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여니맘 Dec 14. 2022

반려견 출산 소식에 생각난 어떤 개

기억 속 개와 고양이 ①새끼를 보낸 후 우울증 앓던 '쎄미'

아이들이 어린 시절을 보낸 지역은 몇 년 전 아파트 숲으로 바뀌었다. 일대가 워낙 넓게 개발되다 보니 짧은 기간에 이사해야 하는 집이 많아 이사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아쉬운 대로 우선 이사, 이후 이곳으로 이사와 10년 넘게 살고 있다.


이 동네로 이사 오기 전 잠깐 살았던 집은 큰 마당이 딸린 2층 집이었다. 따로 출입할 수 있는 대문이 있는 바깥채도 딸린 집이었다. 그 집에 예쁜 아줌마 '쎄미'가 살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쎄미는 그 바깥채 대문 가까이에 지어진 작은 집에 살았다. 사실 쎄미는 이미 새끼를 낳은 적 있는 암컷 개였기 때문이다.


우리와 쎄미가 사는 집 대문은 각각 나란히 길가 쪽으로 나 있었다. 집안에서 키우는 것은 좋아하지 않지만 개 자체는 좋아하는지라 옆집에 사는 쎄미가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오로지 쎄미를 보자고 기웃거리기도 했다.


우리가 살던 집에서 차가 다니는 큰길까지는 대략 50미터? 서서히 경사진 곳 그 끝집이었다. 어느 날부터 쎄미가 골목 끝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서 있는 자주 보였다. 아니 거의 온종일 그러는 것 같았다. 쎄미는 그다음 날, 그다음 날, 그 후 여러 날 동안 그렇게 서 있곤 했다.


"쟤가 허전해서 저런다. 새끼 한 마리 남겨놓지 않고 다 보내버리니 속으로 주인이 얼마나 원망스럽고 허전하겠냐? 여편네(쎄미 주인아줌마)가 매정도 하지. 작년에도 저래서 이번엔 제발 한 마리라도 남겨 놓고 보내라고 했는데도 팔아먹었는지 어느새 다 보내버리고 말았네! 저거 안쓰러워서 다음에는 꼭 한 마리 줘야 한다고 했는데..."


그 동네로 잠깐 이사 갔던 것은 그 동네에 살고 계신 (시)어머니가 그 집을 소개해서였다. 어느 날 우리 집에 잠깐 들렀다 가시는 어머니를 배웅차 대문 밖에 나갔는데 쎄미가 어제처럼, 며칠 전처럼 여전히 그렇게 서 있었다. 그걸 보신 어머니가 이처럼 말했다.


우리가 그곳으로 이사 간 얼마 후 쎄미는 새끼 다섯 마리를 낳았다. 세 번째 출산이라고 했다. 그 무렵 일이 바빠 미처 몰랐는데, 며칠 차이로 새끼를 한 마리씩  보낼 때는 그래도 괜찮았단다.  그런데 며칠 전 마지막으로 남았던 새끼 두 마리가 마저 간 후 며칠째 하루 종일 새끼들이 사라진 곳만 하염없이 바라본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말 때문일까? 그잖아도 며칠 째 마음이 딴데로 가 있는 사람처럼 막연히 불안해 보였던 쎄미 눈이 더욱 쓸쓸하고 허전하게 느껴졌다. 





그로부터 한참 후 쎄미가 네 번째 출산을 했다. 젖을 뗀 후 어머니가 수컷 한 마리를 기르게 되었다. 2010년 당시엔 개를 묶어 키우지 않는 집도 많아 주택가 골목엔 개가 자주 보였다. 가끔 쎄미에게 놀러 오는 백구 두 마리가 있었다. 남편 말에 의하면 한 마리는 쎄미 남편, 한 마리는 쎄미 아버지라고 했다.


어느 날 어머니 집에 가니 쎄미와 가끔 놀러 오곤 하던 백구 두 마리가 어슬렁 거리고 있었다. 어머니에 의하면 쎄미가 자기 남편과 아버지를 모시고 새끼(장군이)를 보러 왔다는 것. 이삼일에 한 번씩 와서 보고 간다며 어머니는 대견스러워했다. 그렇게 몇 달, 어느 날 갔더니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말 못 하는 짐승들도 생각은 다 있는 것 같다. 며칠 전에 시내 나갔다 오는데, 장군이가 쎄미한테 막 갔던가 봐. 쟤가 왜 나왔지? 혼내려고 하는데, 쎄미가 먼저 보고 쫓아 올려 보내는 거야. 어찌나 야무지게 혼냈는지 그날 이후로 절대 나가지를 않는다. 너네 집 앞에는 차가 왔다 갔다 하니 위험해서 그랬나 싶은 것이 대견타"



어린 토르가 낳은 아기들



시골집에선 얼마 전까지 개 세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수컷 두 마리와 암컷 한 마리. 한 달 전쯤인 11월 12일, 친정집에 감 따러 갔다 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별말 없던 친정 언니가 일주일 후쯤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토르가 일냈다. 아무래도 이상한 거야. 그래서 보니 새끼를 가진 거야. 아무래도 초경 시작한 후 가졌나 봐"


감을 따러 갔을 때도 토르에게 별다른 느낌이 없어서 며칠 후 전해온 언니의 이 소식은 정말이지 뜻밖이었다.  "새끼 가진 것 정말 맞아?", "정말?", "전혀 그래 보이지 않던데?" 이렇게 연거푸 물어볼 정도로.


그런데 그로부터 겨우 3주 지난 어제 오전에 언니는 더욱 엄청난 소식을 전해왔다.


"토르가 새끼를 낳았어. 다섯 마리!"




올 3월 초에 온 토르(왼쪽)가 먼저 살고 있던 복돌이(오른쪽)와 인사하고 있다.
친정에 온 올 3월 초 당시의 토르



"너네 엄마는(언니는) 강아지들을 어떻게 할 거라니?"


"누가 누가 가져가기로 했다는데? 엄마 친구들이 가져가기로 했다나 봐. 엄마가 집에만 있는 것도 아닌데 여덟 마리를 다 키울 수는 없잖아!"


"그렇긴 하지. 그런데 안쓰러운 것도 사실이네. 그래도 토르한테는 첫 출산인데..."


"그렇긴 해!"


어젯밤 모처럼 조카와 통화를 했다. 시골에 살고 있는 언니의 딸, 그 조카와. 그 조카에게 쎄미 이야기를 들려줬다. 새끼를 보낸 후 한동안 새끼들이 사라진 곳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서 있곤 하던 그 모습을.


하필 그 조카에게 말한 것은 언니의 딸이어서가 아니라 지난해까지 유치원 교사였지만 지금은 개 훈련사 일을 하고 있어서였다. 솔직하게 말하면, 언니가 어떤 결정을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누가 그러더라. 개들은 부모와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받아들인다고. 내가 봐도 그런 것 같긴 해. 그래도 한 마리 만은 남겨두고 보냈으면 싶어 쎄미 이야기를 한 거야. 아까 문득 그 개 생각이 나더라고. 정말 슬퍼 보였거든. 새끼들 모두 떼 보내고 한동안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것 같더라. 토르도 그럴까 봐 걱정된다. 토르한테는 첫 출산이잖아. 한 마리만이라도 남겨 물고 빨고 키우게 해 주는 것이 맞겠다 싶어서!"




매거진의 이전글 양파 '암 수'는 이렇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