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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여니맘 Dec 15. 2022

'한 가르침' 준 귀신사 누렁이

기억 속 개와 고양이 ②-김제 귀신사 누렁이

김제 귀신사 누렁이


친정, 즉 고향에서 가장 유명한 절은 '모악산 금산사'이다.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다. 모악산이 그리 아득하게 보이지 않는다. 청소년기, 이른 새벽이면 금산사 범종 소리가 들려오곤 했을 정도로 직선거리는 더욱 가깝다. 


그런 금산사에 가려면 5km 정도 달려야 한다. 금산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금산사만큼 대중적으로 유명하지 않지만 최명희 <혼불>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잊지 못할 절, '귀신사'가 있다. 금산사는 백제시대 대표적인 사찰 중 하나이자 현재 조계종 17교구 본사로 수많은 말사(본사와 말사는 속세에서 큰집과 작은집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를 거느리고 있다. 귀신사도 금산사 말사로 공식적인 창건 연대는 667년, 천년고찰이다. 


귀신사의 겨울. 귀신사 대적광전은 조선시대 사찰 건축 양식 그 특징이 잘 나타나 있어 보물로 지정된 전각이다. 
초봄의 귀신사



몇 년 전 봄, 친정언니와 전주 가는 길에 귀신사에 들렀다. 귀신사 경내로 가려면 절에 잇닿아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운 후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언니가 운전하는 차가 주차장으로 진입하는 순간 누렁이 한 마리가 계단 끝까지 내려와 반겼다. 그렇게 반겼던 누렁이는 차를 세우고 보니 어느새 계단 가장 위에 올라가 우리를 향해 엎드리고 있었다.


그날 함께 간 친정언니는 유별나게 개를 좋아해 당시 개가 보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지금도 가물가물 기억나는 어린 시절 풍경 하나는. 시골집 대부분 그렇듯 우리 집에도 우리나라 토종개인 똥개들이 오거니 가거니, 늘 자랐다. 그 언니는 걸핏하면 똥개를 업곤 했다. 마당에서 뒹굴며 자라는 개들이라 옷이 금방 흙투성이가 되어도 언니의 개 업기는 계속됐다. 


"너는 왜 이렇게 한꺼번에 많이 커서 힘들게 하냐?"


젖을 갓 뗀 어린 강아지로 온 똥개들은 몇 달 지나지 않아 어린 우리가 안지 못할 정도로 몸집이 불쑥 커지곤 했다. 어느 날 언니는 개를 앞에 두고 이렇게 원망스럽게 따지더니 바닥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며칠째, 업긴 업었는데 개가 커버려서 발이 땅에 닿곤 했었다. 발이 땅에 닿는 순간 개가 언니 등에서 금방 빠져나오곤 했다. 그런 개를 다시 업겠다고 앞발을 어깨에 놓고 포대기를 두르고 일어나면 개는 다시 빠져나가고, 그런 개를 붙잡아 포대기를 둘렀으나 빠져나가고... 이렇게 며칠 마음고생(?)을 한 후였다. 


어른이 되어서도 언니의 개사랑은 변함없었다. 2010년 무렵부터 그 언니와 여러 번 여행했다. 산행도 자주 했다. "언니 눈에 보였던 어떤 개도 언니가 끌어안지 않은 개가 없었다"고 말해도 전혀 틀리지 않을 정도로 개가 보이면 언니의 발은 당황스럽도록 빨라지곤 했다. 그런 언니니 차가 들어서는 순간 계단 끝까지 내려와 반겨준 개를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언니는 언제나 그랬듯 앉으며 개를 만지려고 손을 내밀었다. 


그 순간!!!

으르렁은 아니었다. 

악? 억? 컥? 깍?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지만 짧고, 크고, 단호한 그런, 글자로 표현하면 한 글자이지만 듣는 순간 위협을 느낄 그런 소리를 냈다. 


언니보다 먼저 내렸던 난 그때 사진을 찍고 있었다. 와중에 언니가 왔고 개를 만지려 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그 장면을 모두 목격했다. 언니가 개에게 물렸다고 생각되어 어떡해 싶은 한편 달려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철렁!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불안하고 두려웠다. 다행히 언니 손은 물리지 않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언니 눈에 두려움이 가득했다. 



정신 차려보니 어느새 그 개는 우리로부터 등을 돌려 법당을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그래도 걸음 떼놓기가 불안했다. 그 개가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아서였다. 어찌나 불안하고 두려운지 셔터 소리를 내며 사진 찍는 것조차 망설여졌다. 셔터 소리를 듣고 휙 뒤돌아 달려들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 개는 우리를 외면하고 경내로만 눈을 두고 있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눈앞이 캄캄해지더라고. 정말 물렸다고 생각했거든. 덥석 물었잖아!"


"정말 놀랐다. 그동안 그렇게 많은 개들을 만져도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거든. 그런데 정말 고수다. 이빨까지 닿았는데 안물고 위협만 하네! 얼떨결에 물 수도 있는데. 아마도 대부분 개들은 그냥 물고 말 거야!"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침묵하며 조심조심 걸음을 옮겨 누렁이로부터 멀어져 왔다. 한참을 벗어나서야 겨우 이렇게 소곤거렸다. 그렇게 몇 분 후, 우리가 법당 가까이로 갈 때까지 그 계단 끝에 그대로 엎드려 있던 그 개가 작고 나지막하게 어떤 소리를 냈다. 그 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 일이 있은 후 법당을 향해 걸어가다 보니 그 일이 일어난 계단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작은 개 두 마리가 더 있었다. 그 부근에 작은 탑도 있고 황매화가 피어 사진을 찍었다. 그래도 그 개들은 전혀 짖지 않았었다. 그런데 누렁이가 낮은 소리를 낸 후 그 개들은 우리를 향해 짖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5분? 대략 그 정도 간간히 짖었는데 솔직히 마음이 많이 불편했다. 부끄러움으로였다. 


"저 개 한테서 범접하지 못할 어떤 경지 같은 것이 느껴지네. 뭐랄까. 오랫동안 수행해 속으로 꽉 찬 그런 묵직함? 어쩌면 귀신사에 살았던 어떤 스님이 환생한 것 아닐까? 그런 생각까지 들 정도로. 좀 전에 저 백구가 한번 짖는 것 들었어? 그렇게 짖고 난 후 쟤네들이 짖기 시작했잖아. 그것도 왕왕 짖는 것이 아니라 뭔 말하는 것처럼. 아마도 가까이 있을 때 짖으면 우리가 위협을 느낄지도 몰라서 이렇게 한참 떨어지니 짖나 봐."


"그러게.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라는 말이 공연한 말이 아니었어. 왜 TV 같은데 보면 절에서 오래 산 개들이 예불 시간이 되면 법당 앞으로 가서 함께 예불을 올린다거나, 신도들을 알아본다거나 구분하고 그런다잖아.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가도 설마 그럴까? 싶었거든. 그런데 정말 그럴 수 있겠다 싶네"


"앞으로도 개 볼 때마다 만지고 그럴 거야?"


"아니. 그러지 말아야지. 저 개스님이 그동안의 내 잘못을 꾸짖은 것 같아"


언니는 그날 이후 모르는 개 만지는 것을 하지 않는다. 난, 그날 이후 어떤 개든 함부로 찍지 않는다. 사진으로 꼭 담고 싶은 개가 있으면? 주인이 있으면 허락을 받고 찍는다. 그렇지 않으면? 찍지 않는다. 아쉽지도 않다. 


그날 생각했다. 그 개는 어쩌면 허락도 구하지 않고 자신을 찍는 내가 못마땅했는지도 모른다고. 가뜩이나 그런데 함께 온 사람이 감히 허락도 하지 않았는데 함부로 만지려고 해 경고한 것이라고. 사람에게 의지해 살기는 하지만 개에게도 어떤 선택의 권리는 있다고, 개도 낯선 사람의 손길이 싫을 수 있고 거절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존중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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