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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바리 Jun 18. 2020

은쿠룬지자 시대의 막이 내리다

2020 부룬디 총선 (2) 총선 결과, 그리고 은쿠룬지자의 사망

6월 9일, 부룬디 정부는 성명을 통해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지난 6일 병원에 입원한 피에르 은쿠룬지자(Pierre Nkurunziza) 대통령이 8일 월요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워낙 건강한 이미지로 각종 언론에 비춰졌던 은쿠룬지자 대통령이었기에 그의 사망은 모두에게 갑작스러웠다. 5월 말 치료 목적으로 케냐에 가있던 영부인 데니스 부추미 은쿠룬지자(Denise Bucumi Nkurunziza)가 케냐에서 코로나19 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문이 한창 돌던 상황이라 은쿠룬지자 대통령 또한 코로나19로 사망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까지도 나오고 있다.


6월 6일, 배구 대회를 참관하는 은쿠룬지자, 이때만 해도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고 전해진다. Photo: Twitte / @RTNB


여느 때 같았으면 15년을 집권한 은쿠룬지자 대통령의 공백이 상당했겠지만, 은쿠룬지자 대통령 사망 이후 약 10여 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부룬디에서는 분쟁 소식이 들리지 않고 있다. 이는 이미 지난달 은쿠룬지자 대통령이 불출마한 대선에서 여당의 에바리스테 은다이쉬미예(Evariste Ndayishimiye) 후보가 당선되었고, 부룬디의 헌법재판소도 이미 대통령 선거 당선자가 있기 때문에 헌법에서 정한 대통령 사망 시 승계 1순위인 국회의장 대신 은다이쉬미예 당선자가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취임해야 한다고 판결한 상황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판결에 따라 은다이쉬미예 당선자는 6월 18일, 오늘 부룬디 대통령에 취임했다.


대통령 취임 선서 중인 은다이쉬미예. Photo: Twitter / @RTNB



축구광 대통령이 된 체육교사


은쿠룬지자 대통령은 부룬디가 1962년 벨기에의 식민통치에서 독립한 직후인 1964년 부룬디의 수도였던 부줌부라(Bujumbura-원래는 부줌부라가 부룬디의 수도였으나, 2018년 은쿠룬지자 대통령이 기테가를 정치적 수도로, 부줌부라를 경제적 수도로 지정하겠다고 발표했고, 이후 국회에서 승인했다)에서 후투민족 출신의 정치인 아버지와 투치민족 출신의 간호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은고지(Ngozi) 지방에서 자랐다. 


은쿠룬지자는 어릴 때부터 축구를 비롯한 운동에 관심이 많아 부룬디 대학교(University of Burundi)의 체육교육학과에 진학했고, 1990년 졸업한 이후에는 학교와 대학교, 그리고 사관학교에서 체육을 가르쳤다. 그의 체육 사랑은 그가 정치계에 진출한 이후에도 심지어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계속되었고, 그가 창단한 팀 할렐루야 FC와 함께 전국을 누비며 축구를 했다. 한 번은 그에게 어느 지역 연고 팀이 거친 태클을 반복해서 했다는 이유로 해당 지역 공무원 2명이 '대통령에 대한 음모'를 꾸몄다는 이유로 체포된 일도 있다. (관련 기사)


사이클부터 축구까지, 스포츠 마니아 은쿠룬지자 대통령. Photo: Africanews


은쿠룬지자는 1972년 후투족에 대한 제노사이드(집단학살) 와중에 아버지를 잃었지만 1993년 부룬디 내전이 발발하여 후투 민족과 투치 민족의 분쟁이 심화되기 전까지는 정치활동에 몸담지 않았다. 하지만 내전이 발발하고 2년 뒤, 부룬디 대학교 내 후투 민족을 타깃으로 하는 공격을 받은 은쿠룬지자는 그 직후 후투 반군인 CNDD-FDD(The National Council for the Defense of Democracy–Forces for the Defense of Democracy,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전국 의회-민주주의 방위군)에 가담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사형선고와 교전 중 사망 위기 등 여러 위기를 겪은 은쿠룬지자는 2000년 CNDD-FDD의 대표가 되었고, 2003년 CNDD-FDD를 정식 정당으로 인정받도록 하는 협상을 이끌었으며, 간선으로 치러진 2004년 대선에는 단독으로 출마하여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체육교사에서 축구를 즐기는 대통령이 된 은쿠룬지자. Photo: AFP



대통령을 오래 하고 싶었던 사람, 대통령으로 잠들다


2005년 대통령에 취임한 은쿠룬지자에겐 오랜 내전으로 인해 분열된 부룬디 사회를 통합하고 무너진 경제를 살려야 하는 무거운 과제가 주어졌다. 그는 취임 직후 1972년부터 존재하던 야간 통행금지를 폐지했고, 2007년에는 아프리카연합의 소말리아 평화유지군 작전에 병력을 파병하기도 하는 등 초반에는 꽤 긍정적인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2010년 선거에서부터 문제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선거 전부터 전직 군인과 청년 당원들을 중심으로 여야 당원 및 지지자의 분란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고, 가장 강력한 야권 후보로 꼽히던 민족해방군(National Liberation Forces, FNL)의 아가손 르와사(Agathon Rwasa) 후보는 정부가 선거를 조작하려 한다며 후보에서 사퇴했다. 결국 은쿠룬지자 대통령이 단독 후보로 나선 선거는 전날부터 두건의 수류탄 공격과 선거 당일에는 세 건의 수류탄 공격이 일어나 최소 8명의 사람이 사망하는 등 공포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고, 은쿠룬지자 대통령이 91%의 득표로 당선되었다. 


은쿠룬지자와 부룬디 시민 사이의 갈등은 2015년 극에 달했다. 그의 두 번째 대통령 임기가 끝나가던 2015년, 은쿠룬지자 대통령은 세 번째 대통령 출마 의사를 밝혔다. 당시 부룬디 현행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3선을 할 수 없었지만, 그는 첫 번째 선거가 간선이었으므로 셈하지 않는다는 기적의 논리를 펼치며 선거에 임했고, 이는 대규모 민중시위와 쿠데타 시도 등을 초래하여 약 40만 명이 국외로 도피하게 결과를 낳았다. 이렇게 혼란한 와중에서도 은쿠룬지자는 3선에 성공했지만, 그의 헌법 위반과 인권 침해로 국제사회는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원조자금이 끊기고 일부 국가는 경제제재 조치까지 취하는 과정에서 부룬디 사회와 경제는 혼란을 겪었다. 


3 선 같은 2선을 해낸 은쿠룬지자는, 2020년까지의 임기가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2018년 개헌을 강행, 국민투표에서 79%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 임기를 7년으로 늘리고 재선까지만 가능하도록 하는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이 헌법은 현직 대통령인 은쿠룬지자에게는 다소 특이하게 적용되어 그가 새로운 개정 헌법에 따라 두 번 더 대통령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즉 은쿠룬지자 대통령은 향후 선거에서 계속 승리한다면 2034년까지도 대통령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올해 대선을 앞두고 그는 대통령 선거에 나서는 대신 "애국심의 최고 지도자 (Supreme Guide for Patriotism)"라는 새로운 직책을 만들고 스스로 그 자리에 취임하기로 하는 흥미로운 결정을 내렸는데, 그 결정의 배경은 명확하지 않다. 


그가 불출마한 선거에서 여당 은다이쉬미예 후보가 당선되면서 은쿠룬지자 대통령은 8월에 15년간의 긴긴 대통령 생활을 마치고 "애국심의 최고 지도자"라는 이름만으로는 무엇을 하는 직책인지 알 수 없는 일을 맡을 뻔했지만, 대통령 임기가 끝나기 전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결국 대통령 직을 내려놓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 



대통령 선거 결과와 은쿠룬지자의 '후계자'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우려와 선거 부정, 정치적 분쟁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부룬디에서는 5월 20일에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강행되었다. 

(관련 글: https://brunch.co.kr/@theafricanist/109)


투표율 87.71%를 기록한 대통령 선거 결과의 결과는 여당 은다이쉬미예 후보가 68.7%를, 제1야당 CNL(National Council for Liberty, 자유를 위한 민족위원회) 후보인 아가손 르과사(Agathon Rwasa) 후보가 24.18%를 득표하여 별도의 결선 투표 없이 은다이쉬미예 후보가 당선되었다. 비록 야당 르과사 후보가 당선되지 않았지만, 앞선 2015년 대선에서 얻은 표보다는 약 5% 정도 더 많은 지지를 얻었다.


대통령 선거 결과. 출처: 부룬디 선관위 홈페이지


은다이쉬미예 대통령 당선자. Photo: Twitter/@GeneralNeva


선거에는 외부 선거 감시단이 전혀 참석하지 않았는데, 정부가 선거 감시단 또한 입국 시 14일 동안 격리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선거 직후 CNL의 르와사 후보는 선거에 부정이 있었다며 헌법재판소에 선거 결과를 무효로 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르와사 후보는 선거 과정에서 사망한 사람의 신분증으로 투표를 한 사례가 있고, 선거위원회에 등록되지 않은 선거인 명부가 사용되었으며, 투표함이 이미 채워져 있는 경우도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헌법재판소는 투표와 개표 과정에서 위법적 요소를 찾지 못했다며 선거 결과를 확정했다. 


한편 국회의원선거에서는 CNDD-FDD가 86석을, CNL이 32석을, UPRONA 가 3석을 가지고 갔고, 소수민족인 Twa에게 3석이 추가로 보장되었다. 부룬디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재미있었던 점은 민족별로 할당된 의석수가 정해져 있었다는 점인데, 후투 민족에게 60%. 투치 민족에게 40%가 각각 할당되어 있고, 이번 선거에서도 그 결과 각각 72석과 48석이 배분되었다. 정치에 있어서 민족을 언급하는 것이 금기시되어있는 이웃나라 르완다와는 사뭇 다른 점이다.


오늘 대통령에 취임한 은다이쉬미예는 "Ubumwe", "Ibikorwa", "Amajambere"라는 단어와 호랑이 얼굴이 크게 박힌 부룬디 정부의 문장을 높이 들어 올렸다. 해당 단어들은 키룬디(Kirundi)어로 각각 "단결", "노동", "진보"를 의미한다. 은쿠룬지자 이후의 부룬디를 앞장서 열어나가야 할 은다이쉬미예 대통령이 어떻게 부룬디 사회의 단결과 진보를 이끌어낼지, 앞으로가 기대된다.


취임식에서 부룬디 정부의 문장을 들어 올리는 은다이쉬미예. Photo: Twitter / @RTN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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