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케냐 대선·총선 (3)
지난 15일, 오랜 기다림 끝에 케냐 대통령 선거 결과가 발표되었다. 케냐 선거관리위원회의 와풀라 체부카티(Wafula Chebukati) 위원장은 현직 부통령인 윌리암 루토(William Ruto) 후보가 8월 9일 있었던 대통령 선거에서 50.49%를 득표해 당선되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케냐 대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2022년 케냐 대선·총선 (1): 2022 케냐 대선 개표 이모저모" 먼저 읽기: https://brunch.co.kr/@theafricanist/173
* "2022년 케냐 대선·총선 (2): 케냐 선관위, 윌리암 루토 후보 당선 발표 2022" 먼저 읽기: https://brunch.co.kr/@theafricanist/175
케냐 헌법은 시민이라면 누구나 대통령 선거 결과에 이의가 있으면 결과 발표 7일 이내에 대법원에 이의제기를 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이 권리를 활용해 2위 후보로 발표된 라일라 오딩가(Raila Odinga)는 물론이고 시민단체, 개별 시민, 국회의원 등 다양한 사람들이 기한 내에 대법원에 이의제기를 접수했고, 총 8건의 이의제기가 접수되었다. 대법원은 접수된 이의제기에 대한 판결을 14일 이내에 해야 하고, 이 판결 결과에 따라 루토 당선자가 그대로 취임하거나 60일 이내에 재선거가 열리게 된다.
이번 이의제기에 가장 진지한 쪽은 역시 라일라 오딩가와 그를 후보로 낸 Azimio La Umoja 선거연대일 것이다. 대통령 후보 라일라 오딩가와 그의 러닝메이트 마르타 카루아(Martha Karua)는 헌법에 정해진 이의제기 기간 마지막 날이었던 8월 22일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72페이지에 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들은 진정서에서 루토를 당선자로 발표한 것이 헌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정부를 구성하려는 시도라며 선거관리위원회의 서버를 조사하고, 통합 전자 선거관리 시스템(Kenya integrated Elections Management System)과 선관위 웹사이트, 각 개표소에서 접수된 개표 결과 보고서를 재검증할 것을 요구했다.
이 외에 장애인이나 투표소를 지킨 군인들의 투표권이 보장되지 않았다는 주장, 개표 검증 과정에서 누락된 선거구가 있었다는 주장, 선관위 내에서 개표 결과에 대한 분열이 있었기 때문에 발표된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는 주장이 담긴 진정서도 있었다.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했으나 자격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거절된 가스펠 가수 르벤 키가메(Reuben Kigame)는 자신이 입후보하지 못했다는 점을 들어 이의를 제기했다.
라일라 오딩가를 비롯한 다른 진정인들이 대부분 사실은 오딩가 후보가 당선되었는데 개표 조작으로 루토 후보가 당선되었다는 주장이 아닌 루토 후보가 헌법에서 정하는 당선 요건인 '과반 더하기 한 표'를 사실은 충족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흥미롭다. 아무래도 루토 후보가 50%를 0.49%차이로 겨우 넘겼기 때문에, 과만 초과 득표를 무효화할 수 있을 정도의 부정행위나 규정 위반을 공략하는 것이 인용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만약 대법원이 이의 제기된 내용의 일부를 인정하여 루토 후보가 50%를 초과 득표하지 못했다고 판단할 경우, 앞서 발표된 선거 결과 발표는 무효화되고, 60일 이내에 재선거를 하게 된다. 다만 이때는 법원 판결에 따라 선거 결과가 무효화된 것이라 결선투표가 아닌 재선거를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의제기가 접수됨에 따라 선관위와 루토 후보 측도 각각 소명자료를 제출했고, 루토 후보는 특히 오딩가 후보의 법률팀보다 13명 많은 무려 54명의 변호사가 참여한 법률팀을 꾸려 대응에 나섰다. 루토 후보의 법률팀을 이끄는 프레드 은가티아(Fred Ngatia) 시니어 변호사는 40년 이상 법조계에서 활동했고, 대법원장 후보로도 꾸준히 언급되었던 인물이다.
대법원은 9월 5일까지는 이의제기에 대한 선고를 내려야 한다. 지금까지 대선에 다섯 번이나 출마한 오딩가 후보는 2013년과 2017년에 현직 우후루 케냐타 대통령에 밀려 득표율 2위를 기록한 뒤 대법원을 통해 선거 결과에 이의제기를 했다. 대법원은 2013년에는 그를 포함한 모든 이의제기를 기각하며 선거 결과를 인정했고, 2017년에는 선거 과정과 결과에 문제가 있다며 재선거를 지시했다. 하지만 당시 라일라 오딩가 후보는 선거 제도 개혁이 없으면 재선거가 의미가 없다며 보이콧했는데, 올해는 아예 진정서를 내면서부터 만약 재선거가 있다면 체부카티 선관위원장이 주관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을 포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