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아 작가의 2021 오늘이 좋아지는 일력
2019년 12월 31일, 부산 집에 가다가 영도 손목서가에 잠시 들렀다. 서점이자 카페인 손목서가에서 바다를 보며 따듯한 글루바인(=뱅쇼, 뮬드와인)을 한잔 마셨고, 2019년은 그 정도 했으면 잘했다 생각했다.
당시 써두었던 글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글루바인을 마시고, 나에게 주는 송년 선물로 책을 한 권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 정도면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차분하게 마무리하기 아주 좋은 조합이라고 생각"했고, 고민 끝에 얇고 작아서 겨울 외투 주머니에 들어가는 가벼운 (하지만 주제는 가볍지 않았던) 책을 한 권 집었다. 하지만 그 책 아직도 안 읽었다.
그렇게 1년 동안 읽지 않을 책을 계산하고 가게 문을 나서려는데 마지막 장만 남은 일력이 보였다. 하루하루 뜯어나가다가 한 장만 남은 일력이 정말 연말 같아서 나도 일력을 하나 장만해야지 했는데, 새해가 시작해버린 다음에 일력을 사는 것은 좀 마음에 들지 않아서 한참이 지나서야 2021년 일력을 하나 샀고 새해에 드디어 개시했다.
올해는 어디 내놓은 글 말고 나를 위한 일기 같은걸 좀 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뜯어낸 일력 뒷장이 딱이었다. 종이가 작아서 길게 쓸 것도 없고, 이면지 느낌이라 편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에 일력을 받았을 땐 디자인 실수로 서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근데 설명서를 따라 뒷판을 접으니 신기하게 균형이 맞았다. 지금은 앞부분이 무거워서 조금 불안한데, 날이 갈수록 균형은 더 잘 맞을 것이다.
일력의 균형을 맞추고 나서인지, 방금 뜯어낸 1월 1일의 뒷장에는 균형과 건강을 생각하는 한 해를 보내고 싶다고 썼다. 이것도 날이 갈수록 더 좋아지면 좋겠다.
일력이 없어도 하루는 지나고, 오늘 완료하지 못한 일들과 함께 오늘을 닮은 내일이 시작되지만, 일력을 사용하면서는 적어도 오늘과 내일을 내 손으로 끝내고 시작하게 됩니다 - 임진아 작가, 오늘이 좋아지는 일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