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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바리 Sep 13. 2021

1GB의 가치

아프리카 각국 데이터 요금제와 휴대전화 문화, 그리고 데이터의 가치

몇 달 전 휴대전화를 '알뜰폰'으로 바꿨다. '알뜰폰'은 '가상 이동 통신망 사업자(MVNO, Mobile Virtual Network Operator)'의 다른 이름으로, 자체 이동통신망이 없는 사업자가 이동통신망을 보유한 SKT나 KT, LG U+ 에게서 통신망을 빌려 무선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알뜰폰'을 사용한 지 약 5개월 정도 됐는데, 지금까지 서비스 품질에 문제가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요금제뿐 아니라 품질까지도 저렴해 보이게 하는 '알뜰폰'이라는 이름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지만, 덕분에 내 통신비는 월 8만 원대에서 3만 원대로 내려갔고, 이제야 좀 통신비가 합리적이란 생각이 든다.



4GB 다음 100GB... 한국 주류 통신사의 이상한 요금제


르완다에 있을 땐 한 달에 25,000프랑(약 29,000원)을 내면 4G 데이터를 30GB까지 쓸 수 있는 요금제를 주로 썼는데(통화비 별도), 그 달의 데이터 사용량이 좀 많아서 30GB를 두 번 충전(총 60GB) 해도 한국 돈으로는 6만 원이 안 되는 금액이 들었다. 그러다가 2019년 초에 한국에 돌아왔는데, 한국의 주류 통신사가 제공하는 요금제는 극단적이고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르완다 대표 통신사 MTN의 인터넷 요금제 (공식 홈페이지 캡쳐)


4G(LTE) 요금제를 기준으로 했을 때, 5만 원에 4GB 데이터를 제공하는 요금제의 다음 요금제는 6만 9천 원을 내고 100GB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는 요금제이다. 100GB 요금제의 경우 100GB를 다 쓰더라도 느린 속도(5Mbps)로 데이터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실상 무제한 요금제이긴 하지만, 한 달에 약 50GB 정도 쓰는 나는 중간 요금제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2만 원가량 더 비싼 요금제를 써야만 했다. 

SKT의 4G 요금제. 다른 통신사의 상황도 비슷하다. (SKT 공식 홈페이지 캡쳐)


물론 5만 원에 4GB 데이터를 제공하는 요금제도 기본 제공량을 다 쓰면 1Mbps 속도로 데이터를 계속 사용 가능해 '무제한'이라 부를 수도 있겠지만, 1Mbps는 휴대전화로 온라인 쇼핑이나 인스타그램 등 사진이 많은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에겐 답답할 수 있는 속도라 나에겐 맞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상황별 1Mbps와 3Mbps 속도를 비교한 유튜브 영상: https://youtu.be/WP3mLhfRGTw) 이렇게 4GB 데이터 요금제를 선택지에서 지우고 나면, '알뜰폰' 요금제를 쓰기 전까지 내 월 통신비는 르완다 때의 월 통신비보다 비쌌다. 



듀얼심과 번들 요금제, 르완다에서 휴대전화 사용하기


르완다는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4G 사용이 가능하고, 속도도 나쁘지 않다. 아직 5G 서비스는 상용화되지 않았았는데, 아프리카 대륙에서 상용화된 5G 서비스 이용이 가능한 나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케냐뿐이고 많은 나라에서 상용화를 위한 테스트를 진행 중이라고 한다.


르완다의 이동통신사는 2018년 말, Tigo Rwanda가 Airtel Rwanda에 인수되면서 MTN Rwanda와 Airtel Rwanda 두 회사만 남았다. MTN은 남아공에 본사가 있고, Airtel은 인도에 본사가 있는 외국계 회사로 많은 아프리카 국가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2020년 12월 기준 르완다엔 1천만 명의 모바일 서비스 사용자가 있는데, 이 중 62%가 MTN Rwanda를 쓰고, 38%가 Airtel Rwanda를 사용한다고 한다.(출처: Rwanda Utilities Regulatory Authority 보고서


아마 이 통계엔 듀얼심(한 휴대전화에 두 개의 심카드를 꽂는 것) 기능을 이용해 두 통신사 서비스 모두를 이용하는 사람들 숫자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르완다를 포함해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에선 한 사람이 두 개 이상의 심카드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 통신 환경이 지금보다 좋지 않았을 땐 지역에 따라 통신사별 연결 상태가 달랐다. 그래서 사람들은 두 개 이상의 통신사 심카드를 가지고 지역에 따라 더 잘 터지는 통신사로 바꿔가며 활용했는데, 통신 환경이 좋아진 요즘은 각 통신사가 진행하는 각종 요금 할인 행사를 따라 유리한 요금제를 사용하거나 같은 통신 사끼 리 통화 요금이 할인되는 혜택을 활용하기 위해 두 개 이상의 심카드를 쓰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르완다를 포함해 많은 나라에서는 기본요금이 존재하지 않는다. 덕분에 두 개 이상의 심카드를 유지하기가 쉽기도 한데, 르완다의 경우 기본요금은 없고, 미리 충전한 만큼만 쓰는 선불 요금제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갈수록 후불 요금제가 더 생기고 있지만, 르완다의 많은 서비스는 선불이 일반적이다. 통신비도 그렇고, 전기세도 전기를 사서 집에 달린 계량기에 입력하고 입력한 만큼만 사용할 수 있다. 아마 사람들의 개인정보, 신용정보를 파악하는 체계가 완비되지 않았고, 자동이체나 카드 결제가 대중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선불이 많이 활용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선불 통신 요금제의 이용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충전한 금액만큼 통화와 데이터를 쓰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특히 데이터의 경우엔 금방 충전 금액을 다 소진하기 마련이라, 사람들은 '번들(Bundle)'이란 걸 산다. 충전한 금액으로 사는 일종의 정액 요금제 서비스로, 앞서 들었던 예시처럼 정해진 기간 쓸 수 있는 데이터만 사는 경우도 있고, 데이터와 음성 통화 시간이 결합된 번들을 사는 경우도 있다. 


 강렬한 노란색이 인상적인 MTN Rwanda의 온라인 배너. (출처: Twitter/@MTNRwanda) 


그렇다면 이 번들은 어떻게 살까? 우선 선불을 해야 한다. 바우쳐라 부르는 카드를 충전하려는 금액만큼 상점이나 통신사 대리점에서 사서 그 카드 뒤의 스크래치를 긁으면 나오는 코드를 휴대전화에 입력하거나(한국의 문화상품권을 온라인에서 사용하는 원리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통신사 대리점을 방문해 충전하거나,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통신사 에이전트(주로 각 통신사의 로고가 크게 박힌 파라솔 아래 작은 탁자를 두고 있거나 통신사 로고가 박힌 조끼를 입고 있기 때문에 찾기 쉽다)에게 현금을 주고 충전할 수 있다.


가나의 MTN 에이전트 (출처: TechGh24)


바우쳐를 긁어 확인한 코드와 번들 구입은 주로 USSD 코드를 통해 이뤄진다. USSD는 쉽게 말해서 3G 같은 상위 데이터 통신 기능을 활용할 수 없는 피쳐폰에서도 필요한 명령을 주고받는 시스템으로, 숫자와 *, #으로 이루어진 정해진 명령어를 입력하면 인터넷 접속 없이도 통신요금 충전, 번들 구입, 잔액 확인 등이 가능하고 심지어는 통신사에서 제공하는 모바일 머니 서비스를 이용하여 돈을 보내거나 받을 수도 있고, 전기 요금 같은 것도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USSD 코드를 활용해서 Airtel Rwanda에서 번들을 사고 싶다면, 우선 Airtel Rwanda의 심카드를 끼고 *255#를 입력한 뒤 통화버튼을 누르면 나오는 메뉴를 따라 구입을 진행하는 식이다.



적도 기니와 수단이 184배 차이 나는 것


영국의 통신 기술 연구 회사인 Cable은 매해 각국의 모바일 데이터 단가를 비교한 결과를 발표하는데, 최근 2021년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전 세계에서 모바일 데이터 1GB당 요금이 가장 비싼 곳은 무려 49.67달러로 조사된 아프리카 대륙의 적도 기니였고, 그 뒤를 남대서양의 포클랜드 제도, 세인트 셀레나, 그리고 다시 아프리카의 상투메 프린시페(30.97달러)와 말라위(25.46달러)가 이었다.

1GB 당 모바일 데이터 요금이 가장 비싼 나라와 가장 저렴한 나라들 (출처: Cable)


그리고 가장 저렴한 나라는 1GB당 요금이 0.05달러밖에 되지 않는 이스라엘이었고, 0.15달러의 키르기스스탄, 0.19달러의 피지, 0.27달러의 이탈리아 그리고 수단이 역시 0.27달러로 5위 안에 들었다. 수단의 경우 통신사 Sudani의 100GB/월 요금제가 11,276 수단 파운드(29,757원), 즉 1GB 당 298원 정도였다. 모바일 머니의 활발한 사용으로 유명한 케냐 같은 국가가 아닌 수단이 아프리카 대륙에서 모바일 데이터 요금이 가장 저렴한 국가로 조사되었다는 게 흥미로운데, 구글링을 해봐도 정확한 이유를 찾을 수 없어 아쉬웠다. 국가마다 다르게 형성된 통신 비용에 대해 더 조사하기 위해선 그 나라의 통신 기반시설 상황, 통신 업체 간 경쟁 구도, 정부 정책(시민의 정보 접근성 증진을 위해 데이터 비용을 낮추는 등)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수단 통신사 Sudani의 온라인 배너 (출처: Twitter/@Sudani_sd)


아프리카 국가 중 통신요금이 가장 저렴한 나라 상위 5개국은 수단, 알제리, 소말리아, 가나, 리비아이고 내가 지냈던 르완다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19번째로, 전 세계에서 69번째로 모바일 데이터가 저렴한 국가로 조사되었다. 반대로 가장 비싼 국가는 적도 기니, 상투메 프린시페, 말라위, 차드, 나미비아 순이다. 참고로 한국은 꽤 비싼 축에 속하는 180위(평균 4.72달러)로 조사되었다.


수단의 선전(?)에도 대륙별 평균 모바일 데이터 비용을 계산하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 시민들의 부담이 가장 크다는 결과가 나왔다. 아프리카 대륙의 평균 모바일 데이터 1GB당 비용은 6.44달러로 아시아의 1.79달러보다 훨씬 비싸다. 아프리카 각국에 사는 시민들의 1인당 소득을 생각하면 그 부담은 차액 이상으로 더 클 것이다. 

대륙별 평균 모바일 데이터 비용. (출처: Cable)



당신의 1GB는 무엇입니까?


데이터는 수입이다. 나는 아마 인터넷이 없다면 벌이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업을 기획이나 조사연구를 위한 자료 찾기, 해외에 있는 동료나 파트너와 소통하기, 내가 만든 제안서나 보고서를 제출하기 등 내 벌이와 관련된 모든 것은 데이터 통신을 통해 이루어진다. 만약 데이터를 사용하기 위해 드는 비용이 내 소득에 비해 너무 비싸거나 인터넷이 잘 안 되는 환경에서, 언제 인터넷이 끊길지 혹은 내가 구입한 작은 용량의 번들이 언제 끝날지 걱정하면서 로딩 화면을 전전긍긍 바라보는 상황이라면 지금처럼 많은 자료를 읽고 검토할 수 없고 결과물도 지금과는 다를 것이다.


데이터는 인권과 민주주의다. 요즘 뭔가 개운하지 않은 일을 벌이는 세력이 가장 먼저 하는 것 중의 하나는 인터넷을 끊는 것이다. 올해만 해도 2월 1일부터 지금까지 시민들을 학살하고 있는 미얀마 쿠데타 세력이 쿠데타 초반에 모바일 인터넷을 끊었던 적이 있고, 6선에 도전한 요웨리 무세베니 대통령이 가수 출신 정치인 보비 와인과 경쟁한 총선에서도 투표일 직전 인터넷이 끊겼다. 디지털 권리 단체인 Access Now의 1월부터 5월까지의 보고서에는 인터넷 연결 자체를 끊거나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나 와츠앱 같은 메신저 프로그램 접속을 제한한 니제르, 콩고, 러시아, 이란 등의 사례도 소개되어 있다. 인권과 민주주의가 탄압받아 국내의 시민들과 국제사회가 연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데이터 통신을 통해 전해지는 메시지와 소식의 가치는 누군가의 생존과 직결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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