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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o습o관 Jul 09. 2024

08 그대가 영원하기를

책 편을 들어보겠습니다.

집 앞 커피숍에 저녁 느지막이 가면 신문들이 여기저기 테이블 위에 널브러져 있다.

아침에는 제 값을 주어야 하던 신문이 저녁이 되자 공짜가 되다니 , 폐지 신세다.  

유행을 선도하는 잡지도 마찬가지다.

신기하게도 시간을 거스르는 가치를 가진 건 책뿐이다.



 책에 관한 책 추천을 부탁했던 첫 번째 젊은 사서가 그런 말을 했다.

그런 책이 있어 보이지만 정말 오래된 책이라 얼마나 정확할지 모르겠다고.

그리고 내가 경험이 지긋한 사서에게 물었을 때 그는 그랬다. 오래됐어도 보석 같은 책들이 많이 있으니 정답은 아니어도 힌트는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시간 가는 줄 모를 테니 조심하라고.



세월 앞에 영원한 것은 없다.

책도 마찬가지다. 책도 세월을 맞는다.

국민학교 시절 선생님이 짱은 저속한 말이라고 했다. 선생님이 걱정하시던 이면 다 통하던 시절은 가고 지금은 새롭게 희한한 말들이 대체한다.

우리 집에 올 때부터 이미 연식이 오래됐던 <이사 가도 다시 온다고 약속해>의 이사하는 장면에는 냉장고, 소쿠리, 훌라후프 같은 온갖 잡동니가 산처럼 쌓여 있는 큰 용달트럭이 나온다.

업체 직원들이 와서 박스에 척척 쌓아서 날라주는 이사에 익숙한 요즘 한국 아이들에겐 낯설다.

미국에서 나고 자라면서 손수 이사를 두 번 한 큰 아이는 깨끗하게 박스 포장되어 날라지는 한국의 이삿짐이 낯설다.

책 속에도 시간과 공간이라는 문화 좌표가 있다.

그래서 유효기간이 지나면 절판이 되기도 한다.



어느 작가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글을 쓰는 것이 시대정신이라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내가 돌볼 주제가 되나? 화려하고 재미난 이야기를 쓰고 싶은 사람들은 작가가 아니어도 많으니 남들이 낮보는 이야기를 작가라도 써주면 좋지 않겠냐는 조언 정도면 끄덕일 수 있겠다.

처음부터  작가의 시대정신이란 말이 탐탁지 않았다. 너무 거창하지 않나. 선동적이고 정치적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글쟁이가 글이나 쓰면 되지, 사사건건 비판적으로만 봐야 하나, 펜 뒤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건 지나친 욕심이라 생각했던 나다. 그런데 정치적 야망이 있는 작가만 시대정신이 있는 작품을 쓰는 것은 아니다. 모든 작가의 이야기엔 시대와 공간이 있다. 

초콜릿 하나에 트럭 뒤를 쫓던 시대, 머리 길이를 단속하던 시대, 둘만 낳자고 떡 같은 약속이 필요하던 시대,  부도 난 나라를 살리려고 돌반지를 들고 나오던 시대, 온 나라가 붉은 악마로 물들던 시대, 아이를 낳으면 돈을 주는 시대



이 와중이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책들이 있다.

그런 책은 시간과 공간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김훈의 칼의 노래가 그렇고 권정생의 몽실언니가 그렇다. 이민진의 파친코가 그렇고 정약용의 아버지의 편지가 그렇다. 시간과 공간을 생생하게 그리며 의미를 물을 뿐 아니라 시공간을 관통하는 진리도 가지고 있다. 미국에선 용달차로 이사하지 않지만 <이사 가도 다시 온다고 약속해>'라는 책이 우리 집에 살아있는 이유는  얼마 전 이사 간 옆집 언니가 보고 싶은 둘째 마음은 예전과 같기 때문이다.



작가는 왜 시대와 공간을 담을까?

윤동주 시인에 관한 수업을 하며 아이들에게 물었다. 윤동주 시인도 독립 운동가라고 생각하는지.

총칼을 들고 싸우지 않았어도 나라를 지킨 것인지.

아이들이 황당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애달프고 처참했던 시대,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은 적국에서,  들 수 있는 것이라곤 펜뿐이던 나약한 청춘의 부끄럽고 죄스런 마음이 칼과 총을 들 수 없는 작고 미약한 마음들에 놓은 불씨가 독립운동이 아니라면 뭐가 독립운동일까.

한 사람쯤은 수치스러운 그 마음을 기록해야 하지 않았을까. 책을 쓰는 이들이야말로 수치스러운 마음을 돌아보는 일을 밥 먹듯 하는 이들이 아닐까.

의미있는 시간과 공간을 담기도 하고 시간과 공간에 의미를 만들어 주는 게 책은 아닐까.



시대와 공간의 문화 정신을 담아 건네주는 

그대가 영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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