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바리 May 22. 2021

후원자님, 왜 '페미'하면 안 되나요?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의 '페미' 검열과 어린이재단의 사과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인 에펨코리아와 디씨인사이드 등을 중심으로 제기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페미니즘 "논란"에 대해 재단은 5월 21일, "일부 사이트 게시판에 게시된 글에 대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입장"(전문)이란 제목의 입장문을 게재하며, 해당 행사는 재단과 직접 관련이 없으며 재단은 "편향성"없이 사업을 수행해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페미-수다' 영어책 모임에서 함께 읽을 책으로 선정했던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책.


 사건의 발단은 남초사이트 에펨코리아의  유저가 어제인 20, 2018 '페미-수다'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영어책 모임과 같은 해 페미니즘 교육 관련 부스를 어린이재단이 후원했다며 '페미니즘' 단체라는 의혹을 제기한 데서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어린이재단 후원 중단 인증, 후원금 부정사용 의혹 제기 등이 이어졌고, 이에 대해 어린이재단이 입장문을 내놓으며 페미니즘과 거리두기를  것이다.


입장문의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이 발췌할 수 있을 것 같다.


1. 해당 부스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무관하고 재단이 행사에서 함께한 기관들과도 전혀 관련이 없음을 밝힙니다.


2.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모든 사업은 UN아동권리협약을 기준으로 하여 진행하고 있으며, 정치·종교·인종·성별에 따른 편향성을 가지지 않고 아동의 건강한 성장을 돕기 위해 사업을 수행해나가고 있습니다.


3. 앞으로도 스스로를 점검하며 투명하게 복지사업을 운영하여 더욱 신뢰받을 수 있는 기관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평소엔 불법 촬영 사진이나 여성 아이돌의 몸매를 평가하며 낄낄거리는 성차별주의자들의 '문제' 제기에 규모로는 국내 비영리단체 10위안에 들고, 국내외에서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어린이재단이 하루 이틀 만에 헐레벌떡 입장문을 내놓는 것을 보며, 어린이재단이 두고두고 회자될 실수를 하는구나, 그리고 어린이재단의 거버넌스에 문제가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어린이재단뿐 아니라 다른 비영리단체에서도 얼마든지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무서웠다. 내가 몸담은 곳에 이런 일이 생긴다면 다를 수 있을까?


나는 온라인 남초 사이트의 '페미 사냥'은 무시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와 비슷한 일은 많은 단체와 단체의 활동가들이 겪어왔고, 앞으로도 겪을 문제이기에 어린이재단의 입장문을 조금 더 살펴보았고, 크게 세 가지 문제를 찾았다.


1. 입장문에서 재단은 "어린이재단의 모든 사업은 UN아동권리협약을 기준으로 하여 진행하고 있"어 "편향성"을 가지지 않고 일한다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협약의 내용을 나아가 국제인권법에서의 평등이 가지는 의미를 심각하게 잘못 해석한 것이다.  UN아동권리협약의 2조는 다음과 같이 정하고 있다. "협약의 당사국(이후‘당사국’이라 한다)은 아동이나 그 부모, 후견인의 인종, 피부색, 성별, 언어, 종교, 정치적 의견, 민족적∙인종적∙사회적 출신, 재산, 장애여부, 태생, 신분 등의 차별 없이 이 협약에 규정된 권리를 존중하고, 모든 아동에게 이를 보장해야 한다." 협약 2조는 성별을 포함한 다양한 조건에 대한 비차별을 말하는 것이지, 모두에게 똑같이("편향성"없이) 대할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동과 성인 모두를 포함한 여성에 대한 차별이 만연한 세계에서 성별에 따른 차별 없이 권리를 존중하고 보장하기 위해선 여성이 받는 차별과 차별적 구조에 주목하는 페미니스트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옹호활동을 주요 활동 중 하나로 내세우는 어린이재단에서 형식적 평등과 실질적 평등의 구분조차 하지 못하는 입장문이 나오는 것을 보고 있자니 재단에 몸담은 수많은 활동가들의 고통이 느껴진다. 단체의 입장과 활동가들의 입장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단체가 이럴 때 실무자는 어떻게 해야할까?


2. 입장문에서 재단은 "앞으로도 스스로를 점검하며 투명하게 복지사업을 운영"하겠다고 했는데, 앞으로도 이렇게 남초 사이트에서 "문제" 제기를 하면 헐레벌떡 해명하고, 모든 사업에서 '페미니즘'을 지우겠다는 의미로 들린다. 페미니즘 없이 어떻게 여아의 권리를 보호하려 하는지, 앞으로 얼마나 더 자기 검열하게 될 것인지 걱정이다. 그리고 이번 일은 선례가 되어 다른 기관들의 선택에도 분명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3. 마지막은 후원자를 바라보는 방식이다. 이 부분은 특히 어린이재단만의 문제는 아니다. 어떤 시민사회단체가 후원자를 단순히 돈을 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번 일과 같은 대처가 나온다고 생각한다. 돈 내는 사람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무엇을 지향하든 간에 기분이 상해서 후원을 중단하면 안 되므로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에는 침묵하고 예쁜 사진과 둥글둥글한 이야기로 구성된 사업 소식을, 연차보고서를 발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제주도에 예멘 난민들이 왔을 때 국내 여론이 좋지 않자 해외에서는 난민을 지원하는데 열성이던 대다수 국제개발협력 단체가 침묵했고, 코로나19 범유행이 시작했을 때 국내 상황도 좋지 않은데 해외를 지원하자는 모금 캠페인을 하면 역풍을 맞는다며 몸을 사렸던 것 아닐까? 그저 후원자는 단순한 존재이며 돈만 내면 되는 존재이기 때문에? 만약 후원자를 함께 연대하는 주체로, 파트너로, 시민사회단체의 주인으로 생각했다면 분명 다른 대응이 있었을 것이고, 이러한 접근법이 지속가능한 시민사회단체를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더 많은 후원금을 만들어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히 온라인을 중심으로 페미니즘 검열이 심해지고 있다. 온라인에서 남성들은 페미니즘을 "남성혐오"로 규정하고 정의의 사도인양 날뛰고, 언론과 기업, 이제는 시민사회단체까지도 그 장단에 맞추어 호들갑을 떨며 '논란'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여성혐오의 남성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남성혐오"와 같은 뜻이 될 수 없다. "남성혐오"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성이 남성성으로 인한 차별, 성폭력, 성적대상화를 겪을 확률은 극히 낮을뿐더러, 그 사건이 사회구조적인 원인으로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0%에 수렴한다. "남성혐오"라는 상상의 개념을 들어내고 나면, 이 현상의 본질이 보인다. 페미니스트를 침묵시켜 가부장제와 남성 우월적 사회를 유지하고 싶은 남성들의 집단행동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랜만이에요 김지은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