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학기말 운동회가 끝났다.
청팀과 홍팀의 대결.
단체전과 개인전으로 이루어진 총 6개의 게임 중 5개의 게임에서 청팀이 이겼다. 점수차는 40점 차.
진행자가 운동회가 김이 빠질 것을 우려해서 줄 서기 점수를 이용해서 봐주기 점수를 줬지만 실력차가 너무 컸다.
진행자는 마지막까지 박진감 넘치는 진행을 위해 계주에 역전승을 거둘 수 있는 점수를 걸었다.
계주는 물풍선을 들고 달리는 여러 개의 장애물코스.
달리기 능력뿐 아니라 조심성 같은 능력의 가치를 위해서 고안한 방법이다.
그런데 신체적 능력이 뛰어나던 청팀이 조심성이 뛰어난 홍팀에 지고 말았다.
역전승.
드라마 같은 장면이 연출됐다.
한일전이면 고민을 했을까 싶지만 학교 운동회다.
양팀다 우리 새끼들이다.
청팀 중에 분하고 원통하다며 우는 녀석들이 속출한다.
진행자는 너무 승부에 집착하지 말자고 한다. 상품도 없는데 울 일이냐고 한다.
여기엔 문제가 있다.
마지막 계주 한방에 뒤집을 수 있는 운동회라면 다른 게임을 그렇게 열심히 할 필요가 없다.
인생 한 방을 가르치고 싶은 것인가? 그게 진짜 인생인가?
누군가 계속 뒤를 봐주며 조절해 주는 경기라면 굳이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 있다.
어차피 타고난 건가? 정답은 금수저인건가?
눈물이 나는 건 승부욕에 불타는 좁아터진 인성 때문일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스템의 문제다.
매 게임의 승부를 즐기되 총합으로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
인생도 개별 경기의 연속 아닌가.
불쌍해서 주는 점수가 필요 없도록 다양한 가치를 인정해 주는 게임을 하면 된다.
달리기 실력도 쳐 주고, 조심성도 쳐주고, 협동심도 쳐주고.
정정당당하게 승부할 수 있도록 규칙도 세우고 전달한다.
그러면 마지막 계주에서 역전승으로 한 방에 뒤집는 영웅은 없다.
진행자의 의도는 나름 순수했다.
양 팀 중 어느 쪽을 봐주려는 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돼버렸다.
경기가 끝나자 아이들이 진행자를 욕한다.
저쪽만 봐줬다고 한다.
재밌게 해보려고 그렇게 애 썼는데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섣부르게 도와준다고 될 일도 아니고
자유경쟁에만 모두 맡길 수도 없다.
거버넌스의 역할이 그렇게 어렵다.
처음에 팀 구성을 균형 있게 했다면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부모를, 나라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으니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진행자가 거저 주는 점수에만 목매고 있을 수도 없다.
이런 거버넌스의 역할의 완충제가 교육이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정정당한 승부를 장려하는 교육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육아, 교육 관련 책을 쓰겠다고 하니 친구는 큰꿀이가 대학이나 가고 나면 내지 그러냐고 했다.
큰꿀이가 일류대학을 가고 책을 홍보하기도 좋고, 책 판매율에 크게 영향을 미칠 거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난 같은 이유로 꼭 대학 가기 전에 내고 싶었다.
대학에 잘 갔으니, 일류대학에 잘 갔으니 좋은 교육법이라는 공식을 탈피하고 싶었다.
큰꿀이는 대학을 준비 중이다.
동네 샌드위치 가게에서 일해 본 결과 자신이 선망하는 직업을 위해 대학은 갈 필요가 있겠다고 한다.
얼마 전 관심 있는 대학의 교수와 면담을 했다.
앞으로 이 분야의 미래는 어떻게 되겠냐고 물었단다.
이제 막 시작하는 분야니 모두 연구하는 단계라고 했다고 한다.
모른다는 말 아닌가.
그래서 큰꿀이에게 물었다.
이 대학이 맞는 거 같냐고. 이 교수님한테 배우고 싶냐고.
흥미가 간단다.
아직 잘 모른다는데? 눈에 보이는 길을 아직 연구 중이라는데?
큰꿀이는 교수님이 연구하고 있는 분야에 대한 깊이가 탄탄하고 폭넓어서 새로운 것으로 어떻게 활용하고 적용할지에 대한 기반이 확실한 거 같다고 했다. 같이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했다.
아......
괴짜 교수로 유명한 카이스트 총장 이광형 교수의 미래의 인재, 대학의 미래를 읽었다.
내가 공부하고 대학 가는 건 아니지만 같이 하기 위해 책이라도 읽어 본다.
어느 대학이 좋다, 무슨 과가 좋다, 대학의 문제에 대한 뾰족한 해결책은 여전히 모르겠다.
앞으로 대학은 대학을 가는 사람이 뭘 배우고, 뭘 하고 싶은지 계획이 선 사람이 가는 곳이란 생각이 든다.
대학은 그런 사람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기관이 될 거란 생각이 든다.
학생이 대학을 쇼핑하는 시대가 온다.
어차피 내가 찾은 길로,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하는 거라면 굳이 특정 대학에 가야 하나 싶다.
그럼 여기서 교육, 대학의 과제는 무엇일까?
인간이란 가치 아닐까?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 빌게이츠가 지루해서 학교문을 박차게 나가게 했던 가치를 어떻게 전달할지가 크나큰 숙제처럼 보인다.
우리가 교육을 하고, 대학을 선택할 때 가치를 높이 쳐주면 대학이라는 교육 생산자도 가치를 잘 보존할 수 있지 않을까?
어려운 숙제를 가정, 사회가 함께 하면 울분 터져서 우는 녀석들이 없는 시스템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이광형 교수의 세상의 미래는 피터 디아맨디스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미래학 책이었다. 이작가가 가지는 로봇이 감성과 창의력를 가진 시대에 대한 기대감엔 공감할 수 없지만 말이다. 유전자 알고리즘이란 기술을 통해 인공지능이 우연의 법칙을 통한 창의력을 모방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건 생존을 위해 일어나는 인간의 창의력과는 다르다. 그저 다른 것을 만들기 위한 우연의 조합은 공허하게만 느껴진다. 이 작가는 책에서 인공지능 판사와 의사도 예로 든다. 인간이 가지는 선입견이나 논리적 결함 없이 철저하게 수치화, 데이터에만 입각해서 내리는 판사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지에서 압도적이었다고 한다. 청소년들에게 숙제 마감시간을 칼 같이 지키고, 사소한 계산 실수도 전부 오답으로 처리하며, 점수에서 반올림 같은 것은 꿈도 안 꾸는 인공지능 선생님은 어떤지 물어보면 어땠을까? 같은 이유로 이 작가가 예상하는 가치관의 변화 역시 비인간적으로 느껴진다. 투명하고 일관성은 있어보이지만 융통성이 없고 비인간적으로 보인다.
내가 이작가에 비해 마음이 덜 열려 있는 탓인가보다.
그럼에도 이작가가 제시한 미래의 세가지 핵심어인 인본주의, 다양성, 개방성을 부정할 수가 없다.
책을 다 읽었지만
무슨 대학을 가야할지
무슨과를 가야할지
수소차가 사업성이 있는지
수직농법에 투자를 해야 할지
앞으로 유망 직종이 무엇인지 나는 여전히 모른다.
책들을 통해 내가 발견한 것은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는 미래에도 인간이 가치가 될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왜일까?
인간이 내가 아는 가장 완벽하게 불완전한 존재니까.
칸트가 말한 것처럼 나는 검은 백조를 보지 못한 채 흰 백조만이 백조라고 믿는 경험적 한계에 갇힌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인간의 존재에 희망을 건다.
모두가 영웅이 되길 바래 본다.
나는 큰꿀이가 변화하는 세상에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다.
나는 큰꿀이가 변화하는 세상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어떤 형태로 하게 될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나는 큰꿀이가 기술의 진보 앞에 가치 (이왕이면 인간이길)를 놓고 선택했으면 좋겠다.
큰꿀이도 작꿀이도 책을 가지고 놀며 미래를 그려나가길 바란다.
나는 큰꿀이가 발전과 가치를 함께 가는 방법을 생각해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미션 여덟번 째
내가 생각하는 인간의 가치란 무엇일까?
p.s. 드디어 여덟권의 책을 완성했네요. 원래 이 책을 마지막으로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배송이 오래 걸려서 마지막이 되어버렸어요. 그런데 오히려 잘 된 건가 싶습니다. 이렇게 인생이 늘 계획대로 되지 않는 모양입니다. 우연이 주는 선물을 받아들일 넓은 마음을 탐해봐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