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습관 02 혹시 아나? 깨달을런지.

책.습.관.

by 책o습o관

연말이다. 12월이 딱 열흘 남은 오늘 나는 똥줄이 탄다. 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표현이다. 똥줄 없이는 내 급한 마음이 표현이 되지 않는다. 나의 다른 글을 읽은 독자들께서 도대체 뭐 하며 사는 인간인가 궁금하셨다면 나는 홍길동이다. 이리저리 천방지축으로 날뛰며 살고 있다. 이렇게 미쳐 날뛰는 중에도 유지되는 한 가지 공통된 테마는 교육이다.


타는 똥줄의 원인 중 하나는 새해 첫 교사 연수에서 당차게 맡은 강의 때문이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나는 미국에 있는 한국학교에서 현재 중고등부 반을 6년째 맡아 가르치고 있다. 공부할 게 헐렁한 초등학교에 비해 중고등학년 정도 되면 나라를 막론하고 입시와 관련 없는 한국어 공부는 뒷전이 되기 십상이다. 먹고사는 게 중하지 꼴난 애국심으로 한국어 붙잡고 있어서 뭐 하겠나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하고 경쟁이 치열해서 총칼 다 들고 덤벼도 이길까 말까 하다 보니 여력이 없어서라는 게 맞는 거 같다. 여하튼 이해는 되지만 안타까운 상황 탓에 중고등부반은 매년 선풍기 앞 촛불이다. 대충국을 삶아 먹은 허술하기 짝이 없는 선생님을 만나도 쑥쑥 크는 아이들이 신기하고 기특해서 있다 보니 13년째 한국학교 교사다. 세월도 기록할 겸 셀프 은퇴 기념패로 생각하며 책을 냈다. 책을 내고는 여기저기 감사한 분들과 꼭 알려할 곳들이 있어 알렸는데 강사가 기근인 협회에서 날짜와 시간까지 잡아서 연락을 주셨다. 바늘이 대단한 진정한 의미의 낭중지추는 아니고 바늘을 아무 데나 넣어놨더니 우연히 찔린 경우다.


나는 천성이 선생인 분들과는 거리가 멀다. 태도도 불량하고 마음씨도 야박하다.

타고난 선생님들은 마음결도 곱고 바라서 법 없이도 살 분들이지만 나는 법 없으면 큰일 난다. 선생님이 된 공부도 잘하고 착한 학생들은 뭐든지 배우려고 한다. 하나도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배우려고 한다. 반면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은 보통 선생님 말을 잘 안 듣는다. 설명할 때 딴 짓하는 것은 물론이고 쓸모 없는 내용이라는 둥 이죽거리기도 하고 무턱대고 덤벼서 실수를 연발하기도 한다. 그래도 먹고 사는 이유는 그 와중에 깨닫는 것이 있어서다. 때로 깨달음이 가르침보다 힘이 세서 성적순대로 성공하지 않기도 한다. 나는 깨달음의 힘을 믿는다.


내가 쫓겨 나지 않고 13년이나 반쪽 선생을 하고 있는 딱 하나 이유는 공부하기 싫은 학생들 마음을 잘 이해하기 때문이다. 나도 수많은 연수에 참석했고 그보다 더 수없이 궁시렁됐다. 이미 배우는데 도가 튼 법 없이도 살 선생님들 앞에서 무법자인 내가 강의를 할 게 뭐가 있을까? 이렇다 보니 강의하는게 여간 고민이 아니다.


시간만 버리는 강의를 하게 되면 어쩌나.

지루해서 오금이 저린 강의를 하게 되면 어쩌나.

나 혼자 거품 물고 열창하면 어쩌나.

낄낄거리며 웃고 떠들다 (이게 제일 어렵겠지만) 빈 가슴으로 보내면 어쩌나.


하루 종일 아이들과 씨름하고 듣는 연수에서 라디오 같은 강의를 듣고 싶어 하실 거란 것을 안다. 날라리인 나는 줌 연수에서 화면과 마이크도 모두 끄고 설거지하며 배경음악으로 듣기도 했다.


휴대전화를 잘 못 다루는 엄마가 교육학이 전공인 동생에게 좀 가르쳐 달라고 했더니 교육학 박사님 왈 " 해봐~ 해봐야 알아. " 란다. 엄마 마음은 좀 상했지만 역시 박사라 조언이 남다르다.

듣는 강의 말고 직접 하게 하는 강의로 선생님들을 괴롭혀 볼 요량이다. 교사가 가르치는 한국어 수업이 아니라 학생들이 만들어가는 한국어 수업을 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남들만 배우는 건 배 아프니 나도 배우기 위해 선생님들 이야기도 들어야겠다. 배우지도 않고 깨달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스스로 깨달을 수 없으면 배우기라도 하는 게 맞긴 하는데...... 우선 해보면 더 좋지 않을까?혹시 깨달을 수 있을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