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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펜 Oct 07. 2020

적당한 계획과 유연한 생각

마치 물흐르듯. 바다를 향해.


나는 원래 철저히 계획적인 사람이다. 여행을 갈 때도 어디를 갈지, 뭘 먹을지, 몇 시에 어디로 향할지, 어떻게 가야되는지 등등 모든 걸 알아보고 간다. 이 철저함이 여행에 차질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였고, 차질 없는 여행은 완벽한 여행, 즉 성공적이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완벽한 계획일지라도 상황에 따라 조금씩 어긋날 수 밖에 없다. 그 어긋남은 나를 기분을 상하게 하였고, 여행을 스트레스로 만들었다. 이에 내가 더 완벽하게 준비하지 않았기에 발생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엄청난 착각이였다. 여행을 일처럼 생각하다니 말이다.


50일간의 유럽여행을 다녀오고 여행에 대한 생각이 바뀌였다. 장기간 여행이다보니 일정 전체를 철저히 계획 세우기란 불가능이였다. 대략적인 계획만 세운 채 배낭 하나만 매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불안감이 온 몸을 감쌌지만, 여행은 그렇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진짜 추억으로 남는 건 계획 속 일정이 아닌 계획 외 빈 틈에서 나오는 예기치 못한 상황들이였다.


빈 틈은 불안 요소가 아닌 행복 요소였던 것이다. 첫 도시인 암스테르담에서는 교통 수단을 버스나 트램이 아닌 중고 자전거를 구입하여 현지인들과 함께 도로를 달리며 여행 하였다. 영국에서는 현지클럽에서 인싸가 되기도 하였고, 프랑스에서는 숙소 예약을 미리 안한 덕에 같은 시기 유럽여행 온 친구와 일정을 맞추어 함께 숙소를 쓸 수도 있었다. 도시 별 여행 일자 및 경로도 상황에 맞추어 늘렸다, 줄였다, 추가되었다가 바꾸었다 할 수 있었다. 프랑스를 떠나, 향한 곳은 스페인의 이비자, 생각하지도 못했던 여행지에서 새로운 느낌의 세계를 보고, 정말 좋은 인연들을 많이 만났다. 이 모든 건 빈 틈이 준 선물이였다. 


우리는 이 빈 틈을 여유라 부르기도 한다. 배낭여행을 하며 느낀 것인데, 우리나라 사람 만큼 여유 없이 여행을 빡빡하게 다니는 나라는 없다. 마치 여행을 일처럼 여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저녁 늦게 잠에 들 때까지 최대한 많은 걸 보려하고, 꼭두새벽부터 줄서서 유명 맛집의 음식은 꼭 맛본다. 분명 10일짜리 여행인데, 사진만큼은 한 달 관광 코스가 다 있는 경우가 많다. 가성비 짱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남는 건 거의 없는 듯하다.


다들 여행 어디가보셨어요? 라고 물으면 '내가 어딜 갔더라'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분명 몇몇 보인다. 여행지에서 만난 외국 친구들은 달랐다. 아침 여유로이 일어나 차 한잔을 즐기고 브런치를 먹는 동안 어딜 갈지, 뭘 할지 정하기 시작한다. 그 순간도 준비가 아닌 여행인 것이다. 


여행 코스는 절대 몸이 힘들게 만들지 않는다. 여행의 목적에 맞게 한 코스, 많으면 두 코스 내로 하루 여행 일정을 끝낸다. 그리고 관광보다는 그 나라의 생활에 스며들어 현지인들과 하나가 되어 그들의 삶에 집중한다. 


여행은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적당한 계획과 유연한 생각이 필요하다. 적당한 계획은 방향을 유지해주고, 유연한 생각은 여유 속 새로움을 받아들인다. 진정 여행자가 되기 위함이다. 


배낭을 매고 떠나는 여행도,

행복을 찾아 떠나는 인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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