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뿌리를 따라가 보자
얼마 전 한국학교 추석행사에 나는 차례 지내기 활동을 맡았다.
내가 아이들 활동을 기획하며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현실감이다.
진짜 같아야 아이들도 진짜로 임하지 않겠나 싶은 마음이다.
차례 문화의 유례, 차례상 차리는 법, 절하는 법 정도를 가르쳐 주고 해 보는 게 보통의 추석 활동이다.
올해는 타국에서 가족이 모이는 명절은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대가족 문화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나이 많은 아이들, 어린아이들을 한 덩이로 묶고는 그 안에서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고모를 정했다. 그렇게 정말 가족이 명절을 준비하듯 하기로 했다.
차례상을 차리려면 음식도 해야 하고
음식을 하려면 시장도 봐야 하고
시장을 보려면 돈도 벌어야 하고
돈을 벌려면 농사도 지어야 진짜가 아니겠냐며
아이들에게 나의 활동 계획을 말했더니
큰 녀석들은 벌써 콧방귀를 뀌고
작은 녀석들은 무슨 소리인가 싶어 입을 헤 벌리고 있다.
실제로 농사를 지을 수 없으니 우리는 콩농사를 짓는다며
콩을 교실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2인 1조가 되어 젓가락으로 콩을 나르면
콩 한 개당 만원씩 준다고 했다.
제한 시간 1분.
처음에 콧방귀를 뀌던 큰 녀석들도 종이돈이지만 돈이 걸려서인지 젓가락으로 콩을 집어 보겠다고 아우성이다.
젓가락을 못쓰는 아이들은 숟가락을 사용하라고 했건만 동생들 보는 앞에 자존심이 상한지 기어코 애를 쓴다.
고학년 아이들 중에도 생각보다 젓가락질을 못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회의 시간에 선생님들과 활동 이야기를 나누며 들으니
선생님들마다 젓가락질에 관한 일화가 있었다.
젓가락을 바르게 잡지 못해 대학 선배한테 혼난 선생님
시험 전날 콩 한 바가지를 젓가락으로 옮기라고 하신 아부지 때문에 콩 트라우마에 걸린 선생님
대학생이 되도록 젓가락질을 바로 못하는 게 창피해서 스스로 고쳤다는 선생님
이쯤 되니 이어령 선생이 한국 문화의 대표 주자로 젓가락을 예찬한 것이 엉뚱한 것이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정신이 뭔지 한국은 뭐가 다른지를 일 삼아 생각하는 내가 한국 것이면 다 좋은냥, 한국인이면 태어날 때부터 똑똑하다 생각한다고 보일지 모르겠다.
한국이 최고라거나 한국인이 제일 착하다거나 똑똑하다는 이야기는 전혀 아니다.
야박하게 들려도 할 수 없다. 아닌 건 아닌 거니까. 아닌지 긴지 확인할 방법도 없고 확인할 필요도 없다.
외국에 살다 보면 외국어를 못하는 한국인들을 도와주겠다더니 더 바가지를 씌우는 한국인도 있고,
동방예의지국에서 왔지만 반가운 마음에 공공장소에서 고래고래 언성을 높여 떠드는 한국인들도 있고,
지긋지긋하도록 악독하게 구는 거래처 사장님들 중에도 한국인이 있고 ,
알바생에게 갑질하는 손님 중에도 한국인이 있고,
우리가 힘겹게 모은 목돈을 빌려가서 안 갚는 친구도 한국인이다.
한국, 한국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최고, 최선은 아니다.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이 따로 정해지진 않았다.
수학을 잘하는, 도덕성이 높은, 사람을 좋아하는 한국인 유전자라는 것은 없다.
선생님들은 간혹 말 안 듣고 떠드는 아이를 모범생과 짝을 시킨다.
맨 뒤에 죽이 맞는 친구들하고 있을 때는 시도 때도 없이 낄낄대던 녀석이 모범생 옆에 오면 흥이 나질 않으니 조용해지는 경우가 있어서다.
사람을 중요시하지 않는 한국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한국인도 있다.
우리는 서로로 인해 그리고 서로에게 말썽꾸러기 옆 모범생이 되어주고 있었을 뿐이다.
한국에는 사람을 중요하시하는 문화가 있다.
그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문화가 되었다.
그리고 문화는 혼자서 만들 수 없다.
같이였기에 가능했다.
그 문화가 우리를 통해 내려왔다는 걸 꼬리를 밟으며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좋은 문화가 있었다고 해도 만사통용되는 백신은 아니다.
한국의 피가 흐름에도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으면 젓가락을 쓸 줄 모르는 아이들처럼
문화를 계승하지 않으면 사람들 중요시 여기는 문화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짝이 없는 젓가락도, 끊어진 젓가락도무용지물인 것처럼.
젓가락이 동경 127도 북위 37에서만 쓰여야 할까?
세상이 좁아져 어디든 가고, 살 수도 있다.
그 곳이 어디든 한국 젓가락을 쓸 수 있듯 사람을 중요시 여기는 문화를 심으면 어떻게 될까?
챗 GPT가 나오기 전 세상을 떠난 이어령 선생의 '너 어떻게 살래'는 인공지능과 알파고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이제 인공 지능의 윤리 문제를 놓고 빅테크 기업들도 고민 중이라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윤리의 문제를 선과 악, 옳고 그름으로 보지 않고 인간성의 문제, 사람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게 이어령 선생이 병석에서도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