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가 보였던 모습은
군에서 병장 때 즈음, 나는 행정병이었는데, 한 달 선임이었던 CP병(대대장 비서&운전병)과 나이가 같다 보니 친구처럼 지내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사건사고가 많아서 나는 주말에도 개인시간 없이 일을 했는데, CP병이었던 친구는 세차와 대대장실 정리를 이유로 내가 일하는 곳에 와서 같이 있는 날이 많았다.
한 번은 그 친구와 아빠란 무엇인가에 대한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때 아빠가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했던 대화가 오늘 문득 생각이 났다.
“아빠는 주차를 잘해야 돼.”
“아빠는 정전되면 두꺼비집 고치시더라. “
“울 아버지는 문 고장 나면 고치시던데”
”텐트도 잘 쳐야 되고 “
“세면대나 변기 막히면 뚫는 법도 알아야 돼”
“길도 잘 찾아야지”
“행보관보다 쓰레기봉투 잘 묶을걸?”
이런저런 시답잖은 이야기들이 계속 흘러나왔다. 20살 21살 어린 청년들이 아버지에 대해 하는 얘기가 뭐 얼마나 진지하겠냐만은, 어느새 대화 속에서 아빠는 못하는 게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슈퍼맨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나와 그 녀석 둘 다 훌륭한 아버지를 뒀음이 분명하다. 우리는 그저 우리가 봤던 아버지를 그냥 이야기했을 뿐인데, 생각해 보니 아버지는 못하는 게 없었다. 내가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다 보니, 배우지 않은 것들이 정말 많고 스스로 헤쳐나가야 하는 것들 투성이인데, 아버지는 이 모든 것들을 다 해내온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건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다. 우리 집은 그렇게 넉넉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그 친구는 아주 부잣집이었고, 그런 집의 아버지도 그 친구에게는 슈퍼맨 같은 사람이었으니까.
아버지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잘하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주차를 알려주진 않는다. 접촉사고가 났을 때 요령도 알려주지 않는다. 미닫이 문 하단의 볼 베어링이 그리스에 엉겨 붙어서, 같은 사이즈의 볼로 교체해야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것은 교과서에 나오지 않았다. WD-40이 없으면 대신 식용유를 경첩에 바르면 문이 삐그덕거리지 않는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모기장이나 에어컨 필터를 청소할 때에는 필터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물을 쏴야 먼지가 한 번에 잘 떨어져 나간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GPS가 없던 시절, 지도 책만 보면서 처음 가는 피서지 계곡에 찾아가고, 캠핑장도 아닌 산골 바닥을 평탄화해서 텐트를 치는 과정은 군에서도 분대장 교육이나 가서 배운다.
그저 아빠라는 책임감이 있었을 것이다. 구글도 찾아볼 수 없고, 내 뒤에는 아무것도 없으니, 내가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는 그 책임감이 어떻게든 돌파구를 마련하는 힘이 되었을 것이고, 그렇게 하나하나 경험을 쌓아가셨을 거다. 그렇게 가족들의 버팀목이 되어가면서 가정은 단단해지고, 내가 걱정 없이 잘 클 수 있었던 거다.
나도 지금은 많은 노력을 한다. 하수구에서 냄새가 나면 잘 안 맞는 트랩을 망치로 때려서 구겨 넣기도 하고, 변기가 흔들리는 것 같으면 실리콘도 바른다. 아내가 임신 당뇨가 왔을 때는 이 악물고 건강하고 맛있는 요리를 연구하고, 졸려 죽을 것 같아도 책을 한 글자 더 보고 자려고 한다. 내가 모르는 세상은 너무 많고, 가족과 함께 하는 항해에서 작은 등대라도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발 끝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아버지를 따라잡았다는 생각이 들 때쯤에는, 지금의 아버지 나이가 되어 있겠지.
코로나 사태가 해제된 후로, 부쩍 결혼하는 후배들이 많다. 몇 년 안 되었지만 그래도 결혼 선배라고, 후배들이 많이들 물어본다. 결혼하면 괜찮냐, 집은 어떻게 하냐, 예물은 얼마짜리 했냐, 어떨 때 주로 싸우냐 등. 한참 궁금할 때라는 생각도 드는데, 한 켠으로는 다른 생각이 든다. 현실적이지도 않고, 노인네 같은 말이라 입 밖으로 꺼내진 못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꼭 물어보고 싶은 말이다.
집이고 차고 돈이고 뭐고 결국 살다 보면 다 해결 돼.
그런 건 별로 중요한 것 같지는 않고,
너는 혹시 아버지 같은 사람이니?
아직 아니라면, 될 준비는 된 거야?
난 아직도 그게 안 되어서 힘들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