좋아하는 음악은 뭘까? 재밌게 본 영화는 뭘까? 숲에게 좋았던 순간과 기억을 함께 공유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해. 15년 전쯤, 그림대회 진행요원 아르바이트를 하며 처음 숲을 만났잖아. 어느 날 둘이서 저녁을 먹으러 냉면집에 갔던 기억나? 냉면집에서 한창 대화를 이어가는데 직원분이 오셔서 영업이 끝났다고 했잖아. 그때 나눈 대화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숲과 대화를 나누던 그 날의 내 기분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이 좋았단 걸 기억해. 그 뒤로도 숲과 나누는 대화는 늘 좋았어. 그래서 자주 만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 아쉬워. 내년에도 코로나 바이러스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서 편지로라도 자주 서로의 소식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 내년엔 우리 39살이 된다. 숲과 대화를 나누며 나를 돌아보고 삼십 대를 마무리하고 싶기도 했어. 숲은 알아서 잘할 것 같은데 나는 도움이 좀 필요해. 하하.


음, 어떤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까. 만나서 얼굴을 보며 나누는 대화가 아니라 그런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내일이 2020년의 마지막 날이네. 숲에겐 2020년은 어떤 해였을까 궁금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힘들게 견뎌온 한 해로 기억할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겐 의미 있는 해였어. 건강하게 둘째가 태어나줬고 처음으로 단편소설의 마침표를 찍어본 해이기도 했으니까. 46,391원. 생에 처음으로 내가 글을 써서 번 돈이야. 내 시작은 미약했지만 그 끝은 창대할 수 있을까? 내년엔 좀 더 분발해봐야지. 매일 걷고 조금씩이라도 써야지! 오늘 오후엔 ZOOM으로 이슬아 북토크에 참여했어. 마지막에 이슬아 작가가 그런 말을 하더라. 자신의 못 쓴 글을 꾸준히 견디는 사람이 작가라고. 스스로에게 너그러운 사람이 되라고. 시간과 함께 나아질 거라는 생각을 갖으라고. 아까 인스타에선 그런 말도 봤어. ‘성인이 된 후로 취미 건 일이건 간에 새로운 무언가를 하면서 제일 힘든 건 조팝인 자신을 참는 일이다. 어디서 본건 많아서 눈은 높은데 초보니까 당연히 조팝이다. 조팝인 자신을 참을 항마력만 있다면 우리는 새로운 세상에서 얼마든지 헤엄칠 수 있다. 자신을 좀 용서해주렴. 원래 넌 아무것도 아니란다.’ 지금 나에겐 부끄러운 글을 쓰는 나를 견디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그리고 좋은 게 왜 좋은지 싫은 게 왜 싫은지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연습이 필요한 것 같아.

연말 선물 고마워. <어린이라는 세계> 나도 읽고 있었는데 사랑스럽고 다정한 책이었어. 전에 숲이 <거의 정반대의 행복> 책 선물해줬던 거 기억나? 육아를 하는 친구들을 이해해보고 싶어서 육아서를 읽어봤다는 너를 보면서 맞아 이렇게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 내 친구였지. 다시 한번 생각했었어. 이번에 받은 2021년 일력도 잘 활용해볼게. 날마다 일력의 뒷장에 짧은 일기를 쓰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습관을 꼭 들여보겠어!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오늘은 가볍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이 정도로 마칠게.


2020년 12월 30일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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