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습관 04
실패 문신으로 도배 된 행동파

책.습.관.

by 책o습o관

나는 행동파다. 내 친구는 감상파다.

행동파인 나는 뭐든지 내가 할 때 제일로 신이 난다. 운동경기도 내가 하는 게 제일 신이 나고 돼지 멱을 따더라도 내가 노래 부를 때 감수성이 최고로 터진다.


내 친구는 운동 경기도 앉아서 보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 신의 경지에 이른 MJ의 경기를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단다. 은퇴한 농구 선수 영상을 뭘 그리 돌려보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따라 부르지 말고 어쭙잖게 품치키 하지 말고 가만히 들어보란다. 트럼펫이 어쩐다나.


행동파의 문제는 남들 하는 것도 보기 전에 들이대니 실수 연발이다. 느낌대로 하는 것이지 원리원칙대로 하는 것이 아니니 보고 배운 것이 많은 감상파 눈에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때로 사고를 거하게 치면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간다는 소리도 면하기 어렵다.

감상파는 눈이 높다. 보고 배운게 많아 실수는 적지만 제대로 배우기 전까지 시도하지 않는다. MJ가 되지 않을 바에는 농구 코트에 들어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인 모양이다. 농구공 비슷한 둥근 배만 퉁퉁거리며 득점 인정도 되지 않는 덩크슛을 수없이 넣어 댄다.


매년 연말이 되면 학교에서 연극제를 한다. 가장 나이 많은 반 아이들은 이때가 되면 골머리를 앓는다. 더 이상 동생들처럼 귀엽지도 않고 다른 동생반 하는 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형님들의 뭔가를 보여주고 싶은 모양인데 창작의 고통은 뼈아프다. 게다가 웃기도 싶은 아이, 뽐내고 싶은 아이, 차라리 춤은 추겠다는 아이, 춤은 죽어도 못 추겠다는 어쩌면 한 놈도 같은 놈이 없이 개성시대다. 13년 차 한국학교 선생인 나는 연극제를 준비할 때면 머리가 아픈 다른 선생님들과 달리 여유만만이다. 내 비기는 행동파를 찾는 것이다. 딱 한 명만 있어도 된다.

내가 행동파인 것은 소용이 없다. 선생님 위신이 있지 두목이면 몰라도 행동대장은 어림없다. 원래 두목은 뒷방에 앉아 있을 때 제일 무서운 법. 교실에서 감상파를 가장한 행동파인 나의 정체는 극비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대부분은 감상파로 시작한다. 학교 연말 공연을 앞두고 감상파들이 높은 잣대를 들이댄다. 재미없을 거 같단다. 춤도 아이돌과는 급이 다르단다. 수줍지만 고집스러운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는 오디션 심사위원 보다 더 섬세한 눈으로 행동파 아이들이 쏟아내는 아이디어를 감상한다. 급기야 마음이 급한 행동파들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몸소 보여주기도 하고, 그냥 하라고 윽박도 지른다. 극이 형태를 점점 갖춰가니 감상파 아이들도 될 것 같은 느낌이 오는지 고급진 훈수를 잊지 않으며 하나둘 행동한다. 행동파들은 놔두면 와이어라도 타고 천장에서 뛰어내릴 양인데 감상파들이 뜯어말린 덕에 무대에서 소박하게 막춤 정도 추는 것으로 타협을 봤다.


공연 날이 점점 다가오니 녀석들이 다 행동파가 되었는지 처음엔 창피하다더니만 서로 더 웃기겠다며 난리다. 무대 위에서 관객들의 박장대소를 듣더니 급기야 녀석들이 대사에도 없던 애드리브를 한다. 충실한 행동파 대원이 하나 더 늘은 것이라 믿고 싶다.


내가 행동파를 높이 사는 이유는 행동파들이 없으면 시작이 안 되기 때문이다. 감상파를 높이 사는 이유는 정교해 지기 때문이다. 요즘은 기술이 발달하고 사람들이 똑똑해져서 그런지 감상파가 수적 우세다. 나는 보호종이어서인지 동종이어서인지 행동파에 더 애정이 간다. 선생님이 있기 그 전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의 최초 선생님은 배우지 않았을테니 난 인간이 가진 깨우침의 능력을 믿는다.

부모님들도 애들한테 뭘 그렇게 자꾸 미리 배우라는데 배운 다음에 하려고 하지 말고 해 보고 배우면 안 될까?


내가 재벌이 부러운 이유는 돈과 시간이 드는 실패도 마음껏 할 수 있어서다. 그렇다면 재벌이 뭐 별 건가? 시간은 습관으로 만들고 돈은 안 들이고 하는 방법을 찾으면 돈 없이도 재벌처럼 살 수 있지 않을까? 새해에는 이 글을 읽는 분들 모두 재벌이 되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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