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기록 11
예전에는 나 자신이 되고 싶었는데 이제는 나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될 수가 없다. 동시에 가진 것이 없는 나는 매년 다른 사람이 된다.
작년 여름의 나는 올여름을 맞는 나를 상상할 수 없었다. 지금 나는 작년의 내가 꼽아보았던 수많은 가능성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예상에서 벗어나 있다.
지위의 이동, 경제적 불안정, 신체의 손상 같은 상황이 너무 쉽게 나를 지워 버린다. 개선될 수 없어서 그다지 아까울 것 없다고 생각했던 ‘나’는 비록 진실하지 않을지라도 그게 사라졌을 때 내가 아니게 된다.
가진 것이 없어서 내가 아니게 되는 것,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서 내가 아니게 되는 것. (후자의 경우는 많지 않았다) 가진 것이란 가졌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내게 온전하게 속해 있다고 여겼던 것들이 얼마나 나와 상관 없었는지 깨닫게 된다면 깜짝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