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케냐 UN 대사의 말
한국 시각으로 22일 오전, 우크라이나 사태에 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 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미국 등의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동부의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지역의 분리 독립을 승인하고 군 배치를 명령한 것을 강력히 비난했다.
이 회의에는 비상임 이사국으로 이 자리에 참석한 케냐의 마틴 키마니(Martin Kimani) 대사도 있었는데, 그는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독립에 반대했고, 이에 덧붙여서 "안보리 이사국을 포함한 강대국들이 다자주의를 무시하고 국제법을 위반하는 최근 경향"도 규탄했다.
키마니 대사는 독립 직후 제국주의 국가들이 정한 국경을 받아들이기로 한 아프리카 국가들의 사례를 들며, 아무리 해당 지역에 안보 위협이 존재하더라도 분리 독립은 정당화 될 수 없음을 강조했다. 가끔 기후위기나 평화와 같은 국제적인 사안에 관해 아프리카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 누구도 식민지로 삼지 않았고, 분쟁과 기후위기의 결과들을 겪고 있기에 힘과 돈의 논리가 판치는 국제사회에서 마지막 '양심'의 역할을 할 수 있는게 아닐까 싶다.
키마니 대사의 발언도 언듯 들으면 당연한 이야기, 그저 입바른 이야기로 들리지만 여기에 아프리카의 경험과 아프리카가 내린 결단이 더해지니 그 진정성과 울림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 느낌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 그의 연설 내용 일부를 번역해 소개한다.
케냐, 그리고 거의 모든 아프리카 국가는 제국의 종말로 탄생했고, 그 국경은 우리가 그린게 아니었습니다.
국경은 저 멀리 식민 종주국의 대도시인 런던, 파리, 리스본에서 그려졌고 그들이 쪼개놓은 고대 국가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었죠. 오늘날, 모든 아프리카 국가의 국경은 역사와 문화, 언어를 깊이 공유하는 사람들을 가르고 있습니다.
만약 독립할 때 민족과 인종, 종교가 같음을 기준으로 국가를 세우기로 했다면, 아마 우리는 지금도 전쟁을 벌이며 피 흘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국경에 머물기로 했고, 대신 범 대륙적인 정치, 경제, 법적 통합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위험한 향수를 가지고 과거 역사 속 나라를 세우는 대신, 누구도 아직 알지 못하는 위대함을 향해 나아가길 택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국경이 만족스럽기 때문에 아프리카단결기구(OAU, 아프리카연합의 전신)의 규칙과 유엔의 헌장을 따르기로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평화가 가진 더 큰 위대함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제국이 무너지며 탄생한 나라에는 이웃 나라 사람과의 통합을 염원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지극히 정상이고 이해할 수 있는 생각이죠. 그 누가 형제들과 함께, 공동의 목적을 만들어나가길 싫어하겠습니까.
하지만 케냐는 이런 강제에 의한 염원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새로운 형태의 지배나 압제로 빠지지 않도록 하는 방식으로 제국의 흔적을 복원해야 합니다. 우리는 인종, 민족, 문화 가릴 것 없이 모든 형태의 민족 통일주의와 확장주의를 거부합니다. 우리는 오늘 다시 이를 거부합니다.
케냐는 도네츠크와 루한스크를 독립국으로 인정하는 문제에 강력한 우려와 반대를 표명합니다. 또한 우리는 최근 몇십년간 유엔 안전보장위원회 회원국을 포함한 강대국들이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음을 규탄합니다.
오늘밤 다자주의(multilateralism)은 거의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다자주의는 공격 받았습니다. 지난 몇십년간 다른 강대국에게 당했던 것 처럼 말이죠.
우리는 모든 회원국들이 사무총장과 함께 할 것을, 그리고 사무총장이 우리와 함께 다자주의를 지켜내도록 요구할 것을 요청합니다.
연설 전체가 흥미롭고 인상적이지만, 특히 과거를 뒤로 하고 아직 누구도 알지 못하는 위대함을 향해 나아간다는 말이 가장 인상깊다. 사실 케냐도 이웃한 소말리아와 국경에서 갈등을 겪고 있고, 아프리카 대륙 곳곳에서도 영토 분쟁이 있다. 하지만 나는 키마니 대사의 발언이 진심이고, 이렇게 반복해서 평화와 새로운 길에 대해 이야기하는게 진짜 평화를 실현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