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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바리 Mar 14. 2022

남아공은 왜 러시아 규탄 결의안 투표에서 기권했을까

"다루기 힘들어 보이는 차이도 협상장에선 해결될 수 있습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내가 최근에 들은 전쟁 중 언론이 가장 적극적으로 정보를 전하고, 한국 사람들도 돈과 물품을 지원하며 남다른 관심을 보이는 전쟁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 세계가 러시아를 비난하고 경제제재의 행렬에 동참하는 동안, 아프리카는 조금 다른 길을 걷고 있다. 한국 언론사의 한 기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아프리카의 반응이 "아쉽다"는 글을 쓰기도 했지만(관련기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바라보는 아프리카 각국 사람들의 마음은 생각보다 더 복잡해 보인다.


지난 3월 2일, UN 긴급특별총회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군사행동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이 상정되었고, 141개국의 찬성과 5개국의 반대, 35개국의 기권으로 통과되었다. 이 결의안의 주요 내용은 (1) 우크라이나의 영토 주권 재확인, (2)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 규탄, (3)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군사행위 중단 촉구, (4) 우크라이나 영토 내 러시아 군대의 조건 없는 철수 요구, (5) 러시아의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분리 독립 승인 규탄 및 취소 요구, (6) 국제 인도주의법 준수 요구, (7) 평화적 방법에 의한 양국 갈등 해결 촉구 등이다. (전문보기(영문))


반대표(아래 그림에서 빨간 사각형이 국가명 앞에 붙은 나라)를 던진 나라는 벨라루스, 북한, 에리트레아, 러시아, 그리고 시리아였고, 기권한 국가(아래 그림에서 노란 사각형이 국가명 앞에 붙은 나라) 명단에는 알제리, 앙골라, 부룬디, 콩고 공화국,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적도 기니, 마다가스카르, 모잠비크, 나미비아, 세네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17개 아프리카 국가가 포함되어있다. 그리고 부르키나파소와 에스와티니, 에티오피아 등 8개 아프리카 국가는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아래 그림에서 국가명 앞에 아무런 표기가 없는 나라). 


물론 찬성표를 던진 아프리카 국가가 더 많다. 지난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에서 "우리는 우리의 국경이 만족스럽기 때문에 아프리카단결기구(OAU, 아프리카연합의 전신)의 규칙과 유엔의 헌장을 따르기로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평화가 가진 더 큰 위대함을 원했기 때문입니다"라는 깊은 울림이 있는 연설을 했던 마틴 키마니(Martin Kimani) 대사의 케냐를 비롯해 총 28개 아프리카 국가가 찬성표를 던졌다. (관련 글)


아프리카연합도 지난달 말, 의장인 매키 살(Macky Sall) 세네갈 대통령과 무사 파키 마하마트(Moussa Faki Mahamat) 집행위원장 명의의 성명서를 통해 러시아를 포함한 모든 지역, 국제 행위자들이 국제법과 우크라이나의 영토 주권을 존중할 것을 호소하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적대행위를 멈추고 지체 없이 정치적 협상을 시작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성명서 전문(영문)) 동시에 매키 살 대통령의 세네갈 정부는 '비동맹 원칙'을 언급하며 결의안에서도 기권했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이렇게 각자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 카메룬 출신의 연구자인 마하마 타왓(Mahama Tawat)은 정권의 형태와 서방, 러시아 혹은 구소련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해석을 내놓았다.(마하마 타왓의 The Conversation 기고문 전문) 그의 분석에서 첫 번째 기준점은 민주주의다. 권위주의 정권이거나 혼합 민주주의 정권(hybrid regime: 선거 등의 민주주의 절차는 갖추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독재나 권위주의 통치를 하는 정권)들이 자신과 유사한 정권인 러시아를 지지하며, 미래에 자신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비슷한 도움을 받길 기대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언론에서도 많이 지적한 점인, 아프리카의 많은 권위주의 정권이 러시아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그는 이 구분에 들어맞는 국가로 기권했던 알제리, 앙골라, 부룬디,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남수단, 탄자니아 등을 꼽았고, 한편 권위주의 정권이거나 혼합 민주주의 정권임에도 찬성표를 던진 리비아, 차드, 이집트, 르완다, 소말리아 등은 서방국가들과 동맹관계를 가지고 있어 그렇게 투표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고 나면 남는 국가는 대체로 민주적으로 평가받는 정권임에도 기권한 국가인데, 그의 분석에 따르면 나미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세네갈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는 나미비아와 남아공은 과거 독립 투쟁 시절 소련연방의 지원을 받았던 역사가 있었기에 이런 선택을 했을 거라고 보았고, 서방과 관계가 좋고 오랜 민주주의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기권한 세네갈의 입장에 대해선 추가적인 분석 대신, 더 혼란스럽다(more puzzling)고 썼다. 


타왓의 분석은 꽤나 명쾌해 보이지만, 지나치게 민주주의/자유주의 대 권위주의/비자유주의(illiberalism)의 양분법적 접근에 치중해 아프리카 각국의 상황을 단순화했다는 생각도 든다. 특히 남아공의 경우, 시릴 라마포사(Cyril Ramaphosa) 남아공 대통령이 이번 결의안 투표에서 기권한 이유에 대해 주간 뉴스레터를 통해 설명했음에도 단순히 과거의 역사적 관계로만 풀어낸 점이 아쉽다. 

출처: 남아공 대통령실 홈페이지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은 3월 7일, 대통령실에서 발행하는 주간 뉴스레터를 통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분쟁에 대한 남아공의 입장을 설명했다. 뉴스레터의 일부 내용을 번역하자면 아래와 같다. (뉴스레터 전문(영문))


국가 사이의, 혹은 국가 내에서 일어나는 많은 분쟁이 수많은 총으로 해결되는 세상에서 다름을 협상과 대화, 타협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로, 혹은 상상에나 나올만한 이야기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협상을 통해 민주주의를 일군 나라로서, 우리는 세계 평화가 무력이 아닌 협상으로 달성될 수 있음을 변함없이 믿습니다. 이 원칙은 우리의 민주주의가 시작될 때부터 이어졌고, 우리 외교의 중요한 방향이기도 합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지난주 러시아와 그 이웃나라 우크라이나의 고조되는 갈등에 대한 UN의 결의안 투표에서 기권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결의문은 의미 있는 협상을 중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지난주 UN에서 그 결의안이 통과되기 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관료들은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남아공은 UN 결의안이 두 국가 사이의 대화가 시작된 것을 환영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이 대화가 성공할 수 있도록 하는 조건을 모색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정치적 협상을 통한 평화적 해결 촉구는 마지막 문단에서 단 한 문장으로만 언급되었습니다. 양국이 노력을 지속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지지하고 격려하는 것이 빠진 것입니다. 

(중략)

UN 헌장은 회원국이 우선 분쟁을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쟁이건 당사자들이 첫 번째로 협상과 조사, 중재, 화해와 같은 방법으로 해결책을 찾을 것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분쟁이 발발한 이후로 남아공은 이를 촉구하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군사행동을 하는 것을 규탄하는 일에 기권하는 것을 두고 남아공이 역사의 잘못된 편에 선다고 말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남아공은 세계가 다른 전쟁을 원하지도 않고 감당할 수도 없는 때에 평화의 편에 서있습니다. 이런 적대의 결과는 앞으로 수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느껴질 것입니다. 

적대의 중단은 어쩌면 무력과 경제적 압력을 통해 이뤄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속적이고 오래가는 평화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역사적 긴장은 어떤 협정이건 지속적이고 오래갈 수 있고, 양측의 우려를 다루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줍니다.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유색인종 차별 정책)를 끝낸 우리의 경험과 (아프리카) 대륙의 다른 곳에서 일어난 분쟁을 중재한 경험에서 많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첫째는 다루기 힘들어 보이는 차이도 협상장에선 해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대화가 실패로 돌아가더라도, 우리의 협상 과정처럼 다시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당사자가 서로 대면하지 못할 때 조차도 돌파구는 언제나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계속해서 협상과 대화를 촉구하고 지지하는 것은 인권에 대한 우리의 헌신을 조금도 떨어뜨리지 않습니다. 분쟁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우리는 분쟁이 민간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우려했고, 전쟁이 갈등을 해결하기보다 사람들의 고통을 낳을 것이라 보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우리 국민들의 인권과 자유뿐 아니라 팔레스타인, 서사하라(모로코와 영토 분쟁을 겪고 있는 지역),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과 세계 사람들의 인권과 자유의 진보를 위해 노력합니다. 

(중략)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람들, 역사와 사람, 운명이 엮여있는 이 두 이웃은 튼튼하고 지속가능하며, 오래가는 평화를 가질 자격이 있습니다. 


남아공 로즈대학교 민주주의 연구소의 소장인 스테픈 프리드만(Stephen Friedman) 교수는 결의안에 기권한 정부의 결정을 지지하며, 남아공은 러시아의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철군을 요구하는 결의안의 내용에 반대한 것이 아니라 원칙과 일관성에 문제제기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 결의안을 지지한다면 다른 편의 사람들도 지지해야 할 것이라며 "도덕의 차원에서 봤을 때 우크라이나에 대한 폭격은 절대로 용납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70년의 팔레스타인 점령도 그렇습니다. 이라크 폭격도 그렇고, 다시 팔레스타인 이야기를 하자면 가자(Gaza)를 폐허로 만든 그것도 그렇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예멘을 폭격했죠"라고 말했다. 그는 도대체 어떤 기준과 규칙이 어떤 폭격은 제재의 대상으로 만들고, 어떤 폭격은 제재의 대상으로 삼지 않기로 결정하는거냐며 미국과 유럽이 만드는 기준이 만들고 모두가 그에 따르는 현상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프리드만 교수와 달리 누군가는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의 글이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고, 사실은 러시아와의 관계를 고려해서 기권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대화와 협상의 중요성도 생각해볼 점이 있다. 더군다나 아파르트헤이트라는 극한의 대립을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종식한 경험이 있고 아프리카 대륙 내의 수많은 갈등에 중재자로 참여한 경험이 있는 남아공의 이야기라면 그 깊이가 남다르다. 실제로 며칠 전, 라마포사 대통령은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통화한 뒤, 남아공이 양국의 중재자로 참여할 수도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잘못된 전쟁을 시작하고 전쟁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지금처럼 수많은 나라가 러시아를 경제 제재로 압박하는데 몰두하고 전쟁 지역으로 모여드는 의용군과 무기에 대해선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는 것은 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극단으로 치닫게 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 라마포사 대통령의 말처럼, 서로의 차이가 너무나 커서 협상의 여지가 없어 보일지라도 일단 협상장에 들어오면 무언가 일어날 수 있다. 실제로 아프리카의 여러 내전과 전쟁은 협상장에서 끝났다.


내 생각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끝낼 방법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러시아 시민들이 혁명을 일으켜 푸틴 대통령을 몰아내는 것이고, 둘째는 협상을 통해 푸틴에게도 전쟁을 끝내는데 합의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리고 첫 번째보다는 두 번째가 더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테러리스트와는 협상하지 않는다'라는 말처럼 푸틴과도 협상해선 안된다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은 한쪽의 의지로는 끝날 수 없다. 


다시 아프리카 사례로 돌아오면, 이렇게 협상을 통해 끝낸 내전과 전쟁에는 후유증이 종종 남는다. 협상의 조건으로 반인륜적 범죄를 일으킨 사람들의 안전한 망명이나 면책이 보장되는 경우가 많아, 희생자와 피해자를 위한 정의가 실현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을 이런 후유증 없이 끝내기 위해선 어떤 방법으로 대화하고 중재해야 할지, 아프리카를 포함한 전 세계의 지혜와 노력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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