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기록 13 : 어슐러 K. 르 귄 『아투안의 무덤』
작가 중 롤모델로 누굴 꼽을 수 있을까. 나는 없다. 롤모델이라는 건(비록 실제와 다를지라도) 그 사람의 어깨에 올라 더 멀리 바라보겠다는 마음가짐일 텐데 일단 그의 어깨로 올라가려면 삶의 조건과 궤적이 비슷해야 한다.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았고 동시에 본받을만한 작가란 누굴까.
이렇게 살면 대단한 작가가 될 수 없다. 내 쪽에서도 대단한 작가는 사양이다. 내 꿈은 프레카리아트(저숙련 저임금 노동자)가 아니면서도 먹고 사는 것이다. ‘잘’ 아니고 ‘그냥’ 먹고 사는 것. 대다수 작가 지망생과 기성 작가가 그런 소박한 삶을 꿈꾸는 것 같다. 그조차 가능성이 많지 않지만.
좋아하는 작가는 수두룩하다. 순서대로 꼽을 수 있다. 가장 위에 있는 첫 번째가 어슐러 K. 르 귄. 솔직히 진입 장벽이 높은 작가다. 『아투안의 무덤』도 100페이지 읽기까지 대여섯 달 걸렸다. 나머지 페이지는 하루 만에 읽었다. 자야 하는데 도무지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읽고 나니 “너무너무 좋아해”라는 팬심이 되살아난다. 역시 믿고 읽는 르 귄.
PS. 르 귄의 문장은 아름다운데 읽기 편리하진 않다. 한 페이지에서 사전으로 확인해야 하는 단어가 네 개나 출몰했을 때 마음이 무참하게 꺾였다.
사위어 가다 : 사그라져 재가 되다.
북데기 : (진짜 생소한 단어였다) 짚이나 풀 따위가 함부로 뒤섞여서 엉클어진 뭉텅이.
옹이진 : 언짢은 감정으로 맺혀 있다.
부싯깃 : 부시를 칠 때 불똥이 박혀서 불이 붙도록 부싯돌에 대는 물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