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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Nov 16. 2020

종로빈대떡 창동
: 비가 오는 날엔 나를 찾아와

ESSAY


건물 유리창에 부딪히는 요란한 빗소리가 전 부치는 소리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몸을 싣는 대신 종로빈대떡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아주 오래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전집인데도 어쩐지 트로트보다는 최신가요가 어울리는 신기한 가게, 종로빈대떡. 반대편에 앉은 이름 모를 사람의 온기를 등받이 삼아 젓가락을 움직이다 보면 축축해진 바지 밑단은 자꾸 조금 더 먹다 가도 괜찮다며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그리고 귓가에 들리는 소리가 빗소리인지 기름에 빈대떡을 부치는 소리인지 구분이 안 될 때쯤, 손을 번쩍 들고 외치게 된다. 사장님, 여기 막걸리에 빈대떡 하나 추가요! 




원래는 할머니가 이 자리에서 종로빈대떡을 24년을 하셨거든요. 제가 그대로 물려받아서 지금 한, 4년 됐나? 저는 가게 하기 전에는 개그맨 매니저였어요. 개그맨들 기획사 운영하고. 지금은 에이전시로 바꿔서 하고 있어요. 에이전시 일 보면서 가게 일하고. 투잡이죠, 투잡.

 

비가 오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파전에 막걸리를 떠올린다. 그래서 비가 내리는 날이면 종로빈대떡은 더 바빠진다. 빗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묵묵히 빈대떡을 부치는 양동기 사장님은 30년 가까이 됐다는 가게의 주인이라기에는 젊어 보였다.  푹 젖은 우산을 돌돌 말며 종로빈대떡에 찾아온 손님들이 각자의 사연을 품고 있는 것처럼, 사장님 역시 사장님의 사연을 품고 있었다. 4년 전쯤, 가게를 맡게 됐다는 30대 중반의 사장님은 요리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지금보다 더 젊었던 시절, 대학로 공연장에서 일하다 자연스레 개그맨 매니저 일을 시작했고 기획사도 운영했다. 그러나 한참 사업을 이어가던 중, 문제가 생겨 결국 기획사를 닫게 됐고 고모부의 제안으로 종로빈대떡 가게를 그대로 물려받게 됐다. 전문적으로 요리를 해본 적도, 관련된 직업을 갖게 될 거라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던 사장님의 장사 처음 1년은 눈물과 함께한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고생 많이 했죠. 울면서 했으니까, 너무 힘들어서. 육체적인 건 어떻게든 감수할 수 있는데 금전적인 부분에서 처음 1년 동안은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저 혼자였으면 모르겠는데 제가 와이프도 있고, 애들도 있다 보니까.”     



첫 장사다 보니 당연히 미숙한 부분이 많았다. 가장 애를 먹었던 부분은 전판 조절이었다. 맛있는 전을 부치기 위해서는 전판의 각도와 사이즈가 중요했는데 가게의 전판은 묘하게 어긋나있었다. 고민하던 사장님은 다른 종로빈대떡 지점도 찾아 가보고, 인터넷으로 검색도 하면서 전판을 조절했다. 가게 인테리어도 조금씩 손을 봤다. 조명을 바꾸고, 미니 간판을 달고. 그러자 사람들이 가게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사실 이렇게 안정적으로 장사할 수 있게 된 건 장모님이랑 일해주시는 이모님 덕이 컸죠. 두 분이 전 이외 메뉴 맡아주시는데 그 메뉴들 때문에 손님이 많이 늘었어요. 저 대신 단골 관리도 잘해주시고요. 그리고 진짜 아들 가게처럼 맡아주셔서 저도 에이전시 일 시작할 수 있었고요.”     


기름 위에서 튀겨지듯 부쳐낸 파전에 막걸리를 홀짝이다보면 자연스레 매콤한 음식을 찾게 된다. 그렇게 테이블 위에는 골뱅이무침이 추가되고 골뱅이 한입, 막걸리 한잔 마시다 보면 다시 또 시원한 국물이 땡기고…그래서 전집에는 항상 파전 외에도 다양한 안주가 구비되어있다. 물론 종로빈대떡도, 마찬가지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파전은 물론이고 장모님의 손맛이 팍팍 들어갔다는 안주들까지 보다 보면 저절로 입에 군침이 고인다.      



“제일 잘나가는 메뉴는 아무래도 김치고기빈대떡이랑, 해물파전이죠. 근데 또 젊은 분들은 무조건 모듬전. 솔직히 모듬전이 가성비가 좋거든요. 종류별로 푸짐하게 나가는데 2만원이니까. 전 종류 말고 다른 메뉴에서는 골뱅이무침. 골뱅이무침도 가성비가 좋아요. 그리고 젊은 분들은 순두부 수제비도 많이 드세요.”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내는 것은 기본이고 사장님은 추가로 청소와 식자재 관리에도 공을 쏟았다. 매번 전판 위를 깨끗하게 청소했고 식자재의 경우 겉으로는 멀쩡해도 유통기한이 넘었다면 바로 폐기했다. 음식 맛에 청결까지 더해지자 손님들이 다정한 인사를 건넸다. 사장님, 너무 맛있어요.      


“아무래도 손님들이 맛있다고 해주실 때 제일 뿌듯한 것 같아요. 와, 여기 맛있다. 여기 이런 분위기 너무 좋다. 이런 말들. 그리고 또 할머니 때부터 오셨던 단골손님들이 계속 찾아주시고, 할머니 때보다 맛있는데? 해주시면 너무 뿌듯해요. 근데 사실 단골손님들은 다 고마운 것 같아요. 계속 가게 찾아주시는 거니까.”     





고백하자면, 사장님은 기름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기름 냄새도 싫고 기름이 몸에 튀는 느낌도 싫어했다. 그런데 전을 부치는 일이란, 기름과 사투를 벌여야 하는 일이었고 매일 하루를 기름과 땀에 범벅이 된 채 마무리해야 했다. 이런 시간 속에서 사장님을 버티게 한 건, 역시 손님들의 따뜻한 한마디였다.     


“저희가 배달도 같이하는데 배달 리뷰 보면서도 흐뭇하죠. 맛있어요. 푸짐해서 좋아요. 이런 리뷰들 보면 아, 아끼지 말아야겠구나. 팍팍 넣어줘야겠구나. 하고 의지도 다지고(하하).”

     

아무래도 음식만큼 술의 비중도 큰 가게다 보니 힘들게 하는 손님들도 많지만, 힘 나게 해주시는 손님도 많다며 사장님이 웃어 보였다. 사장님의 웃음에서 가게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오는 것 같았다.    

 



여기가, 창동에서 제일 오래되고 제일 맛있는 집으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저는 진짜 이 가게, 오래 하고 싶어요. 그리고 혹시라도 나중에 제가 나이 들어서 못하더라도 계속 전집이 운영됐으면 좋겠어요. 그런 거 있잖아요, 백 년 가게. 창동 여기 가면 종로 빈대떡 있잖아. 그런 얘기가 계속 들리는. 

  

전집은 이상하다. 모르는 사람들의 등이 닿을락 말락 한 거리에서 술잔을 기울여도 불편하지 않고 평소 같았으면 질색을 했을 기름 냄새도 아무렇지 않게 느껴진다. 종로빈대떡은 이상하다. 사장님이 정성스레 부쳐낸 파전을 입에 넣다 보면 그런 사소한 불편쯤은 모두 추억이 되고 어느새 앞자리에 앉은 친구에게 속삭이게 된다. 우리 여기 또 오자. 그러니까 사장님의 바람대로 아주 오래 종로빈대떡이 이 자리에 있기를 우리 역시 바라본다. 비가 오는 날이면 언제든 찾아와 파전에 막걸리 한 잔 기울일 수 있도록.





인터뷰 정유진 천예원

 정유진

사진 김싱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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