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우리들의 책.습.관. 강주현입니다. 잘 지내셨어요?
저는 요리를 좋아합니다. 물론 먹는 건 더 좋아합니다. 남들은 자기가 요리하면 하다가 맡는 냄새에 질려서 안 먹는다는데 웬걸 저는 제가 한 요리든 남이 한 요리든 없어서 못 먹습니다.
요리를 좋아한다고 하니 예술 작품 같은 요리를 섣불리 상상하시면 큰일 납니다.
제 요리는 생존형 요리니까요.
저는 레서피도 재료가 너무 많거나 어렵거나 너무 길면 과감히 패스합니다.
물론 그렇게 하면 미슐랭 같은 요리를 먹을 순 없습니다.
그런 건 사 먹어야죠.
뭐 대단한 요리를 하는 것도 아닌데 밥하고 국하나 끓이고 메인 요리 하나 반찬 한두 가지는 30분이면 설거지까지 끝이 납니다. 자랑이 아니라 저처럼 솥뚜껑 운전을 오래 한 주부들이면 터득하는 흔한 정도입니다.
제가 주로 쓰는 양념, 조리도구, 야채가 어디 있는지도 눈 감고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저의 완벽한 주방에 라면을 좋아하는 불청객씨가 들어오면 우주의 규칙이 송두리째 흔들립니다.
제가 라면을 끓이면 15분 안에 끓여서 먹고 설거지까지 끝나는데 불청객씨는 라면만큼은 손수 끓이십니다. 이 불청객씨는 냄비하나 고르는데 5분이 걸립니다. 냄비가 많은 것도 아닙니다. 달랑 3개 중 하나를 고르는데 이렇게 신중할 일인가 싶습니다.
시간을 절약하면서 요리를 빨리하려면 머릿속에 계획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재료부터 볶기 시작하면 프라이팬 하나로 끝내버릴 수가 있는지 하는 그런 계획 말이에요.
섣불리 소스가 찐득하게 붙는 것부터 먼저 시작하면 설거지를 중간에 여러 번 하게 되니까요.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밥을 안치는 일부터 해야 하는데 다른 걸 다하고 맨 마지막에 하게 되면 고기는 고기대로 다 식고 서둘러 익힌 밥은 밥대로 설익어서 제대로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냄비에 물을 올려놓고 라면을 뜯어야 하는데 순서부터 틀려먹었습니다. 라면 다 뜯고 그제야 물을 올려놓습니다. 그뿐입니까. 냄비 달랑 하나 들고 한번, 라면 하나 들고 한번, 계란 하나 들고 한번. 아니 두 개씩 있는 팔은 왜 한 번에 쓰지 않고 한 번에 꼭 하나씩만 쓰는 것인지 보고 있으면 답답해서 눈을 질끈 감습니다.
그럴 거면 차라리 계량컵을 쓰지 끓이면서 내내 괜찮나? 그럼 그럼 괜찮나? 그럼 그럼 반복하며 물과 자존심 겨루기를 합니다.
불청객씨는 물이 끓을 때까지 무슨 마법의 주문을 넣는지 불씨가 꺼질세라 옆에서 지키고 서 있습니다. 한국인인 게 확실한지 A watched pot never boil 같은 영어 속담은 가볍게 무시합니다.
라면과 스푸를 차례로 한꺼번에 싹 뜯어서 라면 봉지에 모두 집어넣고 오므려서 휴지통에 딱 버리면 라면을 끓였는지도 모르게 할 수 있는데, 불청객씨는 라면 봉지는 봉지대로 스푸봉지는 봉지대로, 건더기 봉지는 봉지대로 나란히 나란히 줄을 세워놓습니다. 그것도 조각조각 내서 나란히 나란히 줄을 세워놓습니다. 그중 한 조각은 보물 찾기처럼 나중에 뚝 떨어진 곳 어딘가에서 발견됩니다. 하얀 조리대 위에 존 폴락이 울고 갈 주황색 점의 예술이 맛드러지게 펼쳐집니다. 물론 그 옆엔 젓가락이 남기고 간 발자국도 있습니다.
라면을 넣는 순간부터는 더 바빠집니다. 저 같은 생계형 요리사는 전혀 차이를 못 느끼지만 라슐랭인 불청객씨는 면발에 공기를 불어넣는다며 수시로 들썩들썩입니다.
처음에 쓰고 교체당한 은젓가락, 아까 면 읽었나 볼 때 쓴 나무젓가락, 김치 꺼낸다고 쓴 젓가락, 달걀 넣고 쓴 젓가락, 젓가락 부대가 총 출동합니다.
불청객씨가 공기반 라면을 제조하시는 그때 저는 애벌 설거지를 해 놓습니다. 다른 요리에 쓰인 너무 큰 것은 거추장스러우니 미리 치워 놓기도 하고 물에 불릴 것은 물을 받아 넣어 놓습니다. 젓가락 부대도 철수시킵니다. 이렇게 잘 펼칠 수 있나 싶게 잘게 조각내서 스푸 종류별로 펼쳐놓은 조리대 위도 정리하고 식탁도 차립니다. 불청객씨가 냄비 위로 머리를 한껏 밀어 넣고 콧노래를 부르며 라면을 들썩이는 그 순간에 말이죠.
달걀을 넣는 순간은 긴박해서 아주 짜릿할 정도입니다. 풀어지면 국물이 탁하다고 물이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마지막 순간에 넣어야 한다고 발을 동동 구릅니다.
화룡정점은 뚜껑입니다. 이제 달걀도 넣었겠다 먹어도 되겠구먼 뚜껑을 꼭 찾아서 뜸을 들여야 한답니다. 아까 냄비 꺼낼 때 같이 꺼냈으면 되는데 집도의 마냥 꼭 조수를 찾습니다. ' 뚜껑 ~"
한 손으로 뚜껑을 누르고 15초만 딱 기다리면 된답니다. 심지어 시계까지 보며 셉니니다.
드디어 대단한 요리를 마치고 식탁에 앉습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면서 하는 요리법에 대해 한 마디 하려고 입술을 들썩이려는데 뜨거운 김 뒤로 입에 침이 그득한 불청객씨 목소리가 들립니다.
" 야 면발이 다르다 달라. 정성이 들어가서 그래."
정 성.
효율이 꼼짝 못 하는 바로 그 말.
"야 국물 봐라. 칼이다. 칼. "
"맛있지? 끝내주지? "
그 뒤로도 수천번 물음을 가장한 감탄사를 연발합니다.
맛있어서 말이 안 나오는지 정성에 목이 메어 안 나오는지 하여간 안 나오는 목소리를 쥐어짭니다.
"맛있네."
그래도 먹는 건 효율적입니다.
파뿌리 약속을 했으니 시간도 나눠 써야겠지요.
'아, 국물에 파뿌리를 넣었으면 더 시원했을 텐데. '
여러분의 책.습.관.어땠어요?
습관 삼아 돌아올게요.
우리들의 책.습.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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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z0kNv_mFI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