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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o습o관 Jul 08. 2024

07 그대의 신을 신고서

책 편을 들어보겠습니다.

이름값이 너무 올라 너도 나도 입버릇처럼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정작  어떻게 가르치고 배우면 되는지, 평가는 어떻게 하는지, 평가를 하는 게 가능한 것인지 모호한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예가 한국학교에서 뜨거운 화두 중 하나인 정체성이고 교육계의 화두인 창의성이다.

그리고 나한텐 상상력이다.

어린 시절 미술 선생님이 상상화를 그리라고 하면 그렇게 막막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눈앞에 나무를 보고 그리라면 그렇게 막막하지 않은데 상상화라니.  

옆자리 친구는 공룡과 함께 하늘을 날아다니는 그림을 순식간에 그리기 시작한다.

저게 상상화인가?

세상에 절대 없을 것 같은 일을 생각해 내는 것이 상상인 건가? 

절대 없을 일을 상상하는 수고를 왜 굳이 해야 할까? 

그 때부터였건 거 같다. 상상이 싫어진 건.



그런데 윤구병 작가의 '어느 순간 심심해서 그랬어'에서 엄마 아빠가 장에 간 사이 가축들을 모두 풀어준 사고를 친 돌이 심정이 얼마나 암담했을까 상상하게 된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겠지. 내가 안 했다고 딱 잡아떼고 싶을 테지. 

나는 겪어 보지 못했지만 일어날 법한 일이지. 

아직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어쩌면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지. 

나도 이제 상상을 할 수 있다. 

공룡이 없어도, 초능력이 없어도, 우주선이 없이도 상상을 한다. 

내가 살고 있지 않은 곳, 가보지 않은 곳, 보지 못한 것, 해보지 못한 것을 생각해 보는 모든 일이 나에게 일어난다면을 붙여 보는 것이 상상이다.

책은 상상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아무것도 없는 백지에 그리는 것은 어렵지만 따라오라고 그려놓은 점선처럼 작가는 상상 재료들로 점선을 그려 놓는다. 판을 깔아주니 그 위에서 노는 것이 어렵지 않다. 하다 보면 판도 까는 날도 오겠지.


책을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일이 정말 즐거운 이들 중엔 책이 영화로 만들어지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상상 속에선 언어 장벽도 없고, 주인공 나이, 영화세트장 규모, 안전장치 이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다.  그런데 영화로 만들어진 남 상상이 내 상상을 침범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소설은 만들어 내는 자체가 상상이니 그렇다고 쳐도 내가 좋아하는 비소설도 상상이 가능할까?

작가가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낼지 상상해 볼 수 있다. 

책을 통해 얻은 정보를 내가 써먹었을 때의 변화를 상상할 수도 있다. 

동물에 관한 책만 많이 읽는 어린이들은 상상을 하지 않나 걱정하는 부모님들도 있는데 책이 문제는 아니다. 어디 가서 혀가 꼬일 만큼 긴 공룡 이름을 외울 때만 잘한다고 추켜세우지 않는다면, 공룡 울음소리를 내며 온 집안을 쑤시고 다닐 수 있다면. 공룡이 나오는 판타지 소설을 쓴 작가들은 공룡에 관한 비소설을 탐독했을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이렇게 책을 통해 상상력을 키우면 뭐가 좋을까?

재밌다. 상상이 재밌어지면 꿈도 키울 수 있다. 

수많은 자기 계발서들이 그랬다. 성공하려면 생생하게 꿈꾸라고.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풀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되면 새로운 방법이 보인다.

한번 사는 인생이나 여러 번 사는 인생 경험을 할 수가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되는 자연스러운 효과다. 우리 집 앞 가게 아저씨는 어떤 인생을 사셨는지 궁금하다고 다짜고짜 물을 수는 없다. 그런데 책은 작가의 경험, 관찰, 조사를 통해 다양한 인물을 그려 놓으니 읽는 수고만으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비소설은 본인이 대 놓고 실패와 성공담 모두를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으니 안 들을 이유가 없다. 



젊은 시절 고생은 사서 한다며 국토 대장정을 갔다 왔다고 해도 진짜 가난해서 일하며 학교를 마친 사람들이 갖는 위기감과 절박함의 가치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거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런데 나의 이런 생각을 얼마 전 유영만 작가가 방송에서 경험과 체험이라는 표현으로 명료하게 짚는다. 책을 흔히들 간접 경험이라고 한다. 체험이 아니다. 완벽하게 준비되고 예측된 환경에서 일시적으로 해보는 체험과 달리 책은 작가가 그리는 때로는 직접 겪은 일과 그 일을 둘러싼 그전 서사와 뒷이야기까지 송두리째 경험하게 된다. 내가 상상을 통했으니 간접경험이다. 이렇게 얻은 경험은 지혜가 되고, 내 것이 되기도 해서 내가 직접 하는 경험도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엔린 그린은 스토리텔링 책에서 스토리타임을 마치며 주의할 점은 스토리의 영혼을 만끽할 수 있는 여유를 주어야 한다고 했다. 재미난 책이 많아 더 많이 읽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그래도 잠시 멈추고 읽어야 하는 이유는 상상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구나.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맛있는 것도 많고, 볼 것도, 읽을 것도, 해볼 것도 많다. 

다 해보면 좋으련만 몸이 하나다. 시간도 돈도 한정되어 있다. 

흙이 잔뜩 뭍은 신발은 흙에 코를 박고 사는 농부의 인생,  전쟁 통에 살고 싶어 포장도 되지 않은 길을 걸어온 인생,  열심히 나가 놀아 만족스러운 인생, 신발을 닦을 새도 없이 바쁜 인생, 신발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무심한 인생을 상상하게 한다. 

내 인생도 나쁘지 않구나. 

부러워만 하기엔 내 인생도 소중하다. 



내 인생엔 어떤 희망이 가능할지 상상하며 달린다. 

그대의 신을 신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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