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케냐 대선·총선 (4)
지난 9월 5일, 마르타 쿠메(Martha Koome) 대법원장을 수장으로 하는 케냐 대법원은 대통령 선거 결과에 대한 7건의 이의제기를 모두 기각하고, 선관위가 발표한 1위 득표 후보인 윌리암 루토(William Ruto) 후보의 당선을 인정했다. 이 판결에 따라 윌리암 루토 당선자는 9월 13일 케냐 5대 대통령에 취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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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케냐 대선·총선 (2): 케냐 선관위, 윌리암 루토 후보 당선 발표 2022" 먼저 읽기: https://brunch.co.kr/@theafricanist/175
* "2022년 케냐 대선·총선 (3): 끝나지 않은 대선, 공은 또 대법원으로" 먼저 읽기: https://brunch.co.kr/@theafricanist/178
케냐 선거관리위원회(IEBC)의 와풀라 체부카티(Wafula Chebukati) 위원장은 8월 15일에 8월 9일 대통령 선거 개표 결과 통합민주연대(UDA)의 윌리암 루토 후보가 50.49%를 득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48.8%로 2위를 기록한 통합의 약속(Azimio) 선거연대의 라일라 오딩가(Raila Odinga) 후보 측을 포함한 시민단체, 일반 시민 등이 이의제기를 접수하며 루토 당선자의 취임은 대법원 판결 이후로 미뤄졌다. 대법원은 제출된 9건의 이의제기 중 요건을 갖추지 못한 2건은 배제하고 7건의 이의제기를 검토하여 판결했다.
대법원은 판결을 위해 접수된 7개의 이의제기를 통합하여 9개의 쟁점을 도출한 뒤 각각에 대해 필요한 심리를 진행하여 아래와 같이 결과를 발표했다. (해당 내용은 판결 직후 대법원에서 언론에 배포한 "Media Summary of Presidential Petition Judgement"의 내용을 발췌 번역한 것이다) 아래 내용에 대해 오딩가 후보 측은 대법원이 지나치게 과장된 언어로 자신의 주장에 반박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1) 올해 선거를 위해 선관위가 도입한 기술의 무결성, 검증가능성, 보안성, 투명성이 결과의 정확성과 검증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는지 여부
▶︎ 답변, 진술, 정밀조사 등을 고려할 때, 선관위가 도입한 기술이 헌법 86조 (a)항(투표 시스템은 간결하고 정확하고 검증가능하고 안전하고 책무성이 보장되며 투명해야 한다)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볼 수 없음
(2) 투표소 개표 결과 보고서(Form 34A)를 선관위 공개 포털에 업로드하고 전송할 때 개입이 있었는지 여부
▶︎ 법원에 제출된 증거 중 해당 과정에서 개입이 있었다고 볼만큼 신뢰할 증거는 없었음
(3) 선관위 공개 포털에 업로드된 Form 34A와 중앙집계소에 취합된 Form 34A, 그리고 개표소 참관인이 발행한 Form 34A 사이에 차이가 있는지 여부
▶︎ 법원은 각 Form 34A에 차이가 없음을 확인함
(4) 카카메가(Kakamega)와 몸바사(Mombasa) 카운티 주지사 선거와 키투이 지방(Kitui Rural), 카첼리바 롱가이(Kacheliba Rongai), 포콧 남부(Pokot South) 지역구의 의원선거 등의 연기가 유권자를 억압하는 결과로 이어졌는지 여부
▶︎ 선관위는 선거법에 따라 문제 있는 선거구의 선거를 연기할 수 있는 권한이 있으며, 선거의 연기가 유권자를 억압하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근거 또한 찾을 수 없었음 (오딩가 후보의 Azimio는 선관위가 Azimio를 지지하는 지역의 선거만 골라서 연기했다는 주장을 꾸준히 펼쳐옴)
(5) (같은 날 치러진) 대통령 선거와 다른 선출직 투표의 투표수가 이유 없이 불일치하는지 여부
▶︎ 재외국민, 재소자, 주소가 없는 사람 등은 대통령 선거에만 투표하여 다른 선출직 투표의 투표수와 차이가 생긴다는 설명을 타당한 것으로 봄
(6) 선관위가 헌법에 정해진 바에 따라 검표, 취합, 결과 공표를 했는지 여부
▶︎ 선관위는 해당 과정을 선관위원장과 다른 선관위원의 관리감독 하에 사무국 직원, 기술자 및 기타 고용인을 통해 수행함. 대통령 선거 결과의 공표는 선관위원장에게 부여된 권한이긴 하지만, 이는 위원회를 대표하여 공표하는 것임. 결국 선관위원장과 4명의 선관위원 사이의 분열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선관위가 헌법에 정해진 바에 따라 해당 과정을 수행하였다고 판단함
(7) 당선인이 헌법이 정한 50%+1표를 충족했는지 여부
▶︎ 당선인이 50%+1표를 충족한다고 판단함
(8) 대통령 선거 결과에 영향을 줄만큼 중대한 불법이나 부정행위가 있었는지 여부
▶︎ 진정인들이 지적한 불법과 부정행위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줄 만큼 중대하지 않다고 판단함
(9) 법원이 어떤 법적 구제나 명령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 헌법에 정해진 바에 따르면 대법원은 대통령 선거 결과에 대한 이의가 접수되면 이를 검토하여 해당 선거 결과가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선거 결과를 무효화하고 선관위에 새 선거를 개최할 것을 명하고, 선거 결과가 타당하다고 판단되면 당선인의 선거는 유효하다고 발표한다.
이러한 심리 결과에 따라 대법관들은 만장일치로 모든 이의제기를 기각하고, 선관위의 당선자 발표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자세한 판결문은 추후 공지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거기서 이의제기에 포함된 근거들이 어떤 이유에서 인정되지 않았고(다른 이들에게 들은 말을 전한다던지 등) 어떤 문제는 발견했지만 중대하지 않다고 보았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관을 대표해 마르타 쿠메 대법원장이 만장일치로 모든 이의제기를 기각하고 선관위의 개표 결과를 인정한다는 약식 판결문을 발표한 뒤, 윌리암 루토 당선자는 성경 구절을 인용한 트윗을 올리며 결과를 환영했고, 오딩가 후보는 대법원의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판결은 존중한다는 트윗을 올렸다.
또한 루토 당선자는 자택 근처에서 "동료 케냐 시민 여러분, 케냐 대법원의 만장일치로 우리의 길고 긴장되고 너무 오래 끈 선거가 마침내 끝났습니다"라는 말로 시작한 연설을 했고 이는 여러 언론을 통해 실시간 송출되었다.
연설에서 루토 당선자는 대법원의 판결을 환영하며 대법관들이 헌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고, 모든 당사자의 말을 청취하며 어디의 편을 들지도 않고 애국적인 태도로 이번 판결에 임했다며 대법관들에게 존경의 마음을 전했다.
또한 선관위도 기구의 독립성을 지키며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만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음을 언급했고, 다른 후보들과 그들에게 투표한 사람들의 애국심과 노력에도 감사를 표하며 적이 아닌 동료가 되자고 말했다.
우리(대선 후보들)는 각기 다른 비전과 미션을 제시했고, 케냐 시민들의 결정에 따랐습니다. 우리는 경쟁자이지 적이 아닙니다. 우리는 케냐를 단합하고 강하게 하기 위해 경쟁하지 분열하고 약하게 하기 위해 경쟁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모든 경쟁자가 동료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마 음보가(Mama mboga, 여성 야채 행상)과 보다보다(Bodaboda, 오토바이 택시 기사)를 선거 운동의 영웅으로, 선관위와 와풀라 체부카티 위원장을 선거의 영웅으로 언급하며 연설을 마쳤다.
(연설문 전문: https://www.kenyans.co.ke/news/79246-full-speech-ruto-after-supreme-court-verdict?amp=1)
대법원 판결 이후 루토 당선인은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고, 자신의 부통령인 루토 당선인이 아닌 오딩가 후보를 공개 지지했던 우후루 케냐타(Uhuru Kenyatta) 대통령은 루토 당선인을 적극적으로 언급하지는 않고 있지만 정부 성명을 통해 정권 이양 준비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오딩가 후보 측도 판결 이후 추가 행동엔 나서지 않고 있어 다음 주로 예정된 루토 당선인의 취임식은 큰 문제없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드디어 기나긴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2007년의 선거 후 대규모 폭력사태가 남긴 상처와 충격 때문에 많은 이들이 케냐 선거를 불안하게 바라보곤 한다. 물론 선거 과정에 대한 자세한 평가는 감시단의 최종 보고서 같은 여러 자료를 더 살펴봐야겠지만, 이번 선거는 그 과정과 결과, 그리고 결과에 대한 이의제기까지 큰 충돌 없이 이어졌다는 점에서는 분명 의미 있는 진보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2007년 사태로 인한 트라우마와 여전한 선거 시스템에 대한 불신으로 그 절차가 지나치게 복잡하고 오래 걸린다는 점은 분명 개선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