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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원 Jun 01. 2023

다이어트와 사회생활

28일 차. 먹어야 하는 순간에는 어떻게

 팀장님이 점심을 나가서 먹자고 하셨다. 다른 사람한테 먼저 얘기했다면 나는 빠지겠다고 했을 텐데, 나한테 제일 먼저 말씀하셔서 K-직장인답게 “어디로 가실까요?”라고 대답했다. 싫은 팀장이었다면 그래도 거절했겠지만, 회사생활 10년 중 최고의 팀장님을 만났기 때문에, 이런 건 거절할 수 없다.






 안 그래도 어제저녁에 호흡 케톤 측정을 해 보니, 77ppm이라는 무시무시한 숫자가 나왔다. 기쁘기도 하지만 감량 속도가 너무 빠른 것도 썩 바람직하진 않을 것 같아서, 오늘은 좀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에, 부담 없이 점심을 먹으러 나왔다. 내 팀장님은 갈비탕을 좋아하셔서, 늘 가던 갈비탕 집으로 갔다.


무려 특 갈비탕이다


 아무래도 내가 가장 뚱땡이고, 먹는 것에 일가견이 있다는 이미지가 있다 보니, 내가 특 갈비탕을 주문한다고 하자마자 모두가 특 갈비탕으로 통일을 했다. 주문받아주시는 아주머니께 밥은 한 공기 빼달라고 했다. 재밌있는 것은, 모두들 내가 밥 한 공기 추가한다고 들었던 것이다. 지금까지의 삶의 맥락에서 볼 때, 행간을 채운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긴 하다.


 음식이 나와서 먹는데, 다들 내가 공깃밥을 먹지 않으니 놀라는 눈치였다. 당연하게도, 늘 그래왔던 것처럼, "노력한 거 치고 살이 별로 안 빠지는 거 같은데?"라는 말이 들려온다. 괜찮다. K-월급쟁이의 세금 같은 거다. 악의 없이 던지는 무례한 말. 굳이 상처받을 게 없다. "그러게요, 잘 안 빠지네요 헤헤" 하고 갈비탕을 먹는다.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은 국물과 무, 고기다. 사실 이 국물에도 당분이 들어갔겠지. 하지만 그런 것까지 신경 쓰면 인생 살기 힘들다. 주어진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인 밥과 당면 안 먹기 정도만 성공했다면, 어떻게 할 수 없는 나머지에 스트레스받을 필요는 없다. 맛있게 먹으면 그만이다. 







 다 먹고 들어와서, 오후 업무를 시작했다. 단식 후 첫 끼니 었던 것과, 오랜만에 먹은 점심이라는 점, 거기에 외식이라는 것이 합쳐 저 정말 소화가 하나도 안 되는 느낌이었다. 밥 한 공기도 먹지 않았고, 당면 남기느라 국물도 같이 남겼다. 예전에 설거지 수준으로 먹던 것에 비하면 절반 정도 먹은 것일 텐데도, 이 답답한 속을 달랠 길이 없어서, 서랍에서 애플사이다비네거를 꺼내서 계속 타 마셨다. 


 원래 오늘은 뭔가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집에 가는 길에 삼겹살 한 근 정도 사서, 어머니가 주셨던 두릅과 함께 먹으려고 했었다. 만약에 탄수화물을 먹을 거면 세발나물 파스타를 해 먹을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소화도 안 되고(물론 맛은 있었다.), 계획하지 않았던 단백질 섭취가 있다 보니, 오늘은 고기를 먹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집에 가는 길에 마트에 들러서, 아내 저녁용으로 무와 쪽파만 사서 집에 왔다. 아내의 오늘 저녁은 냉메밀소바이다.


쯔유와 다시마육수로 맛을 내고, 강판에 간 무와 쪽파를 올린 냉메밀소바


 아내에게 식사를 해 줄 때는, 다이어트가 필요 없는 사람임에도 나와 비슷한 식단을 적용하려 노력 중이다. 아내는 모유 수유를 하고 있기 때문에, 탄수화물이 부족하면 안 된다. 임산부도, 성장기 소아청소년도 마찬가지다. 나처럼 강렬한 탄수화물 제한을 걸 수 있는 대상은, 더 이상 성장하지도, 누군가를 성장시키지도 않는 30대 이상의 남성과, 더 이상의 출산/수유가 없을 여성이다. 물론 임신 전까지 케토시스를 통한 다이어트를 할 수는 있겠지만, 임신 시점부터는 절대 하면 안 된다.


 그런 이유로 아내에게는 지속적으로 탄수화물이 포함된 식사를 만들어주지만, 최소한 단순당은 없애고, 복합탄수화물 위주로 준다. 통곡물로 만든 메밀면과 파스타로 면은 한정하고, 밥은 백미 없는 잡곡으로 한다. 가끔 빵을 먹지만, 그럴 때는 시럽이나 잼, 꿀 등이 발라져있지 않은 빵으로 제한하고, 되도록 버터나 올리브유와 함께 먹도록 유도한다. 다행히도 입맛에 맞는지 좋아한다.






 나는 오늘 점심을 외식했지만, 샐러드 수령시간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들어왔기 때문에 샐러드를 수령했다. 집에 와서 메밀소바를 먹는 아내 앞에 앉아, 샐러드에서 감자와 병아리콩, 현미밥을 덜어내고, 에그(아보카도) 마요샐러드와 과카몰리를 얹은 뒤, 트러플 올리브유를 뿌려서 먹었다. 에그마요샐러드와 과카몰리 모두, 더 이상 보관하면 안 될 것 같아 평소보다 많이 먹었다. 아마 내일은 케톤이 조금 떨어지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의도했던 영역이고, 점심때 사회생활과 다이어트의 균형을 잘 맞췄다는 점, 계획했던 저녁 고기를 먹지 않고 샐러드로 잘 마무리한 점을 생각해 보고 스스로 만족을 찾는다. 이 정도면 훌륭한 다이어트였다고 자부하면서, 힘내서 내일 또 다이어트를 지속해 나갈 것이다.




28일 차 체중 : 97.5kg (어제보다  0.65kg 감소 / 목표 체중까지 19.05kg 남음)

 - 호흡 케톤 : 66ppm

 - 28일 차 식사 : 탄수화물 제거한 베이컨 샐러드, 아보카도마요네즈샐러드, 과카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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