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o습o관 Sep 28. 2024

07. 흥

생각의 뿌리를 따라가보자

학교에서 일제 강점기와 관련해서 수업을 할 때면 꼭 보는 영화가 있다. 

바로 유해진 주연의 '말모이'다. 

사실 홍보에서 내세웠을 주인공은 다른 배우였을 텐데 이 영화를 안 본 사람에겐 주인공이 유해진이라고 말하는 건 스포일지도 모르겠다. 

일제강점기에 사전 편찬과 관련한 일화로 만들어진 이야기니 한국학교에서 말의 중요성을 생각해 보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영화가 있을까 싶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유해진이 연기한 판수라는 역할이 참 재미나다. 

키도 작고 얼굴도 울퉁불퉁한 배우의 얼굴은 언뜻 하회탈을 닮았다. 평상시 느릿느릿한 배우의 농이 가득한 말투와 성격으로 미루어보아 감독이 배우를 선택한 의도도 배우가 그린 판수도 다분히 의도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암울한 시대 아닌가. 

암울한 시대에 부인도 없는 홀아비다. 

시종일관 비통해하고 우울할 수도 있었다. 비장하고 용감할 수도 있었다. 염세적이고 악에 가득 찰 수도 있다.

그런데 판수는 시종일관 농담 따먹기도 잘하고 콧노래도 잘 부른다. 

먹고살기 어려운 시기 이렇다 할 직업도 없으면서 사방에 총칼 든 일본군도 즐비한데 술도 잘 먹고 다닌다. 

결기에 가득 차고 비장한 판수가 아니라 술 취해서 콧노래를 부르는 판수를 그린 이유가 무얼까? 



내가 한국어 선생인 걸 알고리즘이 눈치챈 탓인지 몰라도 나한테는 일명 국뽕 영상이 많이 뜬다. 

이러다 애국열사될라.

그중 많이 뜨는 유형 중 하나가 바로 외국의 뮤지션들이 한국에 오는 걸 좋아한다는 영상이다. 

우리가 보내는 열렬한 환영과 호응에 한번 맛을 들이면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꼭 덧붙이는 것이 일본은 재미없어 안 간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공연을 안 가봐서 모르지만 사실이라면 좋아하는 가수가 앞에 있는데 조용히 있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긴 하다. 미국에서 가본 공연 중엔 떼창을 간혹 하기도 하지만 일부분만 따라 부르거나 가수가 마이크를 건네는 순간에 할 뿐 흔하진 않다. 맥주를 마시느라 바빠서인 것 같기도 하고.

가수의 노래를 들으러 가는 게 아니라 함께 소리 지르고 느끼려고 공연을 가는 우리한테 조용한 공연은 상상하기 어렵다. 

붉은 악마는 또 어떤가. 

우리보다 축구를 사랑하는 광팬이 더 많은 나라들도 있지만 티셔츠까지 맞춰 입고 나와서 장단을 맞추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애국심이라고 보기엔 우린 너무 즐겁지 않았던가. 



한국 사람들이 흥이 많다는 건 길거리에 널린 노래방 간판 수를 봐도 알 수 있다. 

또 술자리 문화를 보면 노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 지도 알 수 있다. 

굳이 온갖 젓가락 장단, 노래 장단에 술병을 돌려가며 술자리를 즐겨야 하나 싶을 수도 있지만 누가 시켜서야 하겠나. 

고등학교 시절 심수봉 모창을 기가 막히게 하던 내 친구는 심수봉 팬인 물리 선생님 덕분에 매 시간 노래를 한곡씩 불러야 했다. 



언어의 단계가 있다면 그 최고봉은 농담이다. 

농담이 먹히려면 어휘와 문법은 물론이고 그 뒤에 숨겨져 있는 문화, 화용, 어조까지 모두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배우들이 사투리 연기를 어려워하고 내 동기들은 내가 자기 동네 사투리를 흉내라도 내면 몸서리를 친다. 높낮이를 제대로 흉내 내지 못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들이 진짜 성을 내는 이유는 자기들 정서가 없다는 이유로 보인다. 고향에서 전화가 오면 목소리가 3톤은 올라가는 친구를 보면 내가 모르는 건 흥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나도 굳이 한인 미용실을 찾아간다. 말이 안 통해서가 아니라 흥이 안 통하니 말이다. 

영어로 흥을 찾으면 joy, excitement이라고 나오는데 영 탐탁지가 않다. 

즐겁지 않은 건 아닌데 즐거운 것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나 혼자 즐긴다고 흥이 될까.

내가 느끼는 신이 너한테도 전달이 되고 우리가 같이 즐거울 때 흥이 난다.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삶을 인간답게 살기 위한 채찍으로 서양은 선과 악의 종교를 선택했다. 

악하면 벌을 받고 지옥에 가는 벌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인지 서양의 드라큘라, 귀신들은 차갑고 무섭다. 

그런데 우리는 흥을 선택했다. 

혹부리 영감에 나오는 도깨비들이 혹을 떼가며 금은보화를 선물한 이유는 바로 신명 나는 노랫가락 때문이었다. 



인생이 늘 재밌고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우리와 즐겁게 함께 가자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