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원 Jul 26. 2023

저항성 전분의 위력

[특집] 야, 너두 쌀밥 먹을 수 있어

 스팸은 엄청난 열량을 자랑한다. 스팸 오리지널의 영양 성분표를 보자.



 300g에 1,020kcal다. 스팸의 약 100g 정도는 지방이기 때문에, 여기서 거의 900kcal에 달하는 열량을 담당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탄수화물의 총량은 6g, 물론 이 6g은 100% 단순당이다. 스팸 제조과정을 상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아마 돼지고기에서 발생한 당류가 아닌, 조미 과정에서 들어간 당류일 것이다. 성분표에 나와있는 백설탕으로 추정한다.


 스팸은 엄청난 칼로리와 일부의 백설탕을 함유하고 있음에도, 탄수화물, 그중에서도 단순당을 가장 경계하는 나의 다이어트 기준으로 볼 때, 그렇게까지 나쁜 음식은 아니다. 물론 아질산나트륨이나 폴리인산나트륨 등의 가공물질이 있지만, 매일 스팸만 먹는 것도 아니고, 살면서 한두 번씩 먹는 정도로는 괜찮다고 본다.






 이렇게까지 스팸을 옹호하는 밑밥을 깔았던 것은, 내가 오늘 스팸 삼겹살 김치찜을 먹은 것을 정당화하고 싶어서이다. 퇴근길에 삼겹살과 스팸을 사서, 집에 도착해서 한 냄비 끓여서 아내와 뚝딱 해치워봤다.


스팸 삼겹살 김치찜


 스팸에 들어간 조미료가 많기 때문에, 별 다른 감미료는 필요하지 않다. 삼겹살과 스팸의 기름이면 차고 넘치게 맛있는 김치찜이 완성된다. 한국인이라면 이것을 보고 쌀밥이 떠오르지 않을 리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다이어트 중이지 않나, 쌀밥을 먹어도 될까?






 사실 지난 주말, 내가 운동을 나가야 해서 부득이하게 아내의 점심을 주문해서 먹은 적이 있다. 세트메뉴를 주문했더니, 백미밥이 약 1.5인분이 와서, 입이 짧은 아내는 0.5인분 정도를 먹고 1인분은 냉장고에 넣어놨다. 이 찬 밥이 생긴 것을 보고, 저항성 전분을 테스트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냉장고의 온도는 약 1도에서 4도 사이로 유지된다. 이 온도에서 밥이 오랜 시간 있으면, 밥의 녹말이 저항성 전분으로 변한다. 저항성 전분.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본 듯한 말이다. 용어는 정말 많이 사용되는 것에 반해, 정확히 저항성 전분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미디어나 자료는 별로 없다. 그러니 잠깐, 머리 아픈 내용을 읽어보고 가자. 한 번만 읽어보면 앞으로 다시는 볼 일 없는 내용이니 꾹 참아보자.


 저항성 전분(resistant starch)이란, 말 그대로 소화에 저항하는 전분이란 이야기다.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은 곧, 흡수가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혈당을 천천히 올리고 살이 덜 찐다는 이야기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과학적으로 이해하려면, 전분의 존재 형태에 대한 간단한 지식이 필요하다.


- 단순당은 보통 6탄당이라고도 불린다. 탄소(C)가 6개 있어서다.

- 탄소가 물과 만나면, 탄소가 수화되었다 하여 탄수화물이다.

- 단순당이 알파결합을 하면 녹말(전분), 베타결합을 하면 셀룰로오스(식이섬유)가 된다.

- 알파결합은 소화/흡수가 가능, 베타결합은 불가능하다. 즉 식이섬유는 살이 안 찐다.

- 알파결합의 형태는 아밀로스와 아밀로펙틴으로 나뉜다.

- 아밀로스는 단순당의 1번 탄소와, 다른 단순당의 4번 탄소가 결합하는 것이 반복되는 사슬 구조로다.

- 아밀로펙틴은 아밀로스 내 5번째 단순당의 1번 탄소가, 다른 아밀로스의 6번 탄소와 결합한 구조다.

- 아밀로스는 당 개수에 비해 차지하는 부피가 작고, 아밀로펙틴은 부피가 크다.

- 당 개수에 비해 부피가 작으면, 소화 효소가 달라붙을 수 있는 면적도 작다.

- 즉, 소화가 느리다.

- 아밀로펙틴은 상대적으로 많은 소화효소가 붙을 수 있어서, 소화가 빠르다.

- 밥이 오랜 시간 동안 냉각되면, 아밀로스 형태의 전분이 증가한다.

- 아밀로스 비율이 증가한 밥은, 소화/흡수 속도가 느려진다.

- 이를 저항성 전분이라 한다.

- 대신 사슬모양으로 정리하기 쉬운 아밀로스는, 빽빽하게 배열되는 특징이 있다.

- 분자가 빽빽해지면, 단단해진단 이야기다.

- 즉, 밥이 저항성 전분이 되면 딱딱해진단 얘기다. 찬밥이 딱딱한 이유다.


 여기까지, 알아두면 어디 가서 아는척하기 좋은 내용이다. 결론은 밥이 냉각되면, 살이 덜 찌는 형태가 되지만, 맛이 없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물론 찬 밥을 그대로 먹을 필요는 없다. 다시 데워도, 저항성 전분의 형태는 유지되므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맛없는 밥은 어떻게 해결할까. 내 아내는 출산 후 산부인과에 있을 때부터, 내가 전달해 준 올리브유를 밥에 뿌려먹는 습관이 생겼다. 다행인 것은, 아내가 이걸 더 맛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올리브유를 먹는 습관이 들지 않은 경우, 밥에 뿌려 먹으면 훨씬 찰기가 느껴지고 고소한 맛이 증가해서, 거부감 없이 올리브유 섭취를 늘릴 수 있다. 저항성 전분이 된 밥에도 같은 방법을 적용해 볼 수 있다. 밥이 더 맛있어지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코코넛 오일이나 올리브유를 넣고 밥을 하면 저항성 전분이 증가한다는 주장도 있다. 다만 과학적 근거를 서술한 자료를 찾지 못해 이 정도만 언급한다.)


 오늘 내가 먹은 밥을 보자.


 냉장고에서 이틀 넘게 땡땡 굳어서, 전자레인지로 데웠음에도 사각형이 풀어지지도 않는 상태다. 그래도 올리브유를 잔뜩 뿌렸더니 약간 윤기가 돌고, 먹어보니 맛있다. 다이어트하는 사람이 이런 거 먹을 수 있는 게 어디인가.


 오늘의 저녁식사에는, 위의 두 가지만 있었다. 저항성 전분으로 이루어진 밥과, 스팸 삼겹살 김치찜. 먹기 전의 혈당을 보자.


저녁 6시 29분. 식사 직전의 혈당은 95mg/dL


 식사는 약 한 시간 정도 걸렸다. 식후 1시간, 그리고 식후 2시간 혈당을 보자.


저녁 8시 33분. 식후 1시간 혈당은 100mg/dL


저녁 9시 32분. 식후 2시간 혈당은 107mg/dL


 식전 95, 식후 1시간 100, 식후 2시간 107의 혈당을 확인했다. 스팸은 한 통을 다 넣었고, 삼겹살은 480g, 김치는 반포기가 들어간 많은 양의 찌개였으며, 밥은 한 공기가 조금 넘는 양이었다. (담은 그릇이 국그릇이다.) 아내와 찌개를 나눠먹었지만, 깔끔히 비웠고, 사실 과식을 한 것이다. 그럼에도 혈당은 1시간에 5, 2시간에 12라는 매우 적은 변동폭을 보였다. 내 몸은 지금 인슐린 민감성이 좋아진 상태이기 때문에, 사람마다 혈당 변동폭은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어쨌든 저항성 전분은 혈당 상승을 제한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나야 백미밥에 대한 선호와 갈망이 거의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백미밥에 대한 갈망이 있다. 이번 가설 검증을 통해, 혈당 관리를 하거나, 다이어트를 하는 과정에서 백미밥을 먹고 싶은 사람들이 안심하고 백미밥을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물론, 저항성 전분이라 해서 혈당 상승이 없는 것은 아니고,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일 뿐이다. 나아가, 정제탄수화물에 대한 갈망과 섭취를 줄이고, 인슐린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건강 관리의 긍국적인 목표임을 인지하고, 꼭 먹어야 한다면 저항성 전분으로 섭취하는 습관을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번에는 즉석밥을 통한 가설 검증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미 한 번 가열된 상태로 유통되는 즉석밥을 냉장고에 보관한다면, 자연스럽게 저항성 전분이 형성되지 않을까 하는 가설이 있다. 기회가 된다면 이것도 검증을 진행해 보도록 하겠다. 물론 이 저항성 전분 검증은 한 끼 식사에 채혈을 세 번이나 한다는 고충이 있지만, 궁금증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또, 더 나은 정보를 여러분께 전달할 수 있다면 그 정도야 괜찮다.

매거진의 이전글 84일, 20kg 감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