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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원 Jul 31. 2023

그거 해봐야 의미 없어

[특집] 단순함에 매몰된 비관론에 대한 아쉬움

(글이 길고, 감정적입니다. 홧김에 평소 말하고 싶은 내용을 조금 격정적으로 써 봤습니다.)


 저항성 전분을 만드는 방법 중 올리브 오일을 첨가하는 것에 대해서 근거자료를 알아보고자 논문과 외신들을 찾아보는 중에, 저항성 전분을 먹는 게 큰 의미가 없다는 의견들을 만났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180, 200mg/dl의 혈당을 90mg/dl로 낮춰주는 것은 아닐 테니, 잡곡밥 먹고 운동하는 게 낫다는 말. 이해한다. 우리 삶에서 드라마틱한 효과를 보는 것들은 대부분 의사의 처방을 필요로 한다. 저항성 전분은 고작 냉장고만 있으면 할 수 있으니, 불만족스러울 수 있다.






 우린 살면서 수많은 비관론자들의 저항에 부딪힌다. 뭔가를 하려고 하면, "야, 그거 해봐야 의미 없어." 라며 초를 치는 사람들은, 인생을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게 하려는 노력들을 막아선다. 이미 사회적으로 의기소침해져 있었던 우리 같은 뚱땡이들이, 뭔가를 시도한다는 것은 굉장한 결심을 필요로 하는데, 그 장벽을 넘어서서 뭔가를 해보려고 하는 찰나에 저런 비관적인 말을 들으면, 여지없이 자신감이 무너져 내리기 마련이다. 몇 번의 반복적인 경험을 하고 나면, 누군가한테 나 살 빼려고 뭘 한다는 말도 하지 못한 채, 스스로 자기만 아는 계획을 세웠다가, 아무도 모르게 실패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우리 주변의 비관론자가 던지는 한 마디에 뚱땡이들은 이렇게 악순환을 겪는 것이다.


 살을 빼는데 불필요한 노력은 없다. 우리가 밥을 한 숟갈 덜어 먹는 것, 식사 후 10분 산책하기, 콜라 두 캔 마시던 거 한 캔만 마시기, 과자 대신 바나나 먹기, 6시 이후 저녁 안 먹기 등, 흔히들 다이어트한다고 하면 하는 모든 행위들이 의미 없지 않다. 개별 활동이 10~20kcal 정도밖에 다이어트 효과가 없을지언정, 합치면 꽤 많은 열량을 소모한다. 그리고, 적어도 하지 않는 것보다 월등히 낫다.


 다만 내가 지속적으로 매거진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은, 더 쉽고 더 나은 방법으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것이 기존의 노력들이 의미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사소한 노력들이 모이면 분명히 효과가 있다. 다만 그것을 지속할 수 있는지, 그 과정에서 몸과 마음이 지치지는 않는지를 생각한다면, 먼저 내가 제시하는 방법으로 충분한 건강 상태를 달성한 후에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즉, 시작할 때는 더 쉬운 방법으로 시작해서 관리의 효능감을 높이고, 시간이 지나서 익숙해질수록 더 많은 행위들을 통해 더 나은 결과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 내가 주장하는 바다.






 우리 사회는 뭐든지 One best way가 있다고 믿고, 그것만을 추구하는 못된 버릇이 있다. 살을 빼는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있다면, 그것이 아니면 모두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습관. 뭐든지 단순화하고 명료화하기를 바라며, 그것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면, 그에 걸맞은 보상이 있을 것이라 믿고, 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습관. 내가 브런치북에서 언급했듯이, 이런 생각은 세상을 너무 천편일률적으로 쉽게 생각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학생 때 무작정 공부만 해서 삶이 풍족해지지는 않는다.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업을 가지면, 당연히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겠지만, 그런 맹목적인 One best way에 대한 믿음은, '난 열심히 한 것 같은데 왜 그만큼 행복하진 않을까?'라는 불행을 낳는다.


 세상 그 어떤 분야도, 뭔가를 이루는 방법은 간단하지 않다. 처음에는 획기적인 효능감을 주는 무언가가 있겠지만, 결국은 다양하고 복합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다시 한번 행복한 삶을 예로 들어보자. 삶의 행복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현재와 미래에 대한 적절한 노력의 배분이 필요하다. 현재를 즐기기 위해 햇빛도 쬐어야 하고, 적절한 취미생활도 해야 하며, 맛있는 것을 먹고, 주변의 좋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기도 하면서 동시에 나만의 시간도 일부 있어야 한다. 가끔씩은 숨이 찰 만한 운동을 하고, 평소에는 산책도 하고, 때때로 나를 위한 선물을 하기도 해야 하며, 여행도 종종 가는 것이 좋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미래를 위한 노력도 해야 한다. 저축도 해야 하고, 투자도 하면서, 미래의 금융 안정을 위해 힘써야 한다. 현재의 즐거움을 일정 수준 희생해서, 미래의 어떤 상태를 대비한 공부 등의 노력도 해야 한다. 지금은 힘들지만 미래를 위해 규칙적으로 운동해야 하고, 지금은 먹고 싶어도 미래를 위해 먹고 싶은 것을 참아야 하는 것도 있다. 지금 함께 하는 사람 외에도, 미래에 함께 할 사람을 위해 시간을 배분해야 한다. 숨이 찰 만큼 해야 할 게 많다.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삶은 보통 회피하게 된다. 그리고 더 편해 보이는 길, 예를 들어 [행복해지려면 돈이 많아야 돼]라는 한 마디를 쫒는다. 단순하게 한 군데에 열정을 쏟아 넣는 삶은, 스스로 생각해도 보람차고, 보랏빛 미래를 가져다줄 것 같은 희망도 생긴다. 그리고 초반에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고, 이 방법에 대한 믿음도 생긴다. 하지만 점점 노력하는 것에 비해 결과는 비루해질 것이고, 이게 나의 노력이 부족한 건가?라는 의심이 든다. 유튜브에서 동기부여 영상 같은 걸 보면서 의지를 다지고, 부족하다 생각하는 노력을 더 해보지만, 결과는 나아지지 않고, 쌓여가는 패배감에 자존감은 낮아진다.


 




 살을 빼는 것도 다르지 않다. 그 어떤 다이어트 방식을 가져가더라도, 처음 얼마간은 효과가 있다. 뭐든지 안 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하지만 세상 모든 것들은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The law of diminishing marginal utility)을 따른다. 효과는 점점 줄어들기 마련이다. 자신의 노력이 부족한가 하는 생각으로, 동일하지만 더 극단적인 방법을 점점 선택하게 되지만, 효과는 미약하다. 그렇게 쌓여가는 노력과 돌아오는 보상의 불균형 속에서, 우리는 점점 동력을 잃게 되고, 해당 방법은 틀렸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스스로 쌓아온 이러한 패배감은, 나에게도, 그리고 남에게도 전염된다. 누군가 뭔가를 한다고 하면, 그거 의미 없다는 말로, 자신의 잘못된 경험에서 파생된 개인적 경험을, 마치 진리인 양 말하게 된다. 듣는 이도, 본인이 겪었던 유사한 패배의 경험들이 떠오르면서, 원래 하려고 했던 것의 동력을 잃는다. 서로가 서로를 깎아먹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누군가가 살을 빼기 위해 뭔가를 하는 것을 쓸모없다 비난만 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물론 그 와중에도 성공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의 경험담이 상품화되는 과정에서, 거의 대부분 와전되거나 축약되고, 또 단순화된 메시지로만 남는다.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남궁민 배우의 대사 중, "어떤 사람은 3루에서 태어났을 뿐인데, 스스로 3루타를 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 있었다. 살을 빼는 것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살을 빼기에 너무나 적합한 몸이었을 것이다. 그 누군가는 운동을 하니 근육이 펑펑 생기고, 체지방은 쭉쭉 감소하는 멋진 몸을 타고났을 뿐인데, 그러지 못한 사람에게 "먹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운동을 안 하니까 살이 찌죠. 운동하세요."라고 말하는 메시지만 남게 된다. 또는 적절히 식사량만 줄어도 타고난 음식처리의 비효율성 덕분에 살이 쭉쭉 빠지는 사람이, "운동 필요 없어요. 먹는 양만 절반으로 줄이면 됩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에, 우리는 또 패배감을 적립해 가게 된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내가 제시하는 케톤식이법은 초반에 엄청나게 강력한 효과를 낸다. 고장 난 몸의 미토콘드리아와 부종, 염증을 오토파지를 통해 제거하고, 불필요한 식욕을 줄이며, 훨씬 더 나은 컨디션을 제공한다. 단기간에도 체중의 10% 정도는 어렵지 않게, 몸의 무리 없이 감소시킬 수 있다. 하지만 그 이후, 정상화된 몸의 '항상성'이라는 강력한 방어막에 부딪히게 되면, 케톤식이법도 여지없이 한계효용 체감을 겪는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뭐 하나라도 더 좋은 방식으로 생활 습관을 바꿔나가야 한다. 전에는 뚱뚱해서 하지 못했던 운동량을 늘리고, 먹던 고기의 일부를 생선으로 바꿔보고, 섭취하던 소량의 탄수화물이 있다면 저항성 전분이라는 방식으로 접근해 보는 것이다.


 사무실이 10층에 있다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는 습관을 들여보는 것. 지하철 한 정거장 정도는 걸어가서 타는 것. 1년에 1번 가던 등산을 두 달에 한 번 가보는 것. 테니스를 새로 배워보는 것. 정말 사소하게, 집 안에서 발 뒤꿈치를 드는 Raise on Toes 운동을 아침 점심 저녁 10번씩 하는 것. 이런 모든 것들은 케톤식이요법이 한계효용 체감이라는 장벽에 부딪혔을 때, 돌파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하나씩 효과를 보게 되면, 더 건강한 습관은 뭐가 있는지, 그리고 그중 나의 생활과 맞는 것은 무엇인지 찾아보는 재미가 생길 것이다. 더 나은 삶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야도 생긴다. 몸의 건강뿐만 아니라 마음의 건강도 챙기게 된다.


 케톤식이를 권장하는 이유는, 이러한 복잡계로 이루어진 건강 관리법에 입문하는 가장 쉬운 길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One best way라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다른 방법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결국 우리는 다방면의, 다차원적인 노력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 모든 것을 고려하고 시도하라고 한다면, 손 하나 까딱하기 힘든 상태의 우리는 아무것도 못하고 그 무게에 짓눌려 포기하게 된다. 그러니 가장 쉬운 것부터 해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여유가 생기면, 더 많은 것을 해 보자. 세상에 살 빼는데 도움이 되는 것들은 너무나 많다. 어떤 한 가지 행위에 대한 맹신을 지양하고, 나와 맞는 건강한 습관을 찾아보는 것들,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공부는,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 모두에게 긍정적인 외부효과를 가진다. 서로가 비난과 염세를 주고받으면서 함께 멸망하는 길을 걷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단순함에 매료되지 말자. 선언화 된 문구, 간추려진 헤드라인, 명언화 된 메시지는, 그 저변에 반드시 프로파간다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 표준화와 서열화, 욕망의 단순화, 노력하는 방식의 일원화를 통해 이익을 취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말에 휩쓸려, 스스로를 잃고 패배감을 쌓아가고, 또 재생산하지 말자. 우리가 하는 모든 노력은 다 의미가 있다. 나는 내 글을 통해, 그 순서를 재배치하고, 더 효과적인 길을 제시할 뿐이다. 삶은 결국 하나의 방법으로 행복해질 수 없고, 매 순간 정성을 들여서 가꿔나가야 하는 것임을 잊지 말자. 내 몸과 마음이 평생에 걸쳐 만들어가는 예술작품이라 생각하면서, 여러 가지 도구와 방법을 공부하고 시도하고 연습하는 마음을 우리 모두가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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