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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원 May 20. 2023

아빠는 아프면 안 된다

이제는 나와의 약속이 아니다 

 아이가 갓 50일이 넘었다. 주변에서 공포를 조성하던 내용에 비하면, 육아는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 물론 내 아이가 조금 순한 것도 있을 것이고, 육아는 점점 힘들어지는 것이니, 벌써부터 괜찮다고 마음을 놓을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둘만 살던 때에 비하면, 하루 종일 쉬는 시간은 없고, 집에 있으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잠시 가만히 있으려고 해도 산적해 있는 일들이 보이거나, 또는 쌓이면 힘들어질 것 같은 일들이 보이면서 다시 움직이게 된다.




 지난 목요일에 오전 반차를 쓰고 아이와 함께 병원을 다녀온 후에, 부랴부랴 오후에 출근을 했다. 회사 도착하니 정말 진이 다 빠져서 바로 더블샷 아메리카노를 두 잔이나 연속으로 마셨다. 출산 휴가로 밀린 일을 처리하려니 회사에서도 쉴 시간은 없다. 눈 깜짝할 새에 퇴근시간이 되어 집으로 다시 향한다.


 몸이 천근만근이다.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앞에 태권도 도복을 입은 청년이 여자 꼬마아이 둘을 인솔해서 태권도 학원으로 데려가고 있다. 아주 건강해 보인다. 어깨가 처져서 걸어가는 나와는 너무 다르다는 생각에, 다시 허리와 어깨를 펴고 힘차게 걸어본다. 아빠가 축 쳐져 있으면 아이는 얼마나 재미없을지, 심심할지, 또는 부끄러울지 생각해 본다. 아빠가 아프기라도 하면, 아이는 얼마나 불안할까. 내 아버지는 어땠지? 잠깐 상념에 잠긴다.




 경찰 일을 오래 하셔서인지는 모르겠다. 아버지는 강한 분이다. 내적으로도 강하지만, 외적으로는 더 강하다. 내 기억에 아버지는 편찮으신 적이 없다. 감기 정도야 걸리셨지만, 힘들다거나 아프다고 내색하시지 않았다. 이 아픔을 내색하지 않는 것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아버지의 성격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경찰 근무 중 교통사고가 나서 얼굴이 만신창이가 되셨었는데,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걸어서 대학병원 응급실로 들어가서 쓰러지신 분이다. 전신마취 수술을 7번이나 해야 했던 상태에서도, 누군가에 의지하지 않으려 하는 성격인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점점 나이 드시면서 몸이 안 좋은 부분이 있으면서도 숨기시는 게 아닐까 항상 걱정된다.


 나는 어떤가 생각해 봤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 몸살 나서 떨면서 집에 가는 길에 어머니께 전화해서 온수매트 좀 켜놔 달라고 했는데 어머니가 안 켜놓으셔서,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어머니한테 엄청 화를 낸 기억이 있다. 그뿐인가. 걸핏하면 늦잠으로 대학교 1교시는 놓치기 일쑤였고, 심지어 회식 숙취로 회사를 반차내고 쉰 적도 있다. 반차라도 냈으면 다행이지, 깔끔하게 9시에 일어나서 망한 적도 있다. 그냥 엉망진창이었다.




 나는 과연 아내와 자식들 앞에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일 수 있을까. 한 번의 늦잠도 없었던 성실함. 어떤 상황에서도 강인함을 잃지 않았던 의지와 자기 관리. 솔직히 자신 없다. 하지만 해야 할 것이다. 아빠가 됐고, 좋든 싫든 물리적으로 신체적으로 가족을 보호하고 지켜내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오늘 아침에 아내와 이야기하면서, 내가 이런 말을 했다. "앞으로 회사 퇴근하다가 즉석에서 약속을 잡아 고주망태가 되어서 들어오는 건, 적어도 20년은 지나야 가능하겠지?". 이제부터 나는 예측 가능한 사람이어야 할 것이고, 그 루틴에 가족들이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하루도 아프다고 무너질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가족들을 위하는 길이, 내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이유가 된다. 성실과 건강은 자신과는 한 번도 지키지 못했던 약속이지만, 가족을 위해서라면 이 악물고 지켜야 하는 약속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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