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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o습o관 Jan 18. 2024

우리들의 책.습.(관). 09 저작권

책.습.관 라디오

안녕하세요. 우리들의 책.습.관. 강주현입니다. 잘 지내셨어요? 


저는 혹한기 고약한 성질을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는 중이에요. 그제는 차고문이 고장 나더니 다음엔 히터가 말썽이네요. 시원찮은 히터 대신 간이 히터를 켰더니 그다음엔 정전이 되었습니다. 아침엔 드디어 터질게 터졌습니다. 차가 시동이 걸리지 않습니다. 작꿀이 학교 가면 해야 할 일을 야무지게 쌓아놓고 있었는데 이렇게 억울할 수가 있나요? 이성적으로야 날씨가 후져서 그렇다고 연식이 오래된 집이니 예상 가능했던 일이라고 이해하는 하지만 꼭 이렇게 한꺼번에 들이대야 하는 것인지 참 야속합니다. 날씨가 잘못 건드렸지요. 불뚝 심퉁이 납니다. 그래도 내 좋은 걸 하겠노라고 오기가 부리고 싶어집니다. 원래 계획은 일주일에 두 편의 라디오를 완성하기로 다짐했지만 오늘은 라디오라도 하나 해서라도 억울함을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꿀꿀이 둘 엄마입니다. 돼지해에 태어난 큰꿀이는 17살이고 작꿀이는 이제 5살이 되었지요. 

꿀꿀이들은 저하고 외모가 전혀 닮지 않았습니다. 뭐든지 동글동글한 저하고 달리 두 꿀꿀이는 얼굴도 가름하고 자그마합니다. 공동 저작권자 말만 따라 종자개량에 성공했지요. 


제가 일하는 학교에 10년 가까이 같이 다닌 큰꿀꿀이가 제 딸인지 여전히 모르는 분들도 많아요. 학부모님들이야 애가 저희 반이 아니면 저라는 사람을 모르실 수도 있지만 새로 오신 선생님들처럼 저를 안 다고 해도 모르시는 분들도 있지요. 그 정도로 안 닮았거든요. 사람들이 하나도 안 닮았다고 말해도 저는 저작권 걱정 없이 그저 빙긋이 웃습니다. 큰꿀이가 저를 꼭 닮은 게 있거든요. 바로 성격입니다. 큰꿀이 어릴 때 제가 학교에서는 엄마라고 하고 말고 선생님이라고 하라고 했습니다. 괜히 미움살 수도 있고, 질투살 것도 없는데 질투살 수있을지 모른다는 제 간장종지 같은 우려였지요. 딱 한번 말한 건데 큰 꿀이는 그 말을 철썩 같이 지켰어요. 제가 가르치는 반에 있을 때도 저한테 꼬박꼬박 선생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저를 닮아 순진해 터져서 곧이곧대로 시키는 대로 하는 성격이지요.  


저와 동생이 어릴 때 엄마가 심부름을 시켜요. 

쓰레기 좀 버리고 와라.

그러면  한 놈은 대답이 없고 한 놈은 냉큼 대답을 하는데 버리러 갈 생각이 전혀 없어요.

대답이 없는 놈은 지금 바쁘니 조금 있다가 하겠다거나 힘들어 죽겠다는 어리광 연기를 할 주제가 안 됩니다. 뱉은 말 대로 하지 않으면 어쩌나 전전긍긍하고 가볍게 인사치레로 하면 될 말들도 진정이라는 목구멍에 딱 걸려서 부드럽게 나오지도 못합니다.

그런 성격이니 아이고 이걸 빨리 또 해야겠구나 하긴 하는데, 하기는 싫으니 대답을 안 하는 거거든요. 

한 놈은 대답은 냉큼 하는데 세월아, 네월아 하니 여러 번 물어봐야 하고 이걸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들기까지만도 한 세월이 걸리니 말이에요. 

엄마는 항상 대답이 없는 놈을 시키셨어요. 


작꿀이에게 청소를 하라고 시켜요. 

갑자기 멀쩡하던 다리가 아프시다네요. 이건 출처가 확실합니다. 

작꿀이에게 선생님이라고 하라고 하니 씨알도 안 먹힙니다.  

저 멀리서 제가 보이면 산봉우리에서 우렁차게 울리는 야호 마냥 손을 흔들며 

" 엄마 엄마' 를 외쳐요. 

다른 학부모들, 친구들이 어찌 보나 그런 것은 신경도 안 쓰고, 반가운 마음뿐이죠. 자기가 좋은 게 제일이에요. 

이건 또 출처가 어디일까요? 


친구와 함께 차를 타고 비보호 차선에 좌회전을 하려고 섰어요. 차가 안 보는 틈을 타서 좌회전을 하려는데 친구가 그럽니다. 

" 야, 심술 맞은 저 차 좀 봐. 좌회전 좀 하려고 하니 더 빨리 오네. " 

"좌회전 차가 기다리니 빨리 지나가려 주려고 한 거 아니야? " 

고 했다가 

"이 순진한 사람아. 그래서 네가 세상을 모르는 거야. 그렇게 생각해 주려고 했으면 더 천천히 왔어야지." 

제가 도와준 답시고 한  순진하고 속 터지는 얼마나 수많은 행동들이 있었을까요?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어요. 

도와주려고 했던, 먼저 가려고 한 게 진실이건 간에 운전자를 쫓아가서 물어볼게 아니라면 

나한테 좋은 건 도와주려고 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하고요.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한데 말이죠. 

그렇게 보니 작꿀이도 저를 닮은 구석이 있네요. 이러니 저작권 걱정은 할 필요 없겠어요.


목욕을 하고 바닥에 가발 하나를 뚝딱 바닥에 만들어 놓는 큰꿀꿀이에게 

어우 무서워. 누구 가발이냐. 

대답 없는 그녀는 침묵으로 일관합니다.  

치운다는 얘기겠지요. 

말 한마디로 인생을 얼마나 쉽게 살 수 있는지 어렵게 배운 원조 입장에서 애잔합니다. 

출처가 이렇게 확실한데 누구를 탓하겠어요. 


벌써 4일째 집콕인 작꿀이는 엄마가 숨박꼭질을 하고 싶어한다고 철썩같이 믿습니다. 

아무래도 혹한에 시계까지 고장난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시간이 더디 갈 수 있는 건가요. 


여러분의 책.습.관. 은 어땠어요? 

습관 삼아 돌아올게요.

우리들의 책. 습. 관.이었습니다. 


https://podcasters.spotify.com/pod/show/juhyun0528/episodes/09-e2ej4gq

https://youtu.be/vJ9A_KObh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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