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기록 14
원래 회화과에 가고 싶었다. 결국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그렇게 되기까지 여러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기억에 남는 건 어머니의 극렬한 반대다.
어머니는 그림 그린답시고 결혼도 안 하고 손에 물감 묻히면서 지하실 같은 데서 사는 꼴은 죽어도 못 본다고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여러 의미를 가진 워딩이었다. 일단 주어가 없었다. 두 번째, 결혼 안 하고 그림 그리는 삶이란 망하기 십상이다. 세 번째, 그런 삶은 혐오스럽다.
차라리 디자인을 전공해서 회사에 다니라고 했다. 어머니 본인이 말끔한 정장을 입는 삶을 선망했던 것 같다. 동시에 나이 들어서도 결혼하지 않고 일하는 여자를 하찮게 여겼다. 어머니는 사회생활을 전혀 하지 않았다.
지금에 이르러 부모라고 해서 반드시 자식을 이해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마찬가지로 자식도 부모를 이해할 의무가 없다) 누군가를 안다는 건, 그리고 아는 걸 넘어서 이해한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오랜 시간 대가 없이 계속 사랑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임을 비로소 깨닫는다.
“아헹가는 마치 사랑을 빠진 사람처럼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좌절하지 않으면서 기뻐하는 마음으로 요가를 수련해야 한다고 했다. 요가에서 강조하는 아브야사(수련)와 바이라기야(포기)는 목표나 의지 없이 사는 것이 아니라 지치지 않는 환희와 열정으로 사는 삶을 의미한다.”
- 『귀를 기울여 나를 듣는다』 16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