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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바리 May 16. 2020

코로나19 범유행 2개월의 기록

[피움 23호 기고글] 

코로나19 범유행 2개월, 한 국제개발협력 시민사회 활동가의 기록


(이 글은 제가 회원으로 있는 발전대안 피다의 웹진 피움에 2020년 5월 7일 소개된 글입니다. 글은 제가 썼고, 피다에서 일부 수정/편집 했습니다. 피다의 허락을 받아 브런치에도 전문 게재합니다. 피다 원문링크: http://pida.or.kr/pium/?idx=3803200&bmode=view)


3월 11일,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이하 WHO)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범유행(Pandemic)을 선언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확진자가 없던 에티오피아와 케냐, 르완다 사업소를 한국에서 지원하고 있었던 나의 업무 시간은, 이날을 기점으로 한동안 한국에서 업무가 시작되는 아침시간부터, 동아프리카 사업소들의 하루가 끝나는 자정, 혹은 그 이상까지 길어졌다. 하나하나가 현지 활동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각국 정부의 코로나19 관련 조치와 지침, 국내 파트너들의 다양한 현황 조사와 요청, 불안정한 항공편, 국내외 동료들에게서 들어오는 여러 정보 속에서, 나와 현지 사업소 동료들은 매일같이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나가야 했다. 


사업소 내·외부에 손 씻기 시설을 설치하고, 단체 메신저 채팅방을 만들어서 WHO와 한국의 코로나19 대응 지침과 경험, 그리고 새로운 소식을 공유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각국이 첫 확진자를 발표한 이후에는 격일 재택근무를 도입하고 모임이나 교육같이 사람들이 모이는 활동은 잠정 연기했으며, 두 달여가 지난 지금은 3개국 사업소의 모든 직원이 재택근무를 하고, 필요할 때만 현장과 사무실을 방문하며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지원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 범유행 선언 직후, 르완다 사업소 입구에 설치한 간이 손씻기 시설(왼쪽), 에티오피아 사업소 입구에 설치한 간이 손씻기 시설(오른쪽)

이제는 각 국가와 각 사업소에도 새로운 체제가 꽤 자리 잡았고, 당장 눈앞의 불확실성은 많이 줄어든 덕분에 대체로 잘 자고 잘 지내지만, 3월 중순 즈음부터 한동안은 매일 밤 현지에서 전해지는 중요한 정보들에 잠을 설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무력감에 허우적거렸다. 그 허우적거림의 나날 중 특히 기억에 남는 날은 3월 19일이다. 한국 시각으로는 19일 새벽 2-3시쯤, 르완다 현지 시각으로는 18일 저녁에 르완다 정부에서 20일을 마지막으로 르완다를 오가는 모든 민간 여객기의 운항을 금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바람에 르완다 현지에 머물고 있던 내가 속한 기관의 파견 단원님을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그 당일 출국하시게 해야만 했다. 


황망해하는 단원님께 업무 인수인계와 신변정리와 관련된 사안들을 전하며 정신 바짝 차리고 빠르게 처리하셔야 한다고 재촉해야만 하는 마음이 무거웠다. 그리고 1년간 함께 일했던 동료가 오늘 당장 떠난다는 사실을 재택근무하고 있는 르완다인 동료들에게 알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르완다 사업소 매니저님의 전화번호를 누르면서, 사업소 직원들의 단체 채팅방에 올릴 글을 타이핑하면서, 어떻게 말해야 우리가 사업소를 버린 게 아니라는 것을 전할 수 있을지, 오늘의 일은 르완다 내 코로나19 전망과 무관하게 내려진 결정이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을지,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함께할 것이라는 것을 전할 수 있을지 한참을 고민했다. 단원님이 출국하던 날, 르완다는 코로나19 첫 확진자 발표로부터 6일쯤 지난 시점이었고 확진자 수는 11명이었다.


모두가 우리 기관의 단원님처럼 하루아침에 귀국하게 된 것은 아니지만, 3월 중순부터 말까지, World Friends Korea(이하 WFK) NGO 봉사단을 포함해 전 세계의 WFK 봉사단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북반구 세계를 흔든 대재난의 그림자가 남반구에도 살짝 비치기 시작하자마자 현장과 사람들, 간혹 반려동물을 뒤로하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야 했던 봉사단원의 마음은 어땠을까? 활동 임기를 다 채운 뒤 찾아오는 예정된 이별을 하기도 쉽지 않은데, 이렇게도 갑작스러운 이별이라니, 그 마음을 상상만 해도 속상하다. 그리고 이제 이들은 국내 대기 기한 만료와 봉사단 계약 종료라는 또 하나의 이별을 앞두고 있다. 


예전에 동료들과 국제개발협력 시민사회 활동가의 소위 말하는 '전문성' 혹은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이 ‘연결과 연대’라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국제개발협력 시민사회 활동가는 사람들이 부대끼는 곳에 현장을 두고, 공감과 인권감수성이라는 접근법을 가지고 사람과 사람, 지역과 지역, 지역과 자원, 기술/지식과 활동, 분야와 분야를 연결하며, 사람과 연대하는 일을 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봉사단원을 포함한 수많은 파견 활동가들이 귀국한 일, 그리고 그중 많은 이들이 계약 종료를 앞두게 된 지금의 상황은 쓰라리다. 파견 활동가 한 명 한 명의 존재가, 현장에서 만들어 온 많은 관계가 우리 모두에게 의미가 크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 가까이에 코로나19로 아픔을 겪는 동료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계속 인연을 이어 나갈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WFK 봉사단원을 포함하여 꽤 많은 활동가들이 귀국했지만, 해외 현장에는 여전히 활동가들이 존재한다. 끝끝내 잔류를 결심한 파견 활동가들이 있고, 그보다 더 많은 현지 출신 활동가들이 있다. 나는 코로나19를 계기로 여느 때보다도 더 자주 현장의 동료들과 소통하며 지내게 되었는데, 그 중 한 분이 에티오피아에서 NGO를 설립하여 아디스아바바 외곽의 판자촌 주민들을 지원하는 한인 선교사님이다. 그분은 마을에 질병보다도 더 빠르게 퍼지는 두려움이 걱정된다고 하시면서도 오늘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계신다. 당장 에티오피아에 지원할 기회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알아는 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난달 중순쯤, 선교사님께 어떤 협력이 가능할지를 문의한 적이 있다. 선교사님은 몇 가지 지원 요청과 함께 잊지 않아 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당장 도움 드린 것도 없는데 잊지 않아줘서 고맙다니! 올라가는 길도 험하고 바람도 안개도 참 많은 언덕 위 마을에서 사람들과 서 계실 선교사님 부부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찡했다.


한편, 통신환경이 꽤 좋은 르완다 동료들과는 범유행 선언 당시부터 메신저를 통해 코로나19 국면에서도 사업소를 운영하는 방안에 대해서, 서로의 일상이나 마음에 관해서 이야기해왔다. 최근에는 정부의 각종 이동 제한 조치와 일용직 일자리 감소로 생계가 곤란해질 사람들에게 식료품이나 위생용품 지원을 하는 방안을 토의하면서, 우리가 코로나19 확산 이전에도 해온 지역 공동체와의 연대를 계속해서 잘해 나가기 위한 고민과 소통도 이어가고 있다. 우리와 오랜 기간 함께해온 주민조직들도 저축해 둔 돈을 필요한 사람에게 빌려주거나, 수확한 농산물을 팔지 않고 공동체 내부에서 나누거나, 폭우로 집이 무너진 이웃을 위해 기부금을 모으는 등 다양한 연대 활동을 이어가며 각자가 서 있는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국제’개발협력 활동가에게 ‘국제’적 이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매우 큰 제약이지만, 국내에서도 활동은 계속되고 있다. 많은 사람이 현지 현장과 온라인으로 소통하는 것에 익숙해져 가고 있고, 국내 활동가들의 정보 교류와 학습을 위한 웨비나(Web+Seminar, Webinar)도 다양한 주제로 열리고 있다. 코로나19 국면에서도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어떻게 나눌 수 있을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고, 귀국한 봉사단원들은 #VolunteeringatHome 캠페인에 참여하며 현장과 그곳의 친구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있다. 르완다에서 소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한 활동가는 ‘한국에 발 묶인 김에’ 서울에서 팝업 스토어를 연다.


나는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들의 멋짐에 감탄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모든 게 불확실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확실한 것이 있다면, 그건 우리 서로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아닐까?”, “우리는 백신이나 집단면역처럼 불확실한 것이 아니라 바로 여기에 미래를 걸어야 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벌써 너무 많은 사람이 코로나19 이후의 세계를 다양한 방향으로 전망하고 있고, 그런 전망에 대해 읽다 보면 결국 각자의 희망 사항을 이야기한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는 어느 날 갑자기 우리에게 주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자신이 선 자리에서 가꾸는 현재가 미래, 즉 코로나19 이후의 모습을 만든다. 만약 우리가 원하는 세계가 서로를 더 소중히 여기는 사회이기를 원한다면 연대의 씨앗은 지금 뿌려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앞서 말한 ‘각자 선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전하고 싶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과 연결하고 연대하며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고 싶다는 생각과 다짐을 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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