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 결국 필요한 건 상상력이던가
잇몸 책 동아리
큰꿀이는 아직 책을 시작도 못했다.
이렇게 내가 먼저 읽으면 좋은 점이 있다.
내가 책을 읽으며 재밌는냥 유난을 떨면 속아 넘어간 큰꿀이가 따라 읽기도 하고, 큰꿀이가 읽었으면 하는 책을 찾기 쉽게 눈에 훤히 보이는 보물찾기 쪽지처럼 전시할 수도 있다.
강력추천 이런 걸 붙여 부담을 팍팍 주는 강매 같은 독후감도 쓸지언정 읽으라고 하진 않는다. 규칙은 규칙이니까.
검색을 돌려서 찾은 책 중 하나인 기억 전달자는 표지 앞에 테일러 스위프트와의 질문답 이런 스티커가 붙어 있다.
청소년 도서 상 스티커도 붙어있다.
큰꿀이는 이 책을 중학교 때 읽어 봤다고 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유명한 책이란다.
엄만 디스토피안 책 싫어하잖아.
이상하네. 디스토피안이라고?
그런데 왜 제목이 The giver일까?
한국어 번역서 제목(기억 전달자)을 먼저 봤다면 읽지 않았을 거다.
색깔.
눈.
책.
생명.
죽음.
동물.
사랑.
가족.
음악.
불확실성.
로이스 작가가 말한 전달되어야만 하는, 전달될 가치가 있는 열거한 가치들 중 다양성을 색깔로 에둘러 표현한 작가의 상상력이 신선하다.
권작가와 로이스 작가가 만났다면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얼마전 작꿀이 친구 생일파티에 초대받아 갔다.
아이들이 집 여기저기를 들쑤시며 노는 사이 생일인 친구 엄마를 포함해서 모두 같은 유아원에 다니는 4명의 엄마와 나, 이렇게 5명의 엄마들이 부엌 한편에 서서 수다를 떨었다.
그중 한 엄마가 전화기 사용에 대한 걱정을 늘어놓는다.
그러면서 본인도 전화기 사용을 절제하고, 아이들도 최대한 사용하지 않게 하겠다고 한다.
그러자 다른 엄마도 동의한다.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뤄보겠다고 한다.
최소한 13살까지는 전화기도 안 사주고 못 쓰게 할 거라고 한다.
입술이 들썩거린다.
결국 못 참고 선배엄마라는 유세를 떨고 말았다.
그럴 수 있다면 좋겠지. 그렇지만 하려고 하면 결국 다 할걸? 아이패드에서도 다 할 수 있잖아.
정적.
뒤엔 입을 다물고 조용히 들었다.
5살 난 유치원생 엄마들에겐 너무 충격적인 미래였는지 모르겠다.
그 뒤로 이어진 엄마들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햇빛에 안 타게 할까,
어떻게 하면 책을 대충 안 읽게 할까,
어떻게 하면 어떻게 나쁜 말을 안 하게 할까
계속 안 하게 하고 못하게 하는 것에 집중하는 듯했다.
마음이 찜찜했다. 뒤가 개운하지가 않다.
뭐지?
그날 처음 만난 엄마들이고 다시 볼 가능성도 적으니 관계가 어그러져서는 아닌 거 같다.
왜일까?
The giver를 읽고 인간의 존재가 가치가 될 수 있는 이유를 찾았다.
그리고 미처 깨닫지 못했던 답을 생일파티에서 찾았다.
기회.
아이들한테 기회를 박탈하는 방법은 효과가 없다.
부모가 못하게 하면 할수록 아이들은 더 하고 싶어 한다. 전화기로 못하면 컴퓨터로 하고, 집에서 못하면 학교에서 하고. 방법은 늘 있다.
그보다 좋은 선택을 고르는 법,
선택을 잘하는 방법,
선택을 할 때 필요한 중요한 가치,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치는 가치를 지키는 법,
안 하는 법이 아니라 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그렇다면 나도 미래를 기회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내가 소중히 생각하는 인간이란 가치를 지킬 수 있는 기회.
인공지능이란 기술은 인간의 가치를 마주 볼 거울 아닐까.
불완전함, 예측불허성, 이율배반적인 사고, 그리고 서로 없이는 살 수 없는 나약함이라는 가치를 마주하고 찾은 진짜 나.
진짜 나를 지키고 싶어서 난 미래학을 공부하며 실체를 그토록 애타게 찾았나 보다.
성형이라는 좋은 기술이 있어도 모두가 수술을 하진 않듯, 보정이라는 좋은 기술이 있어도 모두 사진을 조작하진 않듯 진짜 나를 찾는 이들이 다수면 괜찮지 않을까. 진짜보다 나은 나를 중시하는 가치도 포용하고 다양성이라 웃으며 넘길 수 있지 않을까.
최고의 나를 중시하는 테크 전사들이 최고의 발명품인 인간을 모방해서라도 만들고 싶은 욕망은 이해가 간다.
그런데 모방은 모방일 뿐 원조가 될 수 없다.
그럴 바엔 도구를 도구답게 만드는 것은 어떨까?
인간 같은 로봇, 인간처럼 생각하는 인공지능 말고 상상력을 발휘해서 인간이 힘들어하는 능력만 골라갖춘 인공지능, 인간과 닮지 않았지만 유용한 로봇을 만드는 건 어떨까?
그렇다면 인간의 영역을 보호하기에 더 용이하지 않을까.
어차피 우리가 필요한 건 능력 있는 도구일 뿐인데 굳이 인간을 꼭 닮게 만들어서 진짜, 가짜를 구분하는 소모전을 할 필요가 있을까. 인공지능, 로봇은 인간이 될 수 없는데 가짜를 만드는 것보단 고유한 특성대로 만드는 게 낫지 않을까? 상상력이 부족한 거 아닐까?
인간도 아니면서 함부로 인간을 흉내내지 말라고 로봇과 인공들을 상대로 인간 특권을 선언한다.
인조적인 표정, 차가운 음성을 꿋꿋이 유지하기 바란다.
미국에서 생일 파티를 하면 나는 세 가지 케이크가 필요하다.
미국 친구들이 오면 먹기도 간편하고 오래 동안 밖에 둬도 녹지 않고 무지개 색 스프링클이 박힌 버터크림 왕관을 쓴 컵케익을 준비한다. 아이들이 늘상 먹는 것과 다른 케이크보다 가게에서 산 컵케이크에 익숙하기 때문이고, 시장에서 대량으로 만들어진 컵케이크를 사는 다른 엄마들 눈에 유난 떠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토플러가 말한 대로 빠르고 일회성 짙은 컵케잌이다.
한국 친구들이 오면 자연색소를 쓰고, 설탕도 열량도 적은 생크림을 얹어 미국 케이크보다 5배는 비싼 케이크를 산다. 엄마의 철저한 교육과 보살핌으로 입이 고급인 아이들 입맛을 의식해서고, 뭐든지 최고로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국부모들의 눈높이를 고려해서다.
가족끼리는 작꿀이의 요청에 따라 초콜릿 스펀지 케이크에 생크림으로 덮고 작꿀이가 원하는 유니콘 그림을 넣은 홈메이드 케이크를 먹는다.
하지만 모두에게 홈메이드 케이크를 대접해도 괜찮은거 아니었을까. 먹고기준에 맞춘다고,실망시키지 않는다고 애쓰지 말고 진짜 나에게 소중한 것을 있는 그대로 정성스레 대접했다면 어땠을까. 우리 모두가 마음 속으로는 가치를 지키며 미래를 맞이하고 싶었지만 누구도 말하지 않는 지금처럼 되어버렸다.
이야기만 가지는 힘센 상상력이 다른 가치들과 함께 로이스 작가의 기억전달자로 나에게 전달되었다.
돌고 돌아 청소년 권장 도서에서 답을 찾은 것을 보면 아이들은 정답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미래를 위해 우리가 할 일은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일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난 큰꿀이에게 책이란 기회를 선물하고 싶었다.
마지막
저의 8주 미션은 일단락이 났습니다.
( 208편은 책이 오면 읽고 쓰겠습니다.)
제 속은 시원합니다.
서두르길 잘 했습니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사는 것도 때로 박진감 넘치고 재밌습니다.
이제 큰꿀이와 속도를 맞춰야겠지요.
여러분의 미션에서도 답을 찾으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