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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바리 Mar 04. 2022

우간다 사람은 한국에서 영어 교사를 할 수 없다

회화 지도(E-2) 사증(비자) 속 차별

우간다 국적의 인도적 체류자 ㅅ씨와 '이주민센터 친구'가 함께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심판청구서를 냈다.


이번 헌법소원 이야기를 다룬 한겨레 신문에 따르면, 우간다 국적의 ㅅ씨는 인도적 체류자 신분으로 국내에 지내며 국제영어교사자격증(TESOL) 석사과정까지 마친 뒤 영어학원이나 학교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는 데 필요한 회화지도(E-2) 사증(비자)을 신청했는데, 법무부가 해당 사증 발급을 거절했다. 이에 지난 1월, ㅅ씨는 이 회화지도 사증의 발급 기준이 불합리하다며 이주민센터 친구와 함께 헌법소원을 냈다. 


기사 전문: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33477.html


법무부의 사증 발급 거절 사유는 국적이었다. 현행 E-2 사증 제도에서는 영어 강사가 되려는 사람의 경우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국가 출신, 그중에서도 법무부가 인정하는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7개 나라(미국, 영국, 캐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뉴질랜드, 호주, 아일랜드) 혹은 양국 정부가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을 통해 인정한 인도 출신 사람이 아니면 이 사증을 받기가 매우 어렵다. 


2020년 8월,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가 내놓은 '사증발급 안내매뉴얼'의 회화지도(E-2) 사증 관련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회화지도의 개념: 외국어전문학원, 교육기관, 기업, 단체 등에서 수강생에게 외국어로 상호 의사소통하는 방법을 지도하는 활동 (외국어로 특정 어학이나 문학 또는 통·번역 기법 등을 지도하는 것은 회화지도에 해당하지 않음)

활동장소: 외국어전문학원, 초등학교 이상의 교육기관 및 부설어학연구소, 방송사 및 기업체부설 어학연수원 기타 이에 준하는 기관 또는 단체

해당자(1) 외국어 학원 등의 강사: 해당 외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국가의 국민으로서 해당 외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국가에서 대학 이상의 학교를 졸업하고, 학사 이상의 학위를 소지한 자 또는 이와 동등 이상의 학력이 있는 자 (해당 외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국가에서 고등학교 또는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의 대학에서 학사 이상의 학위를 취득한 경우에도 자격 인정)

해당자(2) 원어민 영어보조교사: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국가(미국, 영국, 캐나다, 남아공, 뉴질랜드, 호주 아일랜드) 국민으로 출신 국가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학사학위 이상의 학위를 취득한 자

해당자(3) 한-인도 CEPA 협정에 따른 영어보조교사: 인도 국적자로 대학 이상의 학교를 졸업하고 학사 이상의 학위와 교사자격증(영어전공)을 소지한 자

해당자(4) 정부초청 해외 영어봉사장학생: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국가 국민으로서 출신 국가에서 대학 2년 이상을 이수하였거나 전문대학 이상을 졸업한 자, 또는 10년 이상 해당 외국어로 정규 교육을 받고 국내 대학에서 2년 이상을 이수하였거나 전문대학 이상을 졸업한 자

해당자(5) 원어민 중국어 보조교사: 중국 국적자로서 중국 내 대학 이상의 학교를 졸업하고, 학사 이상의 학위증과 중국 국가한어판공실이 발급한 '외국어로서의 중국어 교사 자격증서'를 소지한 자

해당자(6) 전문인력 및 유학생의 비영어권 배우자: E-1~E-7 사증을 보유한 전문인력 및 유학생(이공계 석·박사 이상에 한함)의 배우자로서 영어권 출신이 아니더라도 TESOL 자격을 소지하고 학사 이상의 학위를 소지한 자 또는 동등 이상의 학력이 있는 자


위 매뉴얼의 내용은 영어 외의 다른 외국어 회화지도와 관련된 내용까지 포함하고 있어 다소 내용이 많고 복잡해 보이지만, 영어를 기준으로 했을 때, E-2 사증을 받기 위한 기본 조건은 이렇다. 


1) 법무부가 인정하는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국가나 인도 국민이며 학사 학위 이상의 학위를 가지고 있을 것

혹은 

2) 배우자가 한국에서 E1~E7 사증으로 체류하고 있고, 학사 학위 이상의 학위를 가지고 있으며 TESOL 자격을 가지고 있을 것


이 기준에 따라 E-2 사증을 받아 국내에 머무는 사람 중 2019년 말 기준 가장 많은 국적은 미국(7,219명)이고, 그다음은 남아공(1,796명), 영국(1,580명), 캐나다(1,502명) 등이 뒤를 이었다. 아프리카 대륙 국가 출신으로 E-2 비자를 받은 사람은 남아프리카를 제외하면 이집트인 1명뿐이었고, 아마 이 사람은 아랍어 교사 자격으로 비자를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이번에 헌법소원을 낸 우간다 출신의 ㅅ씨는 이러한 조건에 해당하지 않았고, 바로 이 국적 제한이 불합리함을 호소하고 있다. 우간다 헌법에 따르면 우간다의 첫 번째 공식 언어(Official Language)는 영어고, 두 번째 공식 언어는 스와힐리어다. 그리고 최근 학교 교육이 모국어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논의와 변화가 일부 있지만, 대부분 학교에서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영어로 모든 교육이 진행된다. 이번에 헌법소원을 낸 ㅅ씨도 대학교 과정을 포함해 17년 동안 영어로 교육을 받았다. 


물론 영어가 우간다 사람들의 모국어라고 하긴 어렵다. 우간다를 구성하는 여러 민족 중 가장 숫자가 많은 편인 간다 민족(Baganda)의 모국어는 루간다(Luganda)고, 다른 민족도 각자의 모국어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여러 민족과 여러 언어가 공존하는 상황에서 루간다어를 공식 언어로 삼으려는 시도는 다른 민족의 반대로 가로막혔다. 대신, 비교적 중립적이라고 볼 수 있는 과거 식민 제국의 언어인 영어와 또 다른 외국어인 스와힐리어가 공식 언어로 지정되어있다. 우간다처럼 영어를 공용어로 정하고 있는 아프리카 국가는 20개국이 넘고, 기본교육부터 영어로 이뤄지는 경우도 많다. 


초록색으로 칠해진 나라가 영어를 공용어로 정한 나라들이다. 출처: 위키피디아


한편, 법무부가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국가'로 인정한 남아공의 공용어는 영어를 포함해 11개에 달한다. 남아공 맥락에서 영어는 모국어보다는 공용어에 가까운데, 만약 남아공이 인정될 수 있다면 다른 나라들도 충분히 인정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기사에서 소개된 일본의 원어민 보조교사 프로그램에서는 7개국뿐 아니라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필리핀, 싱가포르, 자메이카, 바베이도스, 트리니다드 토바고 등의 국가 출신도 학교에서 영어 보조교사로 일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고 되어있는데, 이처럼 국민 다수가 영어로 학습하고, 일상생활에서 쓰는 나라는 7개국 외에도 훨씬 많다. 


영어를 교육할 수 있는 자격에 관한 것은 아니지만 참고로 영국은 자국으로 공부나 일을 하러 오는 외국인에게 사증을 발급할 때 '영어 다수 사용 국가(Majority English Speaking Country)' 출신이면 면제해주는 제도가 있다. 이 '영어 다수 사용 국가'에는 호주, 캐나다, 미국, 아일랜드, 뉴질랜드처럼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나라와 더불어 바베이도스, 자메이카, 트리니다드 토바고, 몰타, 도미니카 등이 포함되어있다. 참고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이 명단에서 빠져있다. 


출처: 영국 정부 Home Office (2021) "English language requirements: Tier1" 


최근 나이지리아와 가나의 시민단체와 정치인들은 영국 정부에게 이 명단을 개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국가가 '영어 사용 국가(English speaking country)'이며 영어 시험 점수를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나이지리아 청년들이 중심이 된 정책 플랫폼인 Policy Shapers가 온라인 청원 사이트인 change.org에 올린 "나이지리아인들에게 IELTS(영국 공인 영어 시험)을 쓰라고 하지 마세요 (Stop asking Nigerians to write IELTS)"는 7만 3천여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고(청원 본문), 부통령인 예미 오신바조(Yemi Osinbajo)도 이 청원에 대해 "영어 사용 국가로서 이전에 한번 통과하고서도 2년마다 같은 시험(IELTS)을 치르길 강요받는 일을 끝낼 수 있도록, 어느정도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며 힘을 실었다. 가나에서는 국회의원들이 나서서 가나는 연연방(Commonwealth) 국가일 뿐 아니라 영어를 공식 언어로 하는 나라라며, 가나 학생들이 영국 유학을 위해선 영어 점수를 내야만 하는 제도에는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관련 기사


여러 사례와 비교하며 남아공이 왜 법무부가 인정하는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7개 나라에 포함되었을지를 곰곰이 생각하는데, 기사 본문에 나오는 법무부 관계자의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그는 7개국 선정 기준에 대해 "우리 국민의 영어 교육 국제 표준화 달성을 위해 관계 부처와 협의를 거쳐 영어권 국가 중 문화·관습·발음·국민 선호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지정했다"라고 말했다. '국민 선호도'란 무엇일까? 국내 영어 학원에서 흑인 영어 교사 지원자들이 차별받는다는 이야기가 종종 들리곤 하는데(관련 기사), 마침 남아공은 다른 아프리카 국가보다 백인의 비율(약 8%)이 높은 편이다. 문득, 이 기준이 인종차별적 편견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었다. 


이 의심을 확인할 길은 없겠지만, 앞으로 이 7개국으로 한정된 영어 강사 자격 요건을 확대할 필요성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영어 공부의 목적에 있다. 우리가 영어를 공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수한 미국과 영국'의 문화와 관습을 배우려고 공부하는 걸까? 아니면 다양한 나라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 공부하는 걸까? 나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법무부도 회화지도를 "외국어로 상호 의사소통하는 방법을 지도하는 활동"이라 정의하고 있다.


의사소통을 위한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이 꼭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다양한 배경 속에서 영어를 소통을 위한 언어로 학습하고 활용해온 사람이 이 목적에서는 더 좋은 감수성을 갖춘 교육자가 될 수 있다. 한국 국적의 영어 교육자만 봐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데도 영어 회화 교육을 훌륭하게 해내는 경우가 많다.


이번 헌법 소원으로 회화지도(E-2) 사증 제도의 개선이 이뤄질 수 있길,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 교묘하게 숨어있는 인종 차별과 아프리카 혐오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할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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