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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바리 Jan 20. 2022

우리는 누구와 손잡고, 누구에게 무기를 팔고 있을까?

2022년 문재인 대통령 이집트 방문에 부쳐,

문재인 대통령이 1월 15일부터 22일까지 6박 8일 일정으로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를 방문하는 아중동 3개국 순방을 하고 있다. 그 마지막 일정으로 오늘부터 이틀간 이집트 압델 파타 알 시시(Abdel Fattah el-Sisi)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참석 등이 진행될 예정이다.


알 시시 대통령의 초청으로 진행되는 이뤄지는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이집트 방문은 한국 대통령으로는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역대 2번째이자 16년 만이다. 청와대 대변인 브리핑에 따르면 정상회담에서는 "양국 간 지속가능 성장과 미래 지향적 협력 방안"이 논의될 예정이고, 이어 양국 경제인이 참여하는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 참석하여 "지속가능 발전을 위한 친환경·미래산업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한다. 더불어  이번 순방이 "한반도와 중동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기회가 될 것이란 말도 덧붙였다.



(무기) 경제 외교


청와대 브리핑엔 언급되지 않았지만, 몇몇 언론은 무기 수출에도 주목하고 있다. 국내 방위산업체인 한화디펜스는 K-9 자주포를 이집트에 수출하기 위해 이집트 국방부와 오랫동안 협상을 해왔고, 작년 9월엔 서욱 국방부 장관이 이집트를 방문, 이집트 국방부 장관, 방산물자부장관을 각각 만나 전략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한화디펜스의 K-9 자주포. Photo: 한화디펜스 홈페이지


문재인 대통령도 2021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에서 "방위산업을, 국방을 뛰어넘는 국가의 핵심 성장동력으로 발전시킬 것"이라며, 방위산업의 해외 진출을 정부 차원에서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한 터라, 이번 이집트 정상회담에서도 관련 논의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작년 말 문재인 대통령이 호주를 방문하던 기간에 한화디펜스와 호주 당국이 1조 원 규모의 K-9 자주포 수출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런 정책 기조 때문일까? 문재인 대통령 재임기간이 대부분 포함된 2016년~2020년 한국이 세계 무기 수출에서 차지한 비율은 세계 9위인 2.7%로, 전기인 2011년~2015년의 0.9% 대비 210%라는 엄청난 성장을 기록했다. (출처: 스톡홀름국제평화문제연구소 SIPRI 보고서) 그러다 보니 이제 하다 하다 "K방산"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정부와 언론은 방위산업체의 해외 진출을 '대한민국의 성과'로 보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평화와 방위산업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힐데와소피 "평화는 군사력으로 지켜지나요?: 문재인 정부가 말하는 평화의 공허함"에서 더 읽어볼 수 있다. https://brunch.co.kr/@hildeandsophie/129)



무기 수출의 책임


작년부터 시작되어 1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미얀마 군부 쿠데타 사태, 군부에 맞서다 사망한 시민의 수는 1,400명을 넘어섰다. 한때 미얀마 군부가 반군부 운동을 진압하는데 한국산 무기를 썼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던 적이 있는데, 이를 심층 취재한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한 국내 방위산업체 관계자는 “2015년 우리가 만든 DK-44 폭음탄 3만여 개를 미얀마 경찰에 수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제조업체라 수출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았다. DK-44 모델 중 최루탄도 있었는데 생산한 지 오래됐다”며 “인체에 치명적이지는 않다. 이런 식(미얀마 시위 탄압용)으로 쓰일 수 있을지 생각도 못 했다”라고 말했다.


2014년 발발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예멘 전쟁의 현장에서도 한국산 무기가 발견된 적이 있다. 반군이 사우디아라비아 군에게서 탈취했다는 무기 중엔 한화의 세열수류탄이 있었고, 사우디아라비아군이 반군을 공격하는 영상엔 한화와 LIG넥스원이 공동 개발한 중거리 대전차 미사일 시스템인 '현궁'이 등장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 이 예멘 전쟁은 2018년 500여 명의 예멘 난민이 제주도를 찾게 된 일의 원인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무기를 예방용이라고 하겠지만, 어쨌든 무기는 누군가를 다치게 하고, 죽일 수 있는 힘을 가진 도구다. 팔 때는 한국의 국익도 챙기고, 어느 나라의 안보에도 기여한다며 자랑스럽게 팔았겠지만, 실제 그 무기가 사용되었을 때에도 마냥 자랑스럽긴 어려울 것이다. 심지어 사용되지 않을 때에도 무기는 안보와 안정을 앞세우는 독재정권, 권위주의 정권의 든든한 힘이 된다. 공교롭게도 2016~2020년 한국이 무기를 가장 많이 판 나라 중 1위 영국(14%)을 제외한 2위 필리핀(12%)과 3위 태국(11%)은 국가의 과도한 시민 탄압이 문제가 되는 나라다. 한국이 태국과 필리핀을 포함한 아세안 10개국, 인도와 관계를 강화하고 공동 번영을 이끌겠다며 내놓은 '신남방 정책'의 핵심 원칙인 3P, 사람(People)·평화(Peace)·상생번영(Prosperity)에서의 '평화'는 평화인지 궁금해진다.


신남방정책의 3P. 출처: KTV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독재자" 압델 파타 알 시시


군인 출신인 알 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대규모 민주화 시위에 끼어든 군부 쿠데타 직후 이뤄진 2014년 선거에서 군부의 전적인 지원을 받으며 대통령에 선출되었고, 2018년 재선과 2019년 임기를 늘리는 개헌을 통해 지금까지 대통령을 하고 있다. 


그는 임기 내내 시민사회와 언론을 탄압한다는 의혹을 끊임없이 받고 있으며, 그의 든든한 우방이었던 2019년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트럼프는 심지어 알 시시 대통령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독재자(my favorite dictator)"라고 부른 적이 있다. 아마도 농담 반, 그리고 그렇게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알 시시가 부러운 마음 반이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아랍의 봄'이라는 것이 언제였나 싶을 정도로 이집트의 민주주의는 다시 머나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아랍의 봄은 짧았고, 이집트 사람들은 아직 충분한 민주주의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2013년의 쿠데타와 뒤이은 선거를 통해 사실상 군사 정권이라고 할 수 있는 알-시시 정권이 들어섰고, 장군에서 대통령으로 변신한 알-시시는 시민과 야권 정치인의 권리를 억압하고 군부가 이집트 경제를 삼킬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알 시시는 취임하면서부터 경제위기와 민주화 요구라는 큰 위기에 봉착했다. 알 시시의 유래 없이 강력한 억압에도 불구하고 이미 두 명의 대통령을 시위로 몰아낸 경험이 있는 이집트 민중은 그에 반대하는 시위를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한편 이집트 군부는 이 기간 동안 이집트의 '최종 결정권자'로의 지위를 재확인하고, 경제적,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나갔다. 그 결과 군부는 단순히 안보를 담당하는 기관이 아닌 그 스스로가 정권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혁명부터 알-시시의 선출까지, 군부가 허락한 변화들


2011년, 튀니지의 독재자 벤 알리를 몰아냈던 '자스민 혁명'의 물결이 이집트에 닿았다. 1월 25일 시작된 민중봉기는 2월 11일, 호스니 무바라크(Hosni Mubarak)의 대통령 사임과 최고군사위원회(SCAF)로의 권력 이양 발표와 함께 끝났다. 독재자를 몰아낸 이집트 시민들은 민주화를 기대했지만, 혁명 이후 상황은 혼란의 연속이었다. 2012년, 이집트인들은 52%의 투표율로 이집트 역사상 첫 번째 민간인 출신 대통령, 모하메드 모르시(Mohamed Morsi)를 선출했다. 그는 이집트에서 가장 오래되고, 영향력이 큰 이슬람주의 단체인 무슬림형제단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자유 정의당(Freedom and Justice Party)의 후보였다.


모르시는 대통령직을 1년밖에 지키지 못했다. 그의 권위주의적이고 종교적 통치에 반발한 이집트 민중은 다시 2013년 6월, 대규모 봉기를 일으켰고, 봉기에 뒤이은 쿠데타로 그는 물러나야만 했다. 모르시가 물러나기 전 이집트의 고위 군 장성들과 반(反) 모르시를 외치던 민중 지도자들은 비밀 회동을 가졌다. 수십 년 동안 그들은 적대관계였다. 누가 손을 먼저 내밀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서로 적대하던 군부와 시민사회는 함께 모르시 퇴진을 기획했고, 실행으로 옮겼다. 결국 이 이상한 동맹은 군부세력이 전권을 쥘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 말았다. 모르시가 물러난 직후, 모르시의 지지자들은 라바 광장과 나흐다 광장을 점거하고 시위를 벌였다. 이에 군부는 이들을 '청소'했고, 약 1,000명의 민간인 사상자를 기록하는 참사를 낳았다.


결국 과도정부는 군부에 의해 들어섰다. 과도정부는 무슬림형제단을 해체하고, 헌법을 개정했다. 새로운 헌법에서는 모르시 시절 추가되었던 이슬람주의적 항목들이 지워졌고, 종교 기반의 정당을 금지시킨다는 항목이 추가되었다. 민간인을 군사 재판에 세울 수 있도록 하는 등 군부의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는 항목들도 추가되었다. 이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는 2014년 1월 실시되었다. 국민들의 98%가 개정에 찬성표를 던졌지만, 투표율은 38%에 그쳤다. 


뒤이은 2014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군부가 지지하는 전 국방부 장관, 알 시시가 90% 이상의 득표와 함께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 선거는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군부는 선거 전 주요한 반대세력들을 금지했고, 알 시시의 후보 지명에도 관여했다. 군부의 정치 개입은 이게 처음이 아니었다. 2011년의 혁명 이후, 군부는 민주주의를 계속해서 위협해 왔다. 첫 번째 총선이 무슬림형제단의 다수 의석 차지로 끝났을 때, 최고군사위원회는 '위헌'을 이유로 의회를 해산시켰고, 모르시가 2012년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군부는 의도적으로 대선 결과의 발표를 미뤘다. 2014년, 군부가 지명한 알 시시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이집트 군부는 마침내 절대 권력을 쥐게 되었다.



이집트 정치의 실세, 군부


이집트는 2012년부터 2015년 10월 총선 전까지 국회가 없었다. 2015년의 총선마저도 엄중한 통제 속에 치러졌다. 국회가 없던 기간 동안 과도정부와 뒤를 이은 알 시시 대통령은 일명 '반-집회 법', '테러방지법' 그리고 '비정부단체법'을 연이어 통과시켰다. 이 법들은 시민들이 민주주의적 권리행사를 통해 정당을 만들거나, 권위주의에 저항할 수 없도록 시민권을 제한했다. 게다가 가장 강력했던 야권 세력, 무슬림형제단은 아예 금지당하고 테러리스트 단체로 지정되었다. 결국 알 시시는 어느 당에도 속해있지 않았지만, 국회는 사업가들, 전직 장교들, 무바라크 시절 인사들, 그리고 군사정보국이 설립한 '국가미래당(Nation's Future Party)' 같은 친 대통령 정당으로 구성되며 훌륭한 '정권의 거수기'가 되었다. 


카이로 시내에 걸려 있는 알-시시 포스터. Photo: Mohamed Abd El Ghany/Reuters


역사적으로 어느 정권에서든 군부는 국가적 사안의 '최종 결정자' 역할을 해왔다. 2011년의 혁명적 민중봉기 이후, 군부는 자신들의 정치 경제적 영향력을 지켜내기 위해 무슬림형제단과의 연정을 구상하였다. 하지만 하지만 모르시 대통령은 취임 이후 전통적인 군부의 영역인 안보 기구들에까지 영향력을 확장하려고 했고, 결국 군부는 시민사회와 협력해 모르시를 몰아냈다. 2013년의 민중봉기와 뒤이은 쿠데타 직후, 최고군사위원회(Supreme Council of the Armed Forces, SCAF)는 통치권을 넘겨받았고, 무바라크 시절의 판사였던 아들리 만수르(Adly Mansour)를 과도정부 대통령에 앉혔다. 이런 식으로 군부는 2011년의 혁명 때도 이익을 챙겼다. 당시 그들을 무바라크를 등지고, 대신 그들의 이익을 지켜냈다. 2011년부터 계속된 과도기 동안, 군부는 그들에게 유리한 권력구조를 지켜냈을 뿐 아니라, 그 영향력을 더욱 강화했다. 


만평: Carlos Latuff


현재 최고군사위원회는 독립적인 기구이다. 만수르 과도정부가 개정한 헌법에서 군부에 국가 안보 사안, 예산, 그리고 군사 정의에 관련된 사안에 대한 군부의 결정권을 확장했고, 특히 헌법 234조는 최고군사위원회에게 향후 두 번의 대통령 임기 동안 국방부 장관을 스스로 임명할 권한을 부여했다. 결과적으로 군부는 정치지도자에게 종속되지 않게 된 것이다. 알 시시가 그의 측근들을 군부와 정보기관에 임명하면서 군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고 있긴 하지만, 군부 엘리트, 세드키 소브히(Sedki Sobhi) 국방장관과 같은 사람들이 여전히 군부와 군부가 가진 경제적 영향력을 독립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무기 수출이 지키는 것: 알 시시 정권의 정당성


1971년의 이집트 헌법은 이집트를 '민주주의 국가'로 명시하고 있고, 1950년부터 이집트에서는 정기적인 대통령,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져 왔다. 하지만, 나세르에서 무바라크, 그리고 오늘날의 알 시시에 이르기까지 이 선거들은 위로부터 감독되어오고 조작되어왔다. 최근 대통령 선거에서 알 시시는 홀로 출마하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지만, 동시에 그는 이슬람주의 후보들이 출마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이런 방식의 집권 방식을 통해서 이들은 집권할 수 있었지만 민주적 정통성은 확보할 수 없었다. 권위주의와 독재 논란 속에서 시민들에게, 그리고 국제사회에 내세울만한 정통성이 필요해진 이집트 대통령들은 아랍 민족주의(나세르), 경제 성장(무바라크), 종교(모르시) 등을 부족한 정통성의 보완책으로 이용해왔다. 


알 시시는 시작부터 어려운 딜레마에 빠졌다. 2013년의 민중봉기 당시, 군부는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민중의 '부름에 응답'하여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마땅히 민주화를 이끌어야 하지만, 모르시를 몰아낸 군부는 무슬림형제단이 민주주의적 절차를 통해 권력에 참여하는 것을 무력으로 막아버렸다. 


알 시시는 이런 상황에서 안보와 경제를 민주주의적 가치보다 강조하는 전략을 택했다. 당시의 이집트 상황은 그가 그런 전략을 쓰기 좋은 상황이었다. 모르시가 물러나고 2년 뒤인 2015년의 조사에 따르면 이집트 내 폭력사태는 3배나 증가했고, 2011년 민중봉기 때부터 시작된 경제 침체는 계속되고 있었다. 이렇게 혼란한 상황에서 알-시시 정권은 테러리즘과의 전쟁, 그리고 경제 성장을 내세우며 자신들의 강압적 통치를 정당화했고, 이렇게 표면적으로 내세운 목표들은 실제로도 어느 정도 달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알 시시 정권은 대중적 지지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는 약점이 있다. 알 시시가 당선된 대통령 선거의 투표율은 50%가 되지 않았고, 다음 해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의 투표율은 28%에 불과했다. 이 투표율은 무슬림형제단이 승리했던 2012년 대통령 선거와 2011년 국회의원선거보다 낮은 투표율이다.


이런 비 민주적인 정치에도 불구하고 알 시시 정권은 국제적인 지원을 많이 받고 있다. 1970년대 후반 이집트는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으면서 미국의 우호관계를 구축했다. 알-시시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자 미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알-시시의 선출을 축하했고, 2015년 5월 들어서 오바마 대통령은 2013년 쿠데타와 함께 중단되었던 연 13억 달러 규모의 군사지원을 재개시켰다. 이집트에 우호적이었던 미국의 정책 기조는 트럼프 대통령에까지 이어지다가 최근 바이든 정부에서 주춤하고 있다. 최근 바이든 행정부와 의회는 이집트의 인권문제를 들어 군사 원조 일부를 보류했다. 


정권유지를 위해선 안보라는 기반이 흔들려서는 안 되는 알 시시에게 인권 같은 것은 언급하지 않고 무기 수출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한국은 매력적인 파트너일 것이다. 반면 한국은 이 정권에 무기를 판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군부가 쥐고 있는 이집트 경제


2011년 혁명 이후, 이집트 경제는 불황에 시달렸다. 하지만 2014년 대통령 선거를 기점으로 GDP 성장률은 4%대로 증가했고, 앞으로의 전망도 밝은 편이다. 이는 주로 정치적 안정과, 걸프 국가들의 유래 없이 막대한 경제적 지원 덕분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집트 경제는 여전히 취약한 상태이다. 인플레이션이 심각하고, 정부예산 적자가 크며, 정부 부채도 많다. 실업률도 취임 전과 비슷한 9%대에 머물러있다. 


알 시시는 취임하면서 자신이 일자리 창출과 경제 성장을 이끌 사람이라 외쳤다. 그래서 경제문제는 안보와 더불어 대통령 직이 걸린 아주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알 시시는 취임과 동시에 경제구조 개혁을 주요 골자로 한 경제계획들을 내놓았고, 어느 정도 성과를 냈다. 하지만 군부가 경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가지는 특수한 이집트 경제 구조 때문에 이 성과는 어쩌면 군부의 배만 불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집트 경제는 국가부문, 개인부문, 그리고 군사부문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국가부문은 규모가 큰 반면 개인부문은 아직 경쟁력이 떨어지고,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낮다. 그리고 이집트 경제에서는 특이하게도 군사부문의 비중이 크다. 이 특이한 군사 경제는 1956년부터 1970년까지 집권한 나세르 정권의 '범 아랍 민족주의'와 개발 우선 정책에서 시작되었다. 


이집트에서 군사 경제는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무바라크 대통령 퇴진 이후 확장을 거듭하고 있다. 이집트 군부가 자국 경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지분이 얼만큼인지는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 없다. 하지만 전문가들에 의하면 군부는 이집트 경제의 15~4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그들의 경제 활동은 면세 대상이고, 실질적인 감사도 받지 않으며, 저임금 노동자들을 이용하고 있다. 이집트 군부는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의 "경제 제국"을 건설했다. 35개가 넘는 공장과 회사를 소유하고 있으며, 그 분야도 대형 기반산업부터 식료품, 관광산업까지 사업 규모를 가리지 않고 다양하다. 최근 모르시의 퇴진과 군사정권의 공고화는 외부 투자가 늘어나는 결과를 낳았고, 이는 곧 군부와 관련된 기업들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이런 식으로 군부 경제는 성장했지만, 일반 시민들의 삶은 여전히 어렵다. 이집트 인구 세명중 한 명은 빈곤층으로 분류되고 있고, 2019년 기준, 약 9%의 인구가 직업 없이 살아가고 있다. 군부 경제활동은 대체로 과세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이익은 낙수효과를 낳지도 않는다. 이러다 보니 중소기업들은 오히려 큰 기업보다 더 세금을 많이 내고 있고, 공공 프로젝트 산업에는 참여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을 환대하는 알 시시의 두 얼굴


알 시시는 인권침해와 권위주의적 정치로 비판받고 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이런 비판들이 정당하지 않다며 이집트와 이집트 주변의 특수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알 시시는 많은 인터뷰와 연설을 통해 테러의 위협을 강조해왔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민주주의와 인권은 반드시 안보 문제와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고 하기도 했다. 


앞서도 말했듯, 알 시시는 반대세력을 마음껏 억압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제공하는 법률들을 통과시켰다. 2015년부터 시행된 '테러방지법'(Law 94 of 2015)은 '테러활동'을 아주 불분명하게 아주 넓은 의미로 정의하고 있으며 대통령에게 '테러활동'에 대한 추가적인 대응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있다. 이 법에 따라 전 대통령 모르시를 포함, 최소 3,000명의 사람들이 '테러'와 정치적 소요사태를 일으킨 혐의로 군사법정에 세워졌다. 심지어 이 법은 기자가 정부의 공식 발표와 다른 내용의 '테러'활동을 보도하면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기까지 하다. 이와는 별개로 기자들은 빈번하게 '대중 윤리'를 해치는 '잘못된 뉴스'를 보도한다는 이유로 기소당하고 있다. 최근엔 비정부기구 종사자들과 인권 운동가들이 줄줄이 소환당하고, 국외 여행을 금지당하고, 자산을 동결당하기도 했는데, 이는 2011년 당시 시민사회에 대한 외부 자금 유입을 조사했던 사건에 근거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시민사회에 대해 전방위적인 탄압이 가해지고 있지만, 알 시시 취임 이후에 무바라크 정권 시절인 2008년부터 2010년 동안 일어났던 시위보다 약 5배나 많은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는 통계가 있다. 게다가 다에시는 북부 시나이 반도에서 계속해서 무력을 행사하고 있고, 무슬림형제단으로 추정되는 세력들은 이집트 전국에서 이집트군과 관광객들을 공격하고 있다. 관광수입이 상당한 이집트에게 이런 세력들의 존재는 경제에 직접적인 타격이 되고 있다. 이에 이집트 정부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규모가 큰 이집트 군대를 활용하여 대응하고 있지만, 몇몇 전문가들은 이집트 군부가 본연의 임무보다 정치, 경제활동에 더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에 국가를 지키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집트 민중들은 5년 동안 2명의 이집트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혁명'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 '혁명'들은 끝내 군부의 힘을 넘어서지 못했고, 이집트에 권위주의 정권을 복귀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고 말았다. 한국이 4.19 혁명 다음 해 5.16 쿠데타를 겪은 것이 떠오르기도 하고, 지금 미얀마에 군부가 쿠데타로 다시 집권한 것과도 비슷한 흐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이집트를 찾아 경제 협력 확대 기회를 찾고, 적극적으로 무기 영업을 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미얀마 군부에게도 무기를 팔려고, 미얀마에 한국 기업을 진출시키려고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는 것은 아닐지 걱정된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집트 방문에 부쳐, 손을 맞잡은 이가 누구인지, 그리고 한국이 그토록 팔고 싶어 하는 무기가 누구의 손에 들어가는 것인지를 되짚어보았다. 꽤나 오래전 쓴 글을 다시 손봐서 가져온 것이라 업데이트가 조금 부족하긴 하지만 여전히 군부가 이집트의 정치와 경제, 사회를 손아귀에 넣고 있다는 점과, 한국 정부가 바로 그 군부의 힘을 키우는 무기 영업을 하고 있다는 점을 전달하고 싶었다. 


한국이 외국에 판 무기가 실제로 쓰이기 시작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죄책감을 느끼는 일일 뿐이다. 어쩌다 한국이 세계 9위의 무기 판매 국가가 되었는지, 그 무기들은 어디에 쓰이고 있는지, 경제와 국가주의가 아닌 평화와 인권의 눈으로 바라볼 때이다.




<참고자료 (일부)>


Charles Levinson and Matt Bradley, “In Egypt, the 'Deep State' Rises Again”, The Wall Street Journal. 19 July 2013.

Human Rights Watch, All According to Plan. August 2014.

The Economist, “Egypt’s referendum: Deepening rifts”, The Economist, 25 January 2014

Richard Spencer, “Egypt votes overwhelmingly for military-backed constitution”, The Telegraph. 16 January 2013.

Omar Halawa, “Egypt’s Upcoming Elections: A Primer”, Atlantic Council. 6 October 2015.

Stephan Roll, “Managing change: how Egypt’s military leadership shaped the transformation”, Mediterranean Politics, vol.21, no.1 (2016), pp, 23-43.

Ofir Winter, “El-Sisi’s First year as President: Legitimacy, Democracy, and Relations with Israel”, Strategic Assessment, vol.18, no.2 (2015), pp.11-12.

The Tahrir Institute for Middle East Policy, Egypt’s rising security threat, 2015.

Amnesty International, Amnesty International Report 2015/16, 2016.

Spencer Ackerman, “Obama restores US military aid to Egypt over Islamic State concerns”, The Guardian. 31 March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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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aa Farid, “Egyptian army’s economic empire: Unidentified market share yet high impact”, Daily News Egypt. 7 Nov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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