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유에 대한 지나친 기대가 산모를 우울하게 한다
“이야기 들어보면 두 달 넘게 노력해서 완모하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제가 노력도 안 해보고 너무 쉽게 분유를 선택한 것은 아닌가. 노력이라도 해보고 어쩔 수 없다면 분유를 먹일 걸 그랬나? 후회돼요!”
분유를 선택한 산모들에게 더러 듣는 말이다. 간혹 “.아직 (출산) 한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아직 늦지 않았다는 사람들도 있던데 노력하면 먹일 수 있을까요?”와 같은 질문을 하는 산모도 있다.
‘오죽하면 한 달 동안이나 젖을 물리지 않아 이젠 거의 나오지 않는 젖을 살려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할까?’
어쩔 수 없이 모유를 포기했지만 한편으로 모유를 먹이지 못한 것에 대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죄책감 같은 것 때문이란 걸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측은한 한편 생각이 분분해지곤 한다.
1990년대에 두 아이를 출산했다. 우리나라에 제왕절개 붐이 일었던 때였다. 자동적으로 분유붐도 일었었다. 당시 “모유는 한 달만 지나면 묽어져 영양이 좋지 않다”라거나 “아기 성장에 맞춘 분유가 아기에겐 훨씬 좋다”와 같은 말들로 분유를 예찬하는 사회 분위기였다. 모유를 먹이는 사람들을 시대감각이 없는 사람으로 간주하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 말부터 자연주의 출산 붐이 일기 시작, 2000년대 들어 더욱 강해졌다. 자연적으로 모유 붐도 일었다. 모유에 대한 예찬이 쏟아졌다. 때문일까. 모유에 대해 지나친 기대(모유 신화라고도 한다)를 가진 사람들도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기대로 그치지 않고 모유 수유로 모성의 정도를 지레짐작하는 사람들까지 있었고 말이다.
“우리 와이프는 돌때까지 완모했잖아요!”
그무렵 고향 후배를 만날 일이 있었다. 이렇게 밋밋하게 표현하지만, 그 후배는 워낙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당시 어떤 이야기들을 했는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동안 모유 때문에 맘고생을 하는 산모들을 볼때면 더러 생각나곤 했던 것은 그날 그 후배에게서 모유에 대한 지나친 환상을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모유가 좋긴 하겠다. 그런데 모유를 먹이고 싶어도 먹이지 못하는 산모도 많다.
요즘 주로 만나는 산모들은 ‘1980년 중반 무렵~ 출생’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태어났던 무렵 우리나라는 급속성장 중이었고 각종 문명 기기들 또한 급속하게 보급되었다. 문명 기기의 혜택을 듬뿍 받으며 태어나고 자라 누리며 살아가는 세대들이 요즘 산모들인 것이다.
출산은 힘들다. 고통스럽다. 옛날 여성들 역시 출산은 목숨을 걸 정도로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산모들에게는 더욱 힘든 일이 되고 말았다. 문명의 혜택을 듬뿍 받는 생활이라 몸이 편안해졌기 때문이다.
출산의 고통이나 불안은 시대와 상관없이 여전한데 삶의 많은 것들을 문명이 대신해주는 세상에 살아온 몸이라 더욱 고통스럽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더욱 큰 스트레스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산모 의지와 상관없이다.
게다가 의식하든 하지 않든 '분유라는 대체식'이 우리의 의식 속에 있다. 아기가 먹을 것이라곤 오직 젖밖에 없어 어떻게든 내 젖을 먹여야만 했던 옛날 산모들과 절박함 정도가 다른 것이다. 이러니 젖을 먹이고 싶은 의지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젖이 크게 늘지 않거나 우여곡절을 겪는 경우가 예전 산모들보다 많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자주 물려라"
"하루 8~12회 물려라"
그럼에도 대부분의 수유 지침서들은 요즘 산모들의 이런 사정을 간과, 이처럼 제시한다. 이렇다 보니 아무리 봐도 젖이 거의 나오지 않는데 ‘자주 물려라’에 집착해 오직 젖만 물리겠다는 산모들도 있다. 그래서 아기가 생존에 꼭 필요한 최소한의 영양도 섭취하지 못해 탈수로 이어져 불행한 일로 이어지기도 한다.(2011년 실재로 발생했다.)
모유에 대한 지나친 기대 혹은 환상으로 젖을 먹일 수 없는 내 몸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모유 마사지만 받으면 능사라는 생각에) 비싼 돈 들이며 헛수고하는 산모들도 있다. 혹은 몸살을 앓으면서까지 안고 직접 먹이는 수유, 즉 직수를 고집하는 경우도 있다.
젖양이 느는 것에 방해가 되는 것은 대략 ‘스트레스’와 ‘영양 상태’, 그리고 ‘휴식 부족’이다.
출산으로 몸은 이미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다. 예전 산모들보다 편안해진 몸 그만큼 훨씬 강도 높은 그런 정도의 스트레스를 말이다. 스트레스가 심하면 몸 스스로 살기 위한 어떤 방어를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중 하나가 젖을 줄여버리는 것. 그에 모유에 대한 지나친 기대, 즉 모유에 대한 환상까지 얹어져 스트레스는 더욱 많아진다. 젖을 먹이고 싶지만 먹일 수 없는 상태가 될 가능성이 많아지는 것이다. 물론 산모의 의지와 상관없이 말이다. 그러니 젖이 적은 산모라면 최대한 마음 편하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