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기록 04
날씨가 어둑어둑한데 콧등과 인중과 눈 아래 뺨이 따갑다. 비 오는 날에도 자외선이 내리쬔다. 일주일 전에 햇빛을 피하기 위해 책상을 옮겼다. 블라인드를 절반쯤 내리고 벤자민 나무 잎사귀로 그늘을 만들어도 자외선을 완전히 막을 수 없었다. 괜한 짓을 한 걸까. 이제 와서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기도 애매하다. 에너지를 그렇게 허투루 써버리면 안된다.
허브들은 쑥쑥 자란다. 말도 안 되게 적은 양인데 말도 안 되게 비싸서 바질과 애플민트와 박하를 직접 키워보기로 했다. 예상과 달리 하나도 죽지 않고 빠른 속도로 성장한다. 살짝 난처하다. 이 정도로 빠르게 스파게티와 차가운 허브티를 소비할 수 없는데. 역시 괜한 짓을 한 걸까. 하지만 관상용으로도 괜찮으니까 굳이 난처한 일은 아닌 것도 같고.
뭘 하면 괜한 짓을 한 것 같고 안 하면 그걸 꼭 해야겠다는 생각에 다른 일은 안중에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