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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바리 Mar 28. 2022

미얀마, 계속 저항하고 있습니다

미얀마 민족공동체 청년들 '스스로 미래를 말하다'

어제(3월 27일) 서울 전태일 기념관에서 "미얀마 시민 저항 1주기 보고서 발행 기념: 미얀마 민족공동체 청년들 '스스로 미래를 말하다"라는 이름의 행사가 열렸다.


이 행사는 한국과 미얀마를 연결하며 군부 독재에 저항하고 민주화 운동을 하고 있는 재한 미얀마 시민 조직인 행동하는미얀마청년연대(YAM)재한연합국적협회(UNASK), 그리고 아시아주민운동조직의 연대체인 해외주민운동연대(KOCO)가 함께 주최했고, 3시간 동안 사물놀이와 시 낭독, 노래 공연 등 한국과 미얀마 청년들의 문화공연, 그리고 미얀마의 여러 민족 청년들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 2021년 2월 1일 시작되었으니 벌써 1년도 더 지났다. 쿠데타 초기, 미얀마 사태에 대한 한국 시민들의 관심은 신기할 정도로 높았다. 미얀마 시민들의 저항을 한국의 민주화 역사와 겹쳐보며 공감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소셜미디어와 언론을 통해 실시간으로, 그리고 선명하게 전해지는 미얀마 군부의 폭력을 접하며 분노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언론에서 다루는 미얀마 관련 기사는 줄어들었고, 매일같이 쏟아지는 세계 그리고 우리 주변 문제 속에서 사람들의 관심도 흩어져갔다. 나도 슬그머니 관심이 옅어지던 때, 해외주민운동연대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행사 공지와 초대말을 보고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들어 미얀마를 덜 떠올린다는 죄책감에서 갔다기보다는, 초대의 말에서처럼 '잘 싸우고 있다고 웃음과 격려를' 건네고 응원하고 싶었다. 


봄이 옵니다. 
미얀마의 시민들의 가슴에도 봄이 오길 바라봅니다. 
한 번도 멈춤 없던 미얀마 시민들의 싸움을 기억하며, 
코코는 작지만 '미얀마 시민 저항 1주년 기념보고서'를 발행했습니다.  
그리고 미얀마 민족공동체 청년들의 공연과 대화 시간도 소박하게 만들어 봅니다. 
참여하셔서 
'잘 싸우고 있다'고 웃음과 격려를 건네주세요.
연대의 심정으로 초대합니다. (출처: 해외주민운동연대 페이스북 페이지)


'혹시 사람들이 많이 안 와서 준비한 사람들이 실망하면 어떡하지'라는 마음에서 간 것도 없진 않았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행사가 열린 전태일기념관 2층 공연장의 자리는 꽉 찼다. 공연을 위해 같은 옷을 맞춰 입고 온 미얀마 청년들도 있었고, 자신이 속한 민족을 드러내는 옷을 입고 온 미얀마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여러 인연과 이유로, 여러 곳에서 찾아온 한국 사람들도 많았다.  


전통연희단 꼭두쇠의 흥겨운 사물놀이 공연과 미얀마 청년의 시 낭독으로 행사의 막이 올랐다. 시를 쓰고 낭독하는 게 미얀마에서는 꽤나 일상적인 일인지 행사 말미에 또 다른 청년이 시를 낭독했다. 나는 평소 시를 잘 안 읽기도 하고 일상에서도 시를 접할 일이 잘 없다 보니 저항과 투쟁, 혁명을 시로 표현하고 결의하는 모습이 낯설었다. 그런데 시를 듣다 보니 한국에서는 '오그라든다'라는 말이 생기며 많이 사라진 결연하고 진지한 감정 표현들이 가진 힘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시 '우리 걸음'을 낭독하는 미얀마 청년. Photo: 우승훈


뒤이어 해외주민운동연대가 준비한 미얀마 시민 저항과 Z세대에 대한 영상이 상영되었다. 1995년 전후로 태어난 청년들을 의미하는 Z세대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오가며 시민 저항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Z세대는 시민불복종운동(Civil Disobedience Movement, CDM)을 주도했고, 소셜미디어에 주변 상황이나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창작물이나 챌린지 영상, 밈(Meme) 등을 공유하며 미얀마의 소식과 투쟁하는 자신의 존재를 다른 동료 시민과 세계에 전했다. 


'Z세대' 영상 캡쳐


살인과 방화 같은 반인륜적 범죄도 스스럼없이 저지르는 군부에 맞서 시민들이 1년 넘게 저항을 이어올 수 있었던 데에는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는 소셜미디어의 역할도 컸을 것이다. 나도 최근 대통령 선거 직후 소셜미디어에 여러 사람들이 올린 다짐과 연대의 글을 보며 큰 위안을 얻었던 일이 떠오른다.


영상에서는 Z세대가 주도한 창의적인 시위 방법도 소개되었다. 화분을 들고 모이거나 화분에 저항의 메시지를 꽂아서 내놓는 화분 시위도 있었고, 푯말만 길에 세워두는 무인 시위도 있었고, 요가하며 시위하는 요가 시위도 있었다. 이 외에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시위 방법인 깡통 시위(깡통이나 냄비 뚜껑 같은 소리 나는 물건을 동시에 두드리며 하는 시위)나 경적 시위도 있었다. 이런 다양한 시위의 현장, 때로는 최루탄과 고무탄, 심지어는 실탄이 쏟아지는 저항의 현장 최전선에는 스스로의 미래를 위해 싸우는 Z세대가 있었다. 


미얀마 시민들의 요가 시위. Photo: Twitter/@CherryBoBo8


나는 행사 내내 한국의 상황이 미얀마와 겹쳐 보였다. 한국의 과거 민주화 운동이 아니라 한국의 미래가 겹쳐 보였다. 한국에서는 소수자와 다양한 가치를 탄압하는 정치인들이 세를 불리고, 혐오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미얀마에서는 2015년 민주 정권이라고 할 수 있는 NLD(민족민주연맹) 정권이 들어서기 전에도, 그리고 심지어 그 이후로도 군부는 다른 민족을 탄압했고, 2016년에는 온갖 거짓 선동을 앞세워 로힝야 민족을 범죄자, 테러리스트로 그리며 로힝야 제노사이드를 일으켰다. 


Z세대 영상 상영 뒤로 이어진 미얀마 민족 청년 대화에서 미얀마의 다수 민족이라고 할 수 있는 버마 민족 청년은 버마 민족과 불교 외에 다른 민족의 문화와 종교, 역사를 배우지 못했고, 군부가 어떻게 다른 민족을 탄압하는지 잘 몰랐다가 군부 쿠데타 이후 이들의 만행과 폭력성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들으니 한국의 몇몇 정치인들이 떠올랐다. 곧 여당의 당대표가 될 사람이 장애인의 이동권 시위를 시민들을 '볼모'로 잡는 행위로 규정하며 장애인의 고통을 지우고, 대통령 당선자가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차별이 없다며 여성이 당하는 차별을 지우고, 곧 여당이 될 정당이 청년, 여성, 장애인 할당을 없애며 이들에 대한 차별을 '공정'과 '역량'으로 덮어버리고 있다. 


미얀마 민족 이야기를 하는데 무슨 엉뚱한 소리냐 하겠지만, 민족이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며, 어떤 정체성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모아 부르는 것이라고 생각해보면 한국에도 민족과 비슷한 집단이 많다고 생각한다. 여성과 남성이 있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있고, LGBT와 이성애자가 있고, 상황에 따라선 서울 사람과 전라도 사람, 강원도 사람도 서로 다른 역사, 정체성, 세계관, 고통을 가진 집단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한국 사회가 상대적으로 차별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고통을 모르게 된다면, 혹은 '내 일 아니니까' 외면한다면, 다수고 주류라고 할 수 있는 비장애인 남성도 곧 폭력과 차별로 고통받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얀마의 여러 민족 청년들. Photo: 우승훈


빠오 민족 청년은 군부가 그동안 버마 민족을 제외한 다른 민족들의 문화와 전통을 억압하고 교육 기회와 자유를 박탈하는 식으로 일종의 '제노사이드'를 벌여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제노사이드라고 하면 보통 르완다 제노사이드나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처럼 어떤 민족 출신 사람들을 죽이는 것을 떠올리곤 하지만, 생각해보면 민족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문화를 억압하고 그 민족의 미래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교육 기회를 박탈하는 것도 빠오 민족 청년의 말처럼 일종의 제노사이드라고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빠르게 진행되느냐 천천히 진행되느냐, 생명을 직접 앗아가느냐 정체성을 지우느냐의 차이가 있지만 어쨌든 어떤 민족이나 집단을 없앤다는 점에서는 같기 때문이다.


미얀마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와 더불어 시민 저항의 미래라고 할 수 있는 연방제 민주주의(Federal Democracy)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오갔다. 나는 지금도 내전을 겪고 있고, 몇 년 전 오랜 민주화 항쟁 이후 새로운 지도자를 맞았지만 그 지도자의 출신 민족 안에서도 민족 이기주의가 터져 나왔던 '민족에 기반한 연방제' 국가인 에티오피아가 떠올라 연방제라는 제도만으로는 지금 미얀마가 겪고 있는 위기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가장 먼저 연방제 민주주의에 대해 이야기한 까친 민족 청년은 연방제 민주주의를 다양성을 존중하고 다수가 일방적으로 무언가를 결정하지 못하게 하는 체계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사회를 보던 해외주민운동연대 강인남 대표도 연방제 민주주의가 버마 민족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미얀마를 구성하는 모든 민족이 함께 주인 되는 체제를 만드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연방제가 현실화되었을 때, 그동안의 차별로 생긴 차이를 바로잡기 위한 행동과 민족 이기주의, 일부 정치인들의 탐욕 사이에서 민주적이고 조화로운 체제를 만드는 것은 정말 많이 어려운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적어도 모두가 함께 투쟁해본 경험을 공유하게 될 새 미얀마에서는 이상에 가까운 연방제 민주주의를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 


이 외에도 미얀마 민족 청년과의 대화에서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는데, 다 기록하고 소개하지 못한 게 아쉬울 정도로 많이 배우고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대화 시간 뒤로는 한국의 민중가수 공연과 하루치의 월급을 미얀마 시민 저항 운동에 기부하는 '원데이 챌린지' 캠페인을 하고 있는 미얀마 청년들의 공연이 진행되었다. '원데이 챌린지' 캠페인에 대해 궁금하다면 오마이뉴스의 기사 "쿠데타 1년, 한국의 미얀마인들 심상치 않다"를 읽어보면 좋을 것 같고, 캠페인에 참여하고 싶다면 해외주민운동연대에 연락해보면 될 것 같다. 


원데이챌린지 홍보 공연을 하는 미얀마 청년들. Photo: 우승훈


그리고 어제 행사의 계기가 된 미얀마 시민 저항 1주년 보고서 "피어나라 미얀마 2022: 20210201 미얀마 쿠데타 시민 저항 1주년 보고서"는 아래 링크에서 구입 신청을 할 수 있다.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eBurRQeQPEjvI1HyAxRbb7fG1H-IxftfXS9OYlCn5ch3OSmA/viewform



어제 행사는 여러모로 특별했던 행사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정말 오랜만에 감정을 공유하고 함께 저항하는 사람들과 호흡하고 구호를 외치고 손뼉 치고 세 손가락을 들고 팔뚝질을 하니 힘이 생기는 기분도 들었고, 어디서든 저항을 이어가고 있는 미얀마 시민들의 이야기에서 계속하는 힘과 연결의 힘도 배웠다. 


쿠데타 이후 1년이나 지났지만, 미얀마 시민, 그리고 그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은 어디서든 따로 또 같이 군부에 저항하고, 저항을 기록하고, 나아가 전에 없던 훨씬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한다. 흘러가는 시간이 오롯이 폭력과 탐욕의 편이 되지 않도록 한 것은 이런 연대와 기억, 상상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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