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밀당의 고수, 이웃집 할머니

책.습.관.

by 책o습o관

내가 해본 교육 쇼핑 중 관계, 특히 부모자식 간의 관계는 아이를 교육하는데 무조건 구비해야 하는 쇼핑목록 1순위다.

그리고 관계는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사랑과 신뢰가 없는 관계는 거래에 가깝다.

그중 사랑이라는 것이 참 어렵다. 사랑엔 밀당이 필수다. 결혼 전 친구들이 밀당을 잘하는 아이들이 시집을 잘 간다며 질투 섞인 농담을 하곤 했다. 뭔지 모르게 밀당을 한다고 하면 계산적이다라는 느낌 때문이다.

나는? 난 물론 직설법이다. 사랑 앞에 자존심 이런 거 찾은 적도 없고 내숭도 모른다.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다. 결혼을 한 게 기적이다. 한 때는 심지어 쿨한 거 아니냐고 우쭐한 마음마저 있었다. 역시 헛똑똑이다. 내가 아이를 키워보며 알았다. 사랑엔 밀당이 필요하다. 밀당을 못하는 나는 아이가 추운 날 반바지를 입고 나오면 나의 뜨거운 사랑만큼 잔소리 융단 폭격을 날린다.


우리 동네엔 밀당의 고수가 산다. 이웃집 한인 할머니다. 몇 집 건너에 한국인 가족이 이사 왔는데 할머니가 아들내외 가족과 함께 사신다. 이른 아침 어떻게 하면 지구에서 좀 멀어질까 싶어 작꿀이 깨기 전에 몰래 아침운동을 나갔다. 이웃집 아저씨가 출근 준비를 하고 계시는 모양이다. 말도 없이 분주히 왔다 갔다 하시기에 혼자이신가 했더니 차 너머로 꼬부랑 머리가 보인다. 아들은 바로 앞에 세워진 차에 있는데 할머니는 내 쪽을 멀찍이 바라보고 서 계신다. 그래서 나를 보시나 하고 꾸벅 인사를 해도 모르신다. 중년의 아들은 이리저리 분주히 준비하시더니 별다른 인사도 없이 출근을 하신다. 할머니는 아들 차가 지나간 자리를 오래도록 보고 계신다. 그리고는 동그라미를 그리며 돌아오는 나를 보시고는 그제야 " 어우 언제 운동 나왔어요? " 하신다.

'운전 조심해라', '술 먹지 말고 들어와라' 그런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으시다. 혹시나 부담 갈까 똑바로도 못 보시고 곁눈으로 보시느라 바로 앞을 지나가는 나도 못 보신다. 우리 할머니도 꼭 저렇게 아빠를 배웅하셨다. 들어가시라는 말도 소용없고 그렇다고 딱히 재미난 대화를 하는 것도 아니다. 나처럼 훈수 두는 것에 집착하지도 않고 지켜보신다. 이웃집 아저씨도 우리 아빠도 어머니가 말없이 보내는 뜨거운 성원 덕에 힘겨운 가장 일을 해내지 않았나 싶다. 그런 어머니 옆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우리 낭군을 생각하면 나라도 나가야 하는데 난 아직 멀었다.


받는 이가 원하는 만큼 주는 사랑, 필요할 때 주는 사랑을 하기 위해 밀당을 하고 싶다. 내 사랑이 용광로처럼 활활 불타올라도 나를 위한 사랑이 아닌 아이들을 위한 사랑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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