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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여니맘 Oct 24. 2022

아기는 태어나는 순간 독립적 존재

산모에게 책 한 권 <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

'살해 후 극단 선택... 이런 비극 8년간 매주 1건씩 있었다'


지난 10월 3일 자 한 신문의 기사 제목이다. 보건복지부 제출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2013~2020년 동안 제목처럼 가족 누군가를 살해 후 자살한 가해자는 416명, 해마다 52명꼴이란다. 피해자는 대개 어린 아이나 연로한 부모 혹은 장애를 앓는 경우인데, 6세 미만 피해자가 갈수록 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아울러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이는 동반자살은 포함하지 않은 통계라는 것이다.


이런 뉴스를 볼 때면 생각나는 사연 하나.


1980년대 중반, 이혼 후 우울증을 앓던 여자가 기찻길에 뛰어들어 자살한다. 안타깝게도 '두 살 아이를 안고'였다. 엄마는 즉사하지만, 아이는 12시간의 수술 끝에 다. 그러나 두 다리를 잃는 엄청난 장애를 입은 상태로였다. 그런 아이가 갈 곳이라곤 이미 몇 년 전 일흔을 넘긴 외조부 부부, 즉 엄마의 친정 부모뿐. 하지만 이미 몇 년 전에 일흔이 넘은 노부부가 두 살 배기 어린아이, 그것도 두 다리가 없는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기가 쉽지 않았다. 아이는 노부부와 한 달 남짓 지낸 후 홀트아동복지회에 맡겨진다.


홀트아동복지회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5년에 설립, 지난 수십 년간 우리나라의 수많은 고아들을 해외로 입양시킨(드믈지만 국내 입양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단체다. 책에 의하면, 아이가 새로 들어오면 "이 아이는 언제쯤 입양될 것이다" 관계자들끼리 습관적으로 점치곤 했단다. 하지만 그 아이는 그 누구도 어떨 것이다 예측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당시 장애를 가진 아이만을 입양하는 외국인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성장 속도에 따라 주기적으로 몸에 맞는 의족으로 교체해줘야 하는 경제적인 부담'까지 감당해야 하는 등 아이의 장애가 워낙 특별하고 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과 달리 몇 달 되지 않아 입양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난다. 오히려 이쪽에서 '아이의 장애상태를 제대로 알렸는가, 그래서 입양하겠다는 사람이 아이의 장애를 제대로 알고는 있는가' 거듭 확인하며 수속을 마쳤다고 한다.


장애아란 걸 알고 입양을 희망했으나 막상 입양을 포기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는 그와 같은 일조차 전혀 없이 무사히 입양된다. 병원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입양 희망자가 장애인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인데 하필 의족이나 의수 같은 장애인 보조기 구들을 처방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아이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장애를 입은 그 아이를 위해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가 알맞춤한 사람을 수소문해 입양하게 하는 마술이라도 부린 것과 같은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오죽 살기 힘들면 어린것들 데리고 죽을 결심을 다 하겠느냐 하지만, 나는 이런 부모에게 도무지 동정심이 생기지 않는다. '아이들과의 동반자살'이란 게 말이 '자살'이지 실상은 '살인'이다. 고아가 되어 불우한 삶을 사느니 차라리 함께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건 그야말로 부모의 오만이자 착각이리라. 아이들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며, 그 생명은 더더욱 부모가 좌우할 만한 게 아니다. 남겨진 아이들이 어떻게 될지 그 누가 확신할 수 있을까..... 솔직하게 말하면 아이를 처음 만났을 때는 이런 모습으로 사느니 차라리 엄마와 함께 갔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교만한 생각이었다. 생모와 함께 데려가지 않고 신이 아이를 살려놓은 이유, 이토록 가여운 모습으로 살려놓은 이유가 분명 있었다. 행복해질 기회, 아무도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그 기회가 아이의 앞날에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71~76쪽에서)


오른쪽 사진은 저자에게 주기적으로 보내왔다는 사진 중 하나...책에서



<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란 책에서 읽은 사연이다. 저자는 시립아동병원과 홀트병원(홀트아동복지회 부설 병원)에서 50여 년 근무, 수많은 고아들의 주치의이자 엄마였던 조병국 원장이다. 이 책은 조병국 원장이 퇴임 후 병원 생활을 회고, 병원에서 만난 특별한 사연 22개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아이에게 일어난 기적은 입양으로 끝나지 않는다. 입양 후 의족을 달았지만 당당하게 서서 밝게 웃는 모습을 시작으로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아이가 여러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모습 등 성장 과정을 알 수 있는 사진을 20년 가까이 보내오는데 마지막으로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씽씽 달리는 청소년기 모습으로 장애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런 모습의 사진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오죽 처참했으면 차라리 동반자살을 감행한 엄마와 함께 죽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싶었을 정도로 최악의 장애를 가진 아이와 그런 아이를 품어준 양부모가 장애를 극복해낸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희망의 빛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출간(2009년 11월) 직후인 2009년 겨울에 읽었다. 한 꼭지 이상을 읽지 못했다. 생명을 버리는 사람들에 대한 인간으로서 그래선 안되지만 그렇다고 비난만을 할 수 없는 그런 복잡한 생각들과, 버려진 생명들과 그 생명들을 거두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기적과 감동, 안타까움과 안쓰러움 등, 여러 가지 색깔의 감정들이 책을 읽는 내내 복잡하게 얽혀 드는 동시에 불쑥불쑥 울컥해져서였다.


산후관리사 4년 차로 넘어갈 무렵이었다. 2.7kg으로 태어난 아기를 케어하던 중이었다. 아기들은 출생 직후 몸무게가 다소 줄게 된다. 태변이나 필요하지 않은 수분 등이 빠져나가는 데다 갓 태어난 아기는 빠는 힘이 약해 오래 빨아도 많이 먹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하간 아기에 따라 차이는 좀 있지만, 산후조리원 살이 2주 후 만나게 되는 아기 대부분 몸무게가 조금이라도 늘어있다. 그런데 워낙 작게 태어났기 때문일까. 그간 몸무게가 좀 늘어 2.9kg로 퇴실했다지만 너무나 가냘프기만 했다. 배냇저고리마저 버거워 보일 정도로 가냘펐다.


경력 4년 차로 접어들었지만 그처럼 작은 아기는 처음이었다. 별문제 없으니 병원에서 내보냈겠지, 산후조리원에서도 별일 없었다는데 뭔 일이 생기겠어? 했지만 한편으론 아기가 어떻게 될까? 조마조마, 하루하루가 불안했다.  어떻게 한 달을 채우나?  어떤 핑계라도 만들어 다른 관리사님에게로 미뤄볼까? 불안해서 못하겠다고 사무실에 이야기해볼까 등, 부끄럽고 어리석은 생각을 몇 번이고 고쳐하곤 했다.


같은 것이라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전혀 달라지는 것을 종종 느끼곤 한다. 아기를 돌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첫날부터 한동안 걸핏하면 배냇저고리 소매에 팔이 접힌 채로 있거나, 팔이 빠져나오곤 해 하루에도 몇 번이나 배냇저고리를 고쳐 입히며 솔직히 처음엔 좀 귀찮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팔이 자주 빠져나오는 것은 아기의 움직임이 그만큼 강하기 때문, 그만큼 건강하기 때문이다'로 생각되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더 이상 귀찮게 생각되지 않았다. 어서 빨리 자라고 싶은 아기의 건강한 의지 때문에 그처럼 자주 벗겨진다는 생각과 함께 슬며시 웃음이 나곤 했다. 이렇게 그 아기를 돌보는데, 아니 극복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단체 보육시설의 아이들은 더디 자란다. 넉넉하게 먹이는데도 늘 생기가 없고 병치레가 잦다. 아이들을 쑥쑥 자라게 하는 건 쌀 한 톨, 우유 한 모금이 아니라 엄마의 다정한 어루만짐과 따뜻한 눈빛이다…. 병원에서 신경을 써도 골골하던 아이들이 위탁모의 품으로 넘어간 뒤엔 포동포동 살이 오르고 볼이 발그레져 방문하곤 했다. 한편으론 섭섭하고 한편으론 그렇게라도 엄마 품에 안겨본 아이 생각에 안도하기도 했다.-<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에서.      


아기가 유독 보채는 것은 속이 불편하거나 혹은 불안하거나 등 어딘가 불편해서다. 그런 아기는 오래 안고 토닥거려주거나 등을 쓸어주거나 하면 한결 나아진다. 그런데 그만큼 많이 안아주거나 오래 안고 있어야 하니 몸이 많이 힘들다. 예전에는 유독 많이 안아줘야 할 때 그냥 참고 견디자였다.


그런데 유독 작게 태어난 그 아기를 돌보며 아기에 대해 그리고 육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며 '아기가 안아달라고 하는 이유가 있겠지'로 생각하게 됐다. 그러면서 아기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었고 보다 섬세하게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로 더 많은 것들을 보게 되었다.


이 책은 아기를 돌보며 이렇게 생각하게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러니 고마운 책이다.


남매를 뒀다. 아이들이 청소년기를 지날 때 책을 만났다. 아이들에게 유별나거나 집착하는 엄마는 아니었다. 그런데 독립적인 존재로서도 고민해본 적도 없다. 다만 소중한 내 아이 들이었다. 이런 두 아이를 독립적인 존재로 확고하게 인식하는데도, 그리하여 부모로서의 제대로 된 역할에 대해 고민하는데도 책이 도움되었다.


이처럼 육아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은 물론 자식을 소유물이 아닌 독립적인 존재로 인식하는데 도움되었던 책이라 그동안 만났던 산모들에게 권하곤 했다.


두 다리를 잃은 아이의 이야기는, 특히 '생모와 함께 데려가지 않고 신이 아이를 살려놓은 이유, 이토록 가여운 모습으로 살려놓은 이유가 분명 있었다. 행복해질 기회, 아무도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그 기회가 아이의 앞날에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 이 부분은 삶이 힘든 날 위로와 희망이 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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