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기록 09
『편집 후기』는 황인숙 선생님에게 받은 에세이다.
선생님은 만날 때마다 먹거리와 고양이 사료와 헌책들을 한 아름 안겨 준다. 선생님 물자가 나에게 옮겨지는 과정에서 내 취향 따위 철저하게 (개)무시된다. 이러쿵저러쿵 불평을 늘어놓은 덕에 최근엔 비교적 깨끗한 책을 받는다. 그전에는 선생님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분리 수거함으로 직행하는 너덜너덜한 책들이 부지기수였다.
받은 책은 한국 소설이나 한국 에세이다. 선생님도 출판사와 작가로부터 받은 책인데 나에게까지 넘어온 이 책들의 최후는 좋지 않다. 나는 헌책을 읽지 못한다. 벌써 십 년 전부터 말씀드렸는데 선생님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한 번도 거절하지 않고 서울에서 인천까지 끈질기게 무거운 책을 들고 온다. 책의 무게가 내가 읽어보면 좋을 책들을 일부러 골랐을 선생님 마음 같아서. 그리고 서너 권에 한 권 정도는 취향이 맞아서.
『편집 후기』도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닿지 못했을 책이다.
누가 나에게 말했다.
“언젠가부터 책은 그냥 우리끼리 사 주는 걸로 업계가 돌아가는 것 같아요.”
내가 이 책을 즐겁게 읽었던 건 역시 업계 사람이라서일까. 나는 업계 사람이라기보다는 업계 밖에서 업계 일을 하는 사람인 것 같지만 업계 사람들과 똑같이 간절한 희망을 품고 계속해서 글을 쓰고 책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