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은 나도 모르던 나를 일깨워 준다. 나도 내가 축구를 좋아하는 줄 몰랐다. 한국인이라면 거부할 수 없는 손흥민 영상에 1초 이상 눈길을 주었다는 이유로 유튜브 알고리즘은 나에게 손흥민의 일거수일투족과 인터뷰를 담은 영상은 선물했다.
내 친구는 손흥민이 울보라서 싫단다. 태어나서 세 번만 울어야 하는 대한의 건아가 세계인이 보는 카메라 앞에서 울어재끼는 건 모양이 빠진단다. 나는 반대다. 난 손흥민이 전 세계인이 다 보는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손흥민이 정말 강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게 설사 보여주기 식이었다고 한들 직업인으로 축구를 사랑하는 마음을 광고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손흥민 선수의 축구 실력이야 내가 세계 최고라고 말할 필요도 없이 다 아는 사실이다. 축구 실력 외에 내가 손흥민 선수한테 감탄하는 것은 손흥민 선수의 외국어 실력이다. 유소년 축구 시절부터 와서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세월과 비례하지 않는 외국어 실력을 가진 사람들을 못 본 모양이다. 손흥민이 외국어를 공부한 이유는 소통, 관계다. 뭐 이것도 다 아는 이야기다. 배경에 손흥민 안티로 유명한 아버지 손정웅 코치의 사람 중심 축구는 나도 아는 이야기니 어지간한 팬들은 다 아는 이야기일 것이다.
돈을 물려주는 부모보다 경험을 물려주는 부모가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운동계, 예체능계는 업계 특성상 그런 경향이 더 도드라진다. 축구 지도자의 아들 손흥민 부자가 그렇고 바람의 아들 이종범과 최근 MLB와 계약한 아들 이정후, 한국 농구 대통령 허재의 아들들 허웅, 허훈처럼 아들 딸들이 같은 업종에서 승승장구하면 나는 아버지 어머니를 재평가하게 된다. 잘 난 부모 밑에서 잘난 자식이 나는 게 당연할 거 같지만 안 그런 자식들도 많다. 부모가 잘 나서 밀어줬으니 그렇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민다고 다 잘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타석에 설 때마다 다들 바람의 아들은 얼마나 대단한 바람 인가 하고 쳐다본다고 생각했다면 나는 한 발짝 뛰기도 전에 발이 꼬여 넘어지거나 거드름을 피우면서 아빠찬스를 이용해볼까 싶어 선수석보다는 코치석에서 얼쩡거렸을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축구 선수면 아들이 당연히 축구를 좋아할 것 같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내부 상황을 너무 잘 알고, 힘든 걸 너무 봐서 오히려 질색할 수도 있다. 자식들이 부모의 업을 따라한 것은 부모가 자신의 업을 진짜 사랑하는 것을 들킨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아이들은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따라하지 하기 싫어하는 것을 따라하지 않는다. 힘든데도 하는 걸 보니 재미있나 보구나, 먹고는 살겠구나, 저렇게 하면 나도 성공하겠구나 싶어 따라 한다.
나한테 재평가를 받는 부모들에겐 자식이 부모라는 큰 산을 넘을 수 있는 과정을 지켜봐 줄 단단한 마음이 있다. 업계의 평판과 재력으로 밀어줬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세상이 그렇게 호락하진 않다. 누구 아들 딸이라고 말하는 게 부담만 되거나 구속이라고 생각하는 자식들은 호사를 누릴 수가 없다. 차라리 내가 평가받는 게 낫지 자식이 평가받는 걸 지켜본다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나 때문에 자식이 기를 못 펴나 해서 마음이 약해져도 안 된다. 때로 남들보다 더 엄격한 잣대로 자식을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응원과 조언의 줄타기를 잘했다는 것은 관계에 있어서도 고수였음이 틀림없다.
자식까지 잘난 경우, 특히 저렇게 동종업계에서 잘 난 경우는 세 가지는 무조건이다.
전문지식과 전공 분야에 대한 기술과 지혜가 남다르다.
몰입과 습관으로 점철된 노력의 결실이다.
그리고 부모의 경험을 받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탄탄한 관계다.
이들이 운이 좋은 것은 확실하다. 유전적인 요소와 기질, 환경까지 삼박자가 딱 맞아떨어졌으니 부럽지 않을 순 없다. 이제 2세대가 3세대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보면 진짜 명문가인지 알 수 있을 테다. 기술 말고 관계까지 이어져야 명문가인데 관계가 이어지는 지를 보려면 그 후대도 봐야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명문가를 일구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러면 앞에 수식어가 없는 평범한 부모인 나는 어쩌나? 나는 농구대통령도 아니고 바람의 아들도 아닌데? 경험이 없는 부모는 없다. 실패도 경험이다. 나는 아이에게 처음이 될 수 있는 기회도 주었다. 이종범이 말하는 헝그리 정신은 개척자 정신과 일맥상통한다. 아이들이 무엇을 하든 그건 아이들이 스스로 일군 것이다. 일군 것이 무엇이든 자부심을 가지면 좋겠다. 바람의 아들(딸)이 될 수도, 농구 대통령이 될 수도, 축구지도자도 될 수도 있다고 나는 믿는다. 내 부모가 나를 사랑한 것으로 보아 자식을 사랑하는 것에서는 나름 명문가에서 태어났다고 자부하니 명문가에 대한 부러움은 넣어두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