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케냐 대선·총선 (1)
지난 8월 9일, 케냐에서는 대통령, 국회의원, 지역의원, 주지사를 뽑는 전국 선거가 열렸고, 투표 마감 직후부터 시작된 개표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원래는 선거 전부터 각 당의 후보자도 소개하고 당내 경선이나 본선거 유세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지켜보며 이야기해보고 싶었는데, 어영부영하다 보니 벌써 투표날이 되어있어서 이제야 틈틈이 케냐 뉴스를 챙겨보고 있다.
케냐 언론이 일을 열심히 하기도 하고, 온라인으로 볼 수 있는 채널도 많아져서 서울에서도 케냐 소식을 실시간으로 챙겨볼 수 있어 정말 좋다. 혼자 보기엔 흥미로운 내용이 많고, 시간이 지나면 또 금방 날아가버릴 것 같은 순간과 정보들이 많아 조금 늦었지만 더 늦기 전에 투표, 개표, 결과 발표, 취임까지를 따라가며 글을 써보려 한다. 오늘은 그 첫 편으로 아직도 결과가 나오지 않은 투표 개표 이모저모를 준비해보았다.
투표 개표 이야기를 하기 전에 후보자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것은 총 4명이지만 처음부터 모든 사람들의 관심은 라일라 오딩가(Raila Odinga)와 윌리암 루토(William Ruto)에 몰려있었다.
라일라 오딩가는 대선에 5번이나 도전한 야당 정치인으로, 2대 대통령 다니엘 아랍 모이(Daniel Arap Moi)가 당선된 1997년 대선에 처음 출마해 3번째로 많은 표를 얻었고, 그 이후 2007년, 2013년, 2017년 선거에 계속 출마해 3대 대통령 므와이 키바키(Mwai Kibaki)와 4대이자 현직 대통령 우후루 케냐타(Uhuru Kenyatta)에게 각각 패했다. 77세의 나이에도 또다시 자신의 당인 오렌지 민주 운동(Orange Democratic Movement, ODM)을 필두로 하는 정당 연합인 통합의 약속(Azimio La Umoja, Azimio)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어 5번째 대선 도전을 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는 그와 오랫동안 경쟁했던 우후루 케냐타 대통령과 여당 희년당(Jubilee Party)이 지지를 선언하며 뜻밖에 여권 후보가 되었다.
윌리암 루토는 현직 부통령이지만 2021년 여당 희년당을 탈당하고 통합민주연대(United Democratic Alliance, UDA)에 입당한 뒤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어 야권 후보로 선거에 나섰다. 55세인 루토 후보는 국회의원과 내무부 장관, 농업부 장관, 교육부 장관을 두루 거치며 정치 경력을 쌓아왔다. 두 사람과 관련해서는 이들의 배경, 선거 공약, 부정부패 의혹, 과거 선거 후 폭력 사태 주동 의혹 등 더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자세한 것은 당선자가 나오면 그 당선자를 중심으로 다시 한번 정리해보겠다.
다시 개표로 돌아오면 8월 9일 밤부터 개표가 시작되었으니, 날짜로는 개표 2일 차인 10일, 케냐 선관위 위원장은 일일 브리핑에서 현지시각으로 8월 10일 오후 2시 30분 기준 전체 투표소 97.4%에서 선거 결과보고를 전송했으나 아직 선거구별 검증이 진행 중이고, 선거구별 검증 이후에는 중앙 집계소에서 다시 한번 최종 검증을 한 뒤 선거 결과를 발표할 것이라며 시민들이 차분히 기다려 줄 것을 요청했다.
* 독립적 선거 위원회(Independent Electoral and Boundaries Commission): 케냐에서 선거구 획정부터 유권자 교육, 후보자 등록, 선거 운영 및 감시까지 사실상 선거의 전 과정을 담당하는 헌법기관으로 보통 약자인 IEBC로 표기하며, 이 글에서는 편의상 '선관위'라 부르겠다.
투표소별 개표는 거의 끝났지만 두 단계의 검표가 남았고, 선관위원장이 최대한 빨리 발표하긴 하겠지만 선관위에겐 7일이란 시간(케냐 헌법은 선관위가 선거 후 7일 이내에 결과를 발표하도록 되어있다)이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보니 빠른 시일 내에 공식 결과가 나오진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이미 선관위 홈페이지(https://www.iebc.or.ke/)에 모든 투표소의 개표 결과지 사본(각 선거구 선거위원이 원본 문서를 중안 집계소로 가지고 와서 대조하는 절차가 남아있긴 하다)이 업로드되어있어 각 언론사가 이 자료를 활용하여 각 후보별 득표 현황을 발표하고 있다.
케냐 각 투표소에서 선거 위원과 각 후보별 참관인들이 확인하고 서명한 개표 결과지, 34A라 불리는 문서는 각 선거구로 보내지고, 각 선거구에서는 이를 검증하고 취합하여 34B라는 문서를 작성한 뒤 중앙 집계소로 보낸다. 중앙 집계소에서는 이를 다시 검증하고 취합하여 34C라는 문서를 작성하고, 최종 검증을 마친 뒤 34D라는 문서 형식을 통해 최종 결과를 발표한다. 국회의원 등의 총선 개표도 문서 양식 번호만 다를 뿐 같은 절차로 진행된다.
케냐는 과거 선거에서 부정투표 의혹 제기와 유력 후보자 지지자들 사이의 폭력적인 충돌 등으로 많은 사람들의 희생된 역사가 있다 보니 선거와 개표 각 과정을 투명하게 운영하려고 노력하는 듯하다. (케냐 선거와 선거 후 폭력 사태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하겠다) 아참, 그리고 개표는 수개표로 진행되며, 아래 영상 캡쳐처럼 선거위원들이 참관인들에게 각 표를 보여주며 결과를 발표하고, 득표자별로 정리한 뒤 숫자를 세는 식으로 진행된다.
선관위는 이렇게 투표소별 개표 결과는 공개하지만, 이를 취합해서 후보자별 득표 현황은 발표하지 않다 보니 각 언론사들은 공개된 투표소별 개표 결과를 자체 취합하여 후보자별 득표 현황을 발표하고 있다. 그리고 각 언론사는 각자 데이터를 입력하는데, 먼저 입력하는 투표소 데이터가 달라 방송사별로 1위 후보가 달라 어느 후보가 우세한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개표 방송 중 유튜브 기준 가장 많은 시청자(평균 10만 명)가 보고 있는 Citizen TV Kenya의 경우 Azimio당의 라일라 오딩가가 앞서는 것으로 나오고 있지만, Nation의 NTV(평균 2만여 명 시청)에서는 UDA의 윌리암 루토가 앞서는 것으로 나온다. 앞서 말했듯 각 언론사별로 먼저 취합하는 개표소 결과가 달라서 다른 결과가 나오는 상황인데, 일단 입력된 데이터는 NTV가 더 많긴 하지만 어느 선거구를 더 많이 집계했는지 알 수가 없어 어느 방송사의 현황이 더 믿을만한지는 알기가 어렵다.
그리고 케냐 대선은 단순히 표를 많이 받는 후보가 당선되는 게 아니라 몇 가지 조건을 더 충족해야 하는데, 헌법에 명시된 그 조건은 아래와 같다.
전체 투표의 절반 이상을 득표할 것
전국 카운티 중 절반 이상의 카운티에서 25% 이상의 득표를 할 것
다시 말하자면 라일라 오딩가나 윌리암 루토 후보는 개표 결과 1위를 기록해야 할 뿐 아니라 득표율 50%를 넘겨야 하고, 24개 이상의 카운티에서 25% 이상의 표를 얻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개표 현황으로 보았을 때 1위 후보가 두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이 어려워 보이진 않는다. 만약, 첫 번째 선거에서 이를 모두 충족하는 후보가 나오지 않으면 30일 이내 다시 선거를 해서 1위와 2위 후보의 결선 투표를 진행하여 최종 당선자를 정한다. (자세한 내용은 케냐 헌법 138조 Procedure at Presidential Election 참조)
첫 번째 선거나 결선 투표에서 당선자가 정해져도 당선이 완전히 확정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통령 선거 당선자가 발표된 날로부터 7일 이내에 대법원을 통해 선거 결과에 대한 이의를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에 이의 제기가 접수되면 법원은 14일 이내에 판결을 내리고, 만약 이의가 받아들여지면 60일 이내에 다시 선거가 열리게 된다. 실제로 2017년 선거에서 라일라 오딩가 후보는 우후루 케냐타 후보에게 패한 직후 대법원에 이의를 제기했고, 대법원은 이를 인용해 선거 결과를 무효화 한 바 있다. 하지만 오딩가 후보는 선관위의 개혁 없이는 새 선거가 의미 없다며 재선거를 보이콧했고, 결국 케냐타 대통령이 다시 당선되었다.
(관련 글: https://afribrary.blogspot.com/2018/01/blog-post_31.html)
이렇게 법정 다툼으로 가거나 단순히 선거 결과에 불복한다고 발표하는 정도는 그동안의 케냐 선거 역사에 비추어볼 때 괜찮은 수순인데, 가장 걱정되는 것은 천여 명의 생명을 앗아간 2007년 선거 후 폭력사태와 같은 대규모 폭력사태다. 현재 인터넷으로 확인 가능한 언론 보도에서는 몇몇 투표소에서 결과에 항의하는 시민이나 참관인들이 소리를 치거나 몸싸움을 벌이는 등 소동이 있었고, 한 선거위원이 선거 결과를 조작하려 한다는 혐의로 경찰에 연행되긴 했지만, 크게 걱정할만한 징조는 보이지 않고 지금까지의 선거 과정도 비교적 평화적이라고 들었지만 공식 선거 결과가 발표되거나 언론사에서 유력 당선자를 발표한 이후의 상황은 장담할 수 없기에 상황은 조금 더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
이번 선거는 대통령뿐 아니라 국회의원, 지방의원, 각 카운티 주지사도 뽑는데, 총선 당선자 소식도 언론에서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 몇 시간 전에는 블랙팬서(와칸다 포에버!)와 어스 등의 영화에서 멋진 연기를 보여준 루피타 뇽오(Lupita Nyong'o)의 아버지 피터 아냥 뇽오(Peter Anyang' Nyong'o)가 키수무 카운티의 주지사로 당선되었다는 소식이 올라왔고, 루피타 뇽오도 인스타그램을 통해 아버지의 당선을 축하하고 키수무 카운티 시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케냐 언론사들의 실시간 개표 방송은 아래 링크에서 볼 수 있다. 대부분 스와힐리어와 영어를 오가며 진행되는데 그래프나 사진이 많아서 큰 내용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Citizen TV Kenya: https://youtu.be/r-jQPznvkrY
NTV Kenya: https://youtu.be/r_3Ti7ifEOs
KTN Kenya: https://youtu.be/sGAf2OpnOb4
오늘은 개표 이모저모를 살펴봤는데, 당선자가 발표되거나 당선자 윤곽이 나오면 당선자와 공약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여력이 된다면 케냐의 정치 지형이나 선거 역사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겠다.
#KenyaDecides #KenyaChoi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