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게
아니 뭘 했다고 벌써 2월의 마지막 주일까? 숲의 메일을 받고 바로 답장을 하고 싶었지만 기한에 맞춰해야 하는 이런저런 사소한 일들을 가치 치기 하고 나니 늦어졌어. 숲의 예상처럼 올해도 포스트잇에 올해의 목표 다섯 가지를 적어뒀지.
1. 매일 한 줄 일기 쓰기 2. 일주일에 책 한 권 읽기 3. 매일 오천보 걷기 4. 매주 냉장고의 식재료 점검하고 장보기 5. 카페 가서 커피 사마시는 일 줄이기
작년과 같은 목표도 있고 올해도 거창한 계획보다는 조금만 노력하고 신경 쓰면 지킬 수 있는 것들을 적어두었어. 매일 책을 읽고 시 한 편을 필사하고 일기를 쓰는 일을 나의 하루 리추얼로 만드려고 하고 있어. 요즘엔 숲이 선물해준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를 필사하고 있지. 숲 덕분에 알게 돼서 다행인 시집.
결혼을 한 뒤에는 일을 하지 않았고 그리고 작년에는 신생아를 키우면서 외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코로나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는 느낌을 잘 받지 않았어. 어린이집이 몇 차례 휴원 하면서 혼자서 아이 둘을 보면서 삼시 세 끼를 챙겨 먹어야 하니 힘들다 그 정도였거든. 숲의 메일을 보니 작년에 너무 힘들었겠구나 새삼 느끼게 되었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정말 고생이 많았다고 그 힘든 와중에도 잘 해냈다고 토닥여주고 싶어. 어디선가 읽었는데 공부를 잘하는 게 똑똑하다기보단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사람이 정말 똑똑한 거라고 하던데. 숲이 하는 일은 얼마나 변수가 많은 일이야. 그런 일을 꾸준히 계속해서 해내고 있는 숲을 나는 대단하다고 생각해. 진심으로. 그 겨울 워커홀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도 나는 숲이 워커홀릭이라기보다는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그 완성도의 기준도 나보다는 훨씬 높은 지점에 점을 찍고 있었기 때문에 일을 하는 시간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지. 그런 너를 내가 자랑스러워하는 거 알지?
3월에는 변화가 있어. 첫째는 어린이집을 수료하고 새로운 유치원에 다니게 되고 둘째는 이제 어린이집에 입소하기로 했어. 누구나 한 번씩 겪어야 할 이 변화들에도 나는 조금 긴장이 돼. 첫째도 둘째도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해야 할 텐데 걱정하는 한편 아이들이 없는 시간에 뭘 할까 새로운 계획을 메모장에 적어뒀어.
올해는 무조건 서울로 이사를 갈 생각이었지만, 집값이 미친 듯이 날뛰고 있어서 이사 갈 엄두가 나지 않아. 이사하자마자 하우스푸어가 될 것 같은 걱정이 앞선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요즘 부동산 경매에 관련된 책을 읽고 있어. 전에도 관심은 있었는데 요즘엔 좀 더 용기 내서 시도해봐야겠다는 생각이야. 올해 서울 아파트 경매 낙찰받고 전세로 둔 뒤에 2년쯤 후에 서울로 올라가는 게 요즘의 계획이야. 커피값 아끼고 책 사는 돈 아껴서 갈 수 있는 서울이 아닌 느낌이랄까? 투자에 공부를 해야 갈 수 있을 것 같아. 어쩌면 이것도 정답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똑똑하지도 현명하지도 않은 나는 내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고군분투 중이야.
얼른 서울 올라가서 더운 여름에 삼청동이나 부암동 카페에 앉아서 숲을 기다리며 혼자 아라 한잔 단숨에 먼저 마시고 숲이 오면 또 한잔을 주문해서 여유롭게 마시며 대화 나누고 싶다. 프루스트의 <우정>에서 나오는 그런 감정을 주는 대상은 나에겐 숲이지. 그래서 바쁜 숲에게 얼굴 보지 못하는 동안에 메일이라도 주고받자고 제안한 거고. 사회성이 떨어져서 친구가 얼마 없는데 그나마 오랫동안 이리 보고 저리 지켜보면서 진주처럼 찾아낸 친구들은 다 서울에 두고 마산으로 내려왔지. 마산에 있는 동안에는 매일 밤마다 거실 한쪽의 테이블에 앉았어. 그리고 산책 나갈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려고 애썼어. 남편은 남편일 뿐이었고 아이들은 아이들일 뿐이었어. 친구는 아니었어. 그래서 나 스스로와 친구가 되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아. 나를 들여다보는 좋은 시간이기도 했지만 문득문득 외롭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어.
어디선가 읽은 글귀인데 "나에게 저 사람이 어떤 존재일까,를 생각하는 동안은 행복하지만, 저 사람에게 내가 어떤 존재일까,를 고민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고통이 시작되는 거라고. '관계'는 단수지만 '사람'은 복수이기 때문에 질문은 하나로 끝날 수 없는 법이라고." 읽고 나서 너무 공감했어. 그래서 숲이 '우정이라는 기적에 의해 강력해져 무적이 될'수 있는 사람이 숲 가까이 있었으면 좋겠어.
아, 한동안 글을 쓰지 못하고 있었는데 둘째가 어린이집에 적응해서 혼자 다니기 시작하면 다시 써야지. 최근에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뒤늦게 봤는데. 대사 중에 그런 말이 나오더라.
"1853년 슈만은 제자인 뒤트리히 브람스와 함께 바이올린 소타나 한 곡을 작곡했다. 이중 브람스는 3악장인 스케르츠를 썼다. 그들의 친구인 바이올리니트 요하임이 클라라의 반주를 처음 했던 이 곡은 요함임이 좋아했던 문구로 작곡되어 F.A.E 소나타라 이름 붙여졌다.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브람스가 좋아했던 문구는 F.A.F (Frei Aber Froh) 자유롭지만 행복하게. 글을 써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써도 좋다고 생각했어. 그렇지만 나도 브람스처럼 이왕이면 자유롭지만 행복하게 계속해서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 결국은 글쓰기 이야기로 마무리하네...
사랑과 그리움을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