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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바리 Nov 14. 2022

왜 그는 14살 청소년을 아기 안듯 안았을까

대통령 배우자의 캄보디아 방문과 빈곤포르노

윤석열 대통령이 G20과 아세안(ASEAN)에 참석하기 위해 11월 11일 출발해 16일에 귀국하는 일정으로 캄보디아와 인도네시아를 방문하는 순방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순방에는 대통령의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가 동행했다. 


순방 일정에는 별 관심이 없어서 따로 뉴스를 찾아보지 않았는데, 우연히 대통령 배우자가 캄보디아에서 '비공개'로 캄보디아 심장병 청소년 가정을 방문했다는 기사를 보았고, 대통령실에서 공개한 사진이 너무도 전형적인 ‘빈곤포르노’라 당황스러웠다. 


대통령실에서 공개한 대통령 배우자의 '비공개' 일정 사진. 원본 사진에는 아동 얼굴이 편집되지 않았다. Photo: 대통령실


'빈곤포르노'는 모금이나 동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어떤 사람의 힘든 면만 편향되게 드러내거나 과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가난한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이 강화될 뿐 아니라 이들이 겪는 문제의 구조적 원인이 지워지기도 한다. 그래서 국내외에서 각자의 이유로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을 지원하는 단체 안팎에서 빈곤포르노에 대한 문제는 꾸준히 제기되어왔다. 


다시 캄보디아로 돌아와서, 이 '비공개'일정 전날 대통령 배우자는 캄보디아 프놈펜의 헤브론 의료원과 앙두원 병원을 방문해 의료진과 환자를 만나고 시설을 둘러보았다. 헤브론 의료원은 2007년에 한국인 김우정 선교사가 설립한 의료시설이고, 앙두엉 병원은 한국 정부가 코이카를 통해 안과와 이비인후과 병동을 지원했기에 특별히 다른 일정이 없다면 대통령 배우자가 외교 일정의 일부로 방문하는 것이 이상하진 않았다. 


하지만 다음날의 '비공개' 일정은 다르다. 이날은 원래 아세안 의장국인 캄보디아 정부가 앙코르와트 사원을 방문하는 각국 정상 배우자 프로그램을 마련해두었는데, 김건희 여사는 여기에 불참하고 심장병 청소년의 집을 방문한 것이다. 대통령 배우자가 전날 병원에서 환자들을 만나며 느낀 바가 있어 아세안에서 준비한 정규 일정에 불참하면서까지 이 청소년을 방문하겠다는 결정을 했겠지라고 이해해보려 노력했지만, 순수한 의도로 보기엔 사진이 너무 전형적이었다. 


왜 14세 청소년을 꼭 그렇게 안고서 무력해 보이게 연출했어야 했는지, 비공개 일정을 해놓고서 청소년 얼굴이 떡하니 나오는 사진을 배포한 것인지를 생각하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빈곤포르노를 연출한 것이라는 생각을 떨치기가 어렵다.


그리고 이러한 일정을 결정하는 대통령실과 외교부, 그리고 김건희 여사의 편견도 문제다. 전 세계 어디를 가든, 심지어 대통령실이 있는 서울에도 저마다의 이유로 아프고 어려운 사람들은 있다. 하지만 유독 '개발도상국'에만 가면 '가난하고 아픈 개도국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구원자'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이런 편견과 구원자 콤플렉스에 갇혀서는 남반구 국가들과 상생하는, 좋은 파트너십을 맺을 수 없다. 특히나 이번 행보가 캄보디아 정부와 협의가 된 것인가도 걱정스럽다. 사전협의되었더라도 이미 충분히 캄보디아 국민과 정부에 무례한 행동인데, 사전협의가 없었다면 이는 외교 사고다.


몇 년 전, 어린이재단, 세이브더칠드런 등 아동 중심 국제개발NGO와 국내 국제개발협력NGO들의 협의체인 KCOC는 아동 권리 보호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낸 적이 있다. 그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이번 캄보디아 청소년 사례는 전형적으로 부적절한 케이스에 해당한다. 


KCOC가 발간한 "아동 권리 보호를 위한 미디어 가이드라인" 표지


"기자, 촬영감독, 사진작가 및 NGO 관련 종사자 등 미디어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보도물의 취재, 제작 과정에서 아동이 처한 상황의 개선에 기여하고 아동의 권리 침해를 예방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만든 "아동 권리 보호를 위한 미디어 가이드라인"에는 아동 관련 보도를 위한 원칙과 세부 방향, 사례가 제시되어있다. 그중 이번 사건과 관련된 내용은 아래와 같다.


<아동 권리 보호를 위하여 미디어 관계자들이 지켜야 할 10가지 기본원칙>
원칙6. 촬영으로 인한 사후 피해 예방
보도 시 아동을 대상으로 한 보도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파급 영향을 신중히 고려하고 부정적인 영향을 사전에 예방해야 합니다. 또한 촬영 대상 아동의 상황에 대해 보도 이후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원칙8. 아동 및 보호자의 능동적 묘사
미디어 관계자는 아동과 보호자를 무기력한 수혜자가 아니라 삶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능동적 주체로 묘사해야 합니다. 등 
<언론 보도 및 홍보물 제작 시 준수 사항>
아동을 동정 및 시혜의 대상이나 약자, 피해자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아동과 해당 아동이 살고 있는 지역사회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형성할 수 있는 보도는 하지 않습니다. 등 
<상황별 가이드라인 - 빈곤, 기아, 질병 상황의 아동>
굶주리고 병든 아동의 이미지를 이용해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은 탈피해야 합니다. 이러한 이미지는 개발도상국의 아동과 가족이 선진국의 원조에만 의지하는 듯한 잘못된 인상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등


이번 대통령 배우자 사진과 아주 유사한 구도의 사진이 '부적절한 사례'로 제시되어있다. 출처: 아동 권리 보호를 위한 미디어 가이드라인(KCOC)

참고로 해당 아동이 치료받는 병원도 KCOC회원단체 중 하나인 모 기독교 자선단체와 연결된 곳이다. KCOC나 해당 단체에서 이번 사진에 대해 유감을 표하길 바라는 것은 너무 큰 기대일까?


물론 대통령 배우자만 이런 행동을 한 것은 아니다. 국내 여러 단체들도 여전히 빈곤포르노를 자기 기관의 모금과 홍보에 활용하고 있다. 자기 단체와 한국 사람들을 ’곤궁한 개도국 사람들’의 잠재적 ‘구원자’로 그리는 이야기는 이제 정말 그만할 때가 되었다. 이번 일이 국내 국제개발협력 단체와 언론, 시민이 빈곤포르노의 문제에 대해 알고 함께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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