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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o습o관 Sep 27. 2024

06. 개똥철학의 비애

생각의 뿌리를 따라가 보자

얼마 전 다트머스 대학 김용 총장이 영상에 나와 아버지가 개똥철학을 개탄했다는 이야기를 하신 기억이 난다.

개똥철학이란 말을 들어 본 지가 언제인가?

요즘 세대들은 이 말을 아는지 모르겠다.

별로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나지만 학창 시절에나 들었을까 싶을 정도로 요즘은 자주 듣지 못했다.

문득 개똥철학의 시작이 궁금해지는 것이 아닌가.

언뜻 한국 전쟁 전후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도 아니면 민주화 운동 당시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유례를 알고자 사전을 찾아보니 대수롭지 않은 생각을 철학인 듯 내세우는 걸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쓰여 있다.

뜻 밑에 박영한의 소설 머나먼 송바강 구절이 예문으로 나와 있었다.



" 학교  야시장의 막걸릿집과 다방이나 몰려다니며 허황한 개똥철학이나 나불대며 시시덕대는 짓거리가 싫어, 재빨리 입대해 버렸었지. "



베트남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이 개똥철학의 처음인지 모르겠지만 역시나 냉전시대에 많이 쓰이긴 한 모양이다.

우리 역사는 유난히도 사상 몸살을 정면으로 앓지 않았나. 그 결과 개똥철학이란 새로운 학문이 생겼다.



우리는 자유경제, 민주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마르크스 이런 것에 대해 단 한 번도 배워보지 못했었다.

우리는 피로 배우고 몸으로 배웠다.

아는 사람 잡아가면 나쁘고, 우리 가족을 살려주면 좋았다.

나를 몰라주면 나쁘고, 나를 쳐주면 좋았다.

세상에 온전히 나쁘기만 사상이 있을까.

우리 편이면 좋은 사상이 되기 십상이었다.

누구 사상이 옳고 그른지 시시비비를 가르고 한가하게 토론을 하고 있는 이들 입에 개똥을 쳐밖고 싶은 심정이었으리라.

목숨부지를 위해 귀를 막고 양심을 팔아야 하는 일도 있었으리라.



사상 따위야 사람이 살고 볼 일이 아니던가.

그래서 너는 개똥철학이다.

사람 목숨 하나도 못 살리는 개똥 같은 철학이다.

그렇게 집어삼킨 개똥철학은 결국 민주화 운동이라는 또 다른 후유증을 낳는다.

뭐 좋은 개똥이라고. 이제 뱉을 때도 되지 않았나.

 


사람을 지키느라

사람이 우선이라

사람 뒷전으로 밀어 둔 양심에 대한 미안함과 변명의 다른 이름이 개똥철학인가

개똥취급엔 억울한 점도 있을지언정 

똥밭을 불사하며 지킨 것은 사람이었지 않나.

개똥철학에 똥벼락을 맞지 않는 방법은 사람을 세우는 것 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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