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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다캣 May 19. 2024

5화 뿌리 믿음 - 2

에세이『귀를 기울여 나를 듣는다』


뿌리 믿음을 찾는 방법은 스스로 질문하는 것이다. 화가 잔뜩 났던 순간을 떠올린다. 분노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화가 났던 일이 언제였는지 대체 무엇 때문이었는지 구체적으로 되짚어 본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왜 나쁜 것인가?’ 또는 ‘무슨 의미인가?’라고 계속 질문한다.


‐ 도대체 왜 그렇게 화가 난 거야? 오늘 무슨 일이 있었지?

‐ 그 사람이 내가 근무시간에 게으르다는 식으로 말했어. 그래서 화가 난 거야!

‐ 내가 게으른 것이 나쁜 일이야?’

‐ 당연하지! 게으르다는 건 내가 할 일을 하지 않고 빈둥거린다는 뜻이잖아.

‐ 내가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빈둥거리는 게 나쁜 거야?

‐ 나쁘지! 할 일을 하지 않고 빈둥거린다는 건 무책임하고 무능하다는 뜻이잖아. 

‐ 내가 무책임하고 무능하면 나쁜 거야? 그게 무슨 의미야?

‐ 나는 무책임하고 무능하지 않아. 열심히 살고 있어. 그런데 그런 노력을 무시하니까 화가 나는 건 당연해.

‐ 내가 무시당하는 게 나쁜 거야? 왜 나쁜 거야?

‐ 당연히 나쁘지. 존중받지 못하니까.

‐ 내가 존중받지 못하면 나쁜 거야?

‐ 존중받지 못한다는 건 우리 사회에서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야.

‐ 내가 가치가 없는 사람이면 나쁜 거야?

‐ 가치가 없다면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없어.

‐ 내가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게 나쁜 거야?

‐ 인정받을 수 없다면 사랑받을 수도 없잖아.

‐ 내가 사랑받을 수 없다는 게 나쁜 거야?

‐ 당연히 나쁘지! 

‐ 왜 나쁜 거야?

‐ 사랑받지 못하는 삶은 불행하고 비참해.

‐ 왜 사랑받지 못하는 삶이 불행하고 비참하지?

‐ 인간은 사랑받을 때 행복을 느끼니까. 인간의 모든 행동은 결국 사랑받기 위한 거야.

‐ 행복하지 않다고 해서 반드시 불행하고 비참한 것은 아니야. 왜 사랑받지 못하면 불행하고 비참하다고 여기지?

‐ 사랑받지 못하면 사는 게 외롭고 힘들어져. 그게 곧 비참한 거야. 

‐ 사랑받지 못하면 왜 외롭고 힘들다고 생각하는 거야? 

‐ 사랑받지 못한다고 여겨졌을 때 그런 기분이 들었으니까. 

‐ 사랑받지 못했을 때 왜 그런 기분이 들었지? 그게 실제 삶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거지?

‐ 글쎄, 모르겠어. 

‐ 혹시 사랑받지 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거야?

‐ …….




이따금 부모로부터 사랑받지 못했던 트라우마로 인해 어른이 된 이후에도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궁금할 때가 있다. 그 숫자는 오직 신만이 알고 있다. 

아이의 입장에서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동물의 세계를 떠올리면 쉽다. 어미의 사랑이 없으면 새끼는 죽는다. 모유를 먹고 자라는 포유류에게 사랑은 감정적 충만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다.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던 어린 시절은 목숨을 위협받았던 상황에 비할 수 있다. 성장한 뒤에도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남긴다. 마음의 상처는 과거의 일을 생생하게 되살려내어 현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과거의 일은 모두 과거에 속한다. 친부모로부터 사랑받지 못했던 기억을 그저 과거의 일로 흘려보내기 어렵지만, 지금에 이르러 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 과거가 존재하는 현재를 무너뜨리는 것은 자신에게 속한 내면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에 대해 모른 척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경이로운 능력 중 하나다. 어린아이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고통스러운 기억을 망각한다. 그렇게 어른이 된 아이는 고통에 대해 방어적인 태도로 일관하기 쉽다. 스스로 과거의 사건에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은 아마 본능적이고 무의식적인 선택일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겪은 혹독한 경험을 한순간 자신과는 아무 상관 없는 남의 일이라고 진심으로 믿을 수 있다니 사람의 마음이란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이상했다.






고통이란 갈망과 혐오를 오가는 것이다.


에세이 『귀를 기울여 나를 듣는다』 출간 기념 연재는 총 4회로 예정했습니다만, 브런치북 완결을 위해 6화부터는 책 속 문장들과 책에 대한 설명으로 계속 이어 연재하려고 합니다. 내면을 향한 짧지만, 강렬한 이야기, 『귀를 기울여 나를 듣는다』 연재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6화는 5월 31일 금요일 업데이트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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