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바리 Apr 16. 2020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것의 의미

아프리카인의 전통적인 시간개념: 사사(현재)와 자마니(과거)

오늘은 세월호 참사 6주년이다. "시간이 벌써 많이 흘렀네"하다가, 시간과 기억, 그리고 세월호에 대한 생각으로 흘러가게 되었고, 마침 지금 읽는 책이 <아프리카 종교와 철학>(존 음비티 저, 장용규 발췌 번역)인데 이 책의 첫 부분이 "아프리카인의 시간에 대한 개념"이라 그 책의 내용과 생각이 엮이게 되었다.



<아프리카 종교와 철학>을 쓴 케냐의 신학자 존 음비티는 전통적인 동아프리카인의 관점에서의 시간개념을 소개했다. 전통적인 동아프리카인의 시간개념에서 시간은 일련의 사건들로 구성되는 것이며 따라서 과거와 현재(스와힐리어로는 자마니Zamani와 사사Sasa)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미래에는 아직 구체적인 현상이나 사건이 없기 때문에 현재 일어나는 일이 계속된다는 가정에서만, 혹은 계절과 같이 반복되는 일이 또 반복될 것이라는 가정에서만 잠재적으로 존재한다.


아프리카 종교와 철학. 존 음비티 저. 장용규 발췌 번역. 1999/2012. pp.158.


그 근거로 음비티는 동부 아프리카 언어를 조사했지만, 먼 미래에 대한 개념을 담고 있는 표현과 단어를 찾을 수 없었다는 점과 전통적인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1시~12시 등의 숫자로 표시된 시간 혹은 달력 대신, '해가 뜨는 시간'이라든지, '잠자리에 드는 시간', 혹은 태양이 가장 뜨거운 '태양의 달'과 같이 사건과 현상으로 구성된 개념을 사용한다는 점을 들었다. 이렇듯 사건과 현상 중심의 시간개념을 가진 아프리카인들에게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앞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서 과거로 '뒤로' 움직인다. 어떤 일이 일어나면 그 일은 더는 미래가 아닌 현재가 되고, 결국에는 과거가 되기 때문이다.


미래가 없는 이런 시간관은 과거->미래로 이어지는 직선적 시간관념을 가진 우리에게는 매우 이상하게 들리지만, 인간이 시간에 맞추어 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행위를 통해 시간을 창조하고 생산하는 주체로 서게 한다. 그리고 실용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이러한 시간관은 아프리카인이 게으르다는 오해를 이해로 전환하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한다. 아프리카인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여기저기 앉아서 여유를 부리는 것, 외국인들이 본다면 '시간 낭비'라고 할만한 것이, 사실은 시간을 기다리거나, 시간을 생산하는 과정이라고 이해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 아프리카인들에게는 사사(현재)가 가장 중요하다. 사사는 그냥 우리가 이해하는 현재가 아니고, 훨씬 넓은, 어쩌면 우리가 살아온 삶 전체를 포괄하는 영역으로, 지금과 관련된 경험, 그리고 지금 일어나는 중인 일, 그리고 막 일어나려고 하는 일을 포괄한다. 한편 자마니(과거)는 사사에서 현실화하고 구체화한 사건들이 축적되는 종결의 영역이다. 사사를 사는 사람들이 지나간 사건이나 현상, 그리고 떠나간 사람들을 기억하는 한 자마니는 무한하며, 사람들은 자마니를 통해 사사의 세계를 이해하기에 자마니는 사사의 근원이 된다.


현대적 시간개념에 익숙한 나에게 음비티가 말한 아프리카의 전통적 시간개념은 상당히 이해하기 쉽지 않았고, 현대 아프리카인들에게도 여전히 비슷한 시간개념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사사-자마니의 시간개념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수학적 시간이 아니라 각자가 가진 속도와 리듬으로 구성된 시간에 맞춰 살아가는 방법도 있다는 대안적 방법론과, 미래상을 그려놓고 맞춰나가는 것이 아니라 개인 혹은 집단의 경험이 축적된 단단한 토대 위에서 지금을 살며, 미래와 진보를 만들어나간다는 대안적 접근법으로써 현대인에게(적어도 나에겐)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다시 세월호로 돌아오자면, 여전히 많은 사람이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그 진실은 다 밝혀지지 않았고, 참사 이후 많은 사람의 삶이 바뀌었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는 아직 자마니(과거)도 아닌 사사(현재)다. 나는 세월호가 우리 사회를 바꿔놓지 않았더라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건인 코로나19도 사회적 참사로 이어졌을 것이라 생각한다. 누군가는 이제 세월호가 지겹다고, 덮고 나아갈 때라고 말하지만, 세월호 참사를 덮고 갈 수 있는 곳은 강자만이 살아남는 각자도생의 세상뿐이고, 사사에 발붙이지 않고 쌓아 올린 미래는 와르르 무너져 또 많은 사람이 다치게 된다.


세월호는 너무 아픈 일이기에 이 일을 떠올리는 것은 슬프고 우울하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의 과정들을 통해 우리는 우리 사회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의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더 많은 것이 보일 것이며, 우리가 기억하는 한 그 통찰력은 변화와 진보로 연결될 수 있다. 새삼 세월호 참사를 더 오래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Remember0416

매거진의 이전글 손 씻기와 사회적 거리두기를 끝까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